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9 | 아무거나

by 상상혁

시선은 허공에 멈추고, 생각의 흐름은 끊어진다. 사람들은 이것을 '멍때리기'라 부르며, 비생산적인 시간의 낭비로 치부한다. 나 역시 그런 순간의 나를 자책하곤 했다. 멈춰있는 시간만큼 세상에서 뒤처지는 것 같다는 불안감 속에서. 해야 할 일의 목록이 머릿속을 떠다니고, 나는 그저 무기력한 관찰자가 될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을 다르게 본다. 멍한 응시는 멈춤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활발한 무의식의 활동일지 모른다. 나는 이것을 '정신의 여백'이라 부르고 싶다. 빽빽한 활자들로 가득한 책에 숨 쉴 틈을 주는 여백처럼, 과부하가 걸린 나의 정신이 스스로를 정리하고 가지를 쳐내는 필연적인 과정이다.


의식적인 노력이 '비르투'라면, 이 멍한 시간은 나의 의지를 '포르투나'의 흐름에 잠시 맡겨두는 시간에 가깝다. 애써 붙잡으려 할수록 흩어지던 생각의 조각들이, 힘을 빼고 놓아주었을 때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가며 연결된다. 가장 중요한 문장은 날카로운 집중 속이 아니라, 이 무방비한 여백 속에서 문득 떠오르곤 했다.


더 이상 나의 공백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한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을 기꺼이 허락한다. 그것은 낭비가 아니라, 다음 문장을 쓰기 위한 가장 중요한 준비 운동이고, 혼돈 속에서 질서를 발견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나의 최선은 날카로운 집중이 아니라, 이 이완된 무질서와 공존하는 법을 배우는 것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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