서구의 전통 철학은 이성 중심주의로 흘러갔습니다. 플라톤에게서는 ‘이성이 정념을 통제해야 한다’는 위계 질서가 강조되었고, 칸트 역시 순수 이성의 보편성에 큰 비중을 두었습니다. 이성중심주의에서는 감정은 통제 혹은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이성 중심주의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20세기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통해 철학자들은 감정에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감정을 단순한 반응 또는 비합리적 흥분 상태가 아니라, 인간이 세계와 관계를 맺는 데서 생겨나는 복합적이고 고유한 현상이라는 관점을 가지게 됩니다.
대상을 개념화하고, 일반화하던 이성과는 달리 감정은 고유성을 부여합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성적으로 분석되는 나의 행동은 타인도 할 수 있는 행동이지만, 그 순간 느끼는 감정만큼은 타인과는 분명히 구분되는 나만의 것입니다.
이러한 감정의 고유성을 강조한 것이 바로 감정의 윤리학입니다. 대표적으로 페미니스트인 캐롤 길리건은 돌봄 윤리를 주장합니다. 전통적인 윤리관에서는 정의와 의무같은 추상적인 미덕을 앞세웠다면, 돌봄 윤리는 관계와 감정적 관계라는 구체적인 상황에서의 도덕을 말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은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등의 비윤리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을 열어두는 이성적 윤리관과는 정반대의 행보를 취합니다.
마사 누스바움은 시적 정의를 주장합니다. 기존의 이성적 질서라 여겨진 법과 정의에 문학적 상상력을 부여해야한다는 이론입니다. 동일 범죄 동일 처벌이 아닌 상황과 맥락을 고려한 감정까지도 정의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약을 구하기 위해 절도한 사람이 있을 때, 그의 사회적 맥락을 고려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감정의 윤리학은 윤리적 판단과 행동에 있어 감정을 고려하는 것이 부수적 문제가 아니라 필수적 요건임을 강조합니다. 인간은 이성과 감정을 분리해 놓고 살 수 없는 존재이며, 감정은 단순한 동물적 충동이 아니라 세상과 자신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핵심 통로일 수 있습니다.
이성중심주의가 간과해 왔던 다양하고 복합적인 감정의 세계를 인정하고, 그 역할을 반영하는 윤리적·사회적 제도와 의사소통 방식을 갖추는 것은 오늘날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감정의 윤리학은 우리에게 “어떻게 감정을 통제할 것인가”가 아닌 “어떤 감정을 어떻게 키워 가고, 어떤 방식으로 사회적 가치와 조화를 이루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주며, 이는 현대 사회에서 윤리적 삶과 공동체적 연대를 고민할 때 핵심적인 화두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