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의 내가 보내는 메시지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 주관, 공직자 청렴 에세이 장려

by 헤세Hesse

"아버지,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 같은 사람들마저 그렇게 하면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휘두르겠어요? 그리고, 소위 법을 하겠다는 사람이 처음부터 그렇게 시작하면 나중에 뭐가 되겠어요? 진짜 하지 마세요."


K대 법학과를 지원한 나에게 아버지는 K대 법대 교수를 잘 아는 친구가 있으니 면접점수를 잘 받을 수 있도록 얘기를 해놓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런 아버지에게 나는 도덕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말들로 쏘아붙이듯 목소리를 높였다. 무안하신 듯 상기되던 아버지의 얼굴조차 개의치 않던 내 나이 갓 스무살이었다. 결국 나는 재수를 하였고, 다음 해 Y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2008년 ◇◇◇◇공사에 입사했다. 나는 강원도의 작은 군을 관할지역으로 하는 △△지점으로 발령받아 요금, 수금, 계약 업무를 담당하였다. 의례 신입사원에게는 업무가 벅차기 마련이지만, 담당자 한 명, 한 명의 정확한 판단과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무엇보다 요구되는 작은 사업소에서 사수도 없이 업무를 스스로 파악해 나가는 것은 버거운 과정이었다. 아침 여섯시에 출근해서 밤 열두시에 퇴근하면서도 밤이면 내가 업무를 제대로 처리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불안감에 좀처럼 눈을 감지 못했고, 아침이면 다시 마주해야 할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쉽게 눈뜨지 못했던 하루하루가 모여 시간은 연말로 향했다.


그즈음 나는 완전 또는 불완전 경쟁체제에 있는 민간기업의 영업이익만큼이나 공기업에 있어 '청렴도 조사'가 남다른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조사 결과가 성과급을 결정하는 하나의 요인이 되는 임금 결정구조에서는 말이다. 나는 전기를 무단 사용한 고객을 늘 그래 왔듯이 위약 처리했다. 하지만, 청렴도 조사를 앞두고 조사 대상인 내선공사업체를 위약 처리했다는 이유로 마음고생을 해야만 했다. 학창 시절의 '정석' 만큼이나 손 때가 묻을 정도로 퇴근 후 늦은 밤을 함께했던 규정에 청렴도 조사 대상인 내선공사업체일 경우, 더욱이 청렴도 조사를 앞둔 시기일 경우 위약 처리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은 없었다. 당연히 예외일 수 없는 것 아닌가? 다른 고객에 대해서는 위약 처리하면서 청렴도 조사 대상이라고 해서 다르게 처리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위약 처리한 내선공사업체 사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과장님 한 분은 불편하신 마음을 전했다. 완곡하게 표현하시기는 했지만 팀원들이 다 있는 자리에서 '청렴도 저해자' 쯤으로 여겨지는 것 같아 순간 울컥했다. 하지만 청렴도 조사 결과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고, 성과급 감소라는 불이익을 야기할 수 있는 행동을 한 나는 그 마음을 짓누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우려와는 달리 우리 사업소의 청렴도 조사 결과는 잘 나왔다. 그리고 나의 그 '비청렴한 행위'도 면죄부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내선공사업체의 위약 사실이 발견되면 원칙대로 처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내부평가지표인 청렴도 조사 앞에서 담당자들이 갈등 상황에 놓이게 되는 현실이 답답했다. 이렇게 청렴도 조사가 본래 취지와는 달리 '업체 만족도 조사'로 변질되어가는 현실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나는 감사실에서 주최하는 '윤리경영 수기'에 이러한 내용을 담아 공모했다. 나의 작은 문제제기가 현실을 반영한 제도 개선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월간 사내외보에 '윤리경영 수기 최우수상 탄 △△지점 ○○○씨'란 커버스토리로 표지모델이 되었다. 인터뷰를 통해 '국민권익위원회 사이버 청렴교육'을 받으면서 당연한 것이라고만 생각한 그 '청렴'과 내 '현실'이 충돌하는 순간에 들었던 고민들을 사우들과 공유했다. 물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공감은 하면서도 다소 민감할 수 있는 부분을 언급한 나를 염려해 주시는 분들도 있었다. 나는 이번 일이 나 스스로를 앞으로 더욱 긴장시키고 행동에 변함없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오는 불편함이 될 수는 있을지라도, 업무 유연성이 떨어지는 사람으로 인식되거나 그 누구에게 불편한 존재로 느껴지지는 않았으면 했다.


2009년 새해, 희망에 부푼 마음을 채 추스르기도 전에 위약 제보가 들어왔다. 올해 처음으로 열리는 지역 축제장에서 전기를 무단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지역 축제를 돌아다니며 임시 천막에서 잠시 영업을 하고 떠나는 외지인의 성향을 생각해 봤을 때 원활한 현장조사와 면담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강가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이 몸을 저절로 움츠리게 했다. 향토 음식관이라고는 하지만 오히려 야시장에 어울릴 법하다. 이마에 깊게 파여 강한 인상에 50대는 훌쩍 넘어 보이는 사장이라는 사람을 마주하고 테이블에 앉았다. '도전' 얘기를 꺼내자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전기사용신청을 했는데 계량기 부설이 아직 안 된 것이라는 거짓말로 시작한 사장은 사무실을 통해 전기사용신청을 한 사실이 없음을 확인시켜주자 이제는 바로 신청할 테니 봐달라고 했다.


"사장님, 당연히 전기사용 신청은 바로 하셔야 합니다. 오늘 전기사용 신청하셔서 계량기 부설이 완료되지 않으면 전기공급 약관 45조 1항에 의거 전기공급을 즉시 정지하겠습니다. 그리고, 위약금 또한 납부하셔야 합니다." 위약금 얘기에 사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옆에서 난로를 쬐며 귀를 기울이고 있던 사내 중에 한 명이 뛰쳐나오듯 소리치며 욕을 하기 시작했다. "XXX! 아따 뭘 그렇게 따져 쌌소? 계량기 타다가 쓰면 되는 것이제. 그리고 위약금은 또 뭔 소리여?"


하마터면 움찔할 뻔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분위기가 정지화면처럼 싸늘하다. 막상 일어나기는 했는데 이러다 내 안경이 날아가는 거 아닌가 싶어 갑자기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 심장소리가 들리면 어떡하나 걱정이 될 정도였다. 하지만 겁먹은 인상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오히려 눈에 힘을 주고 그 사람을 응시했다. 전기를 훔쳐 쓴 사람이 누군데 큰 소리냐고 말하는 것도, 그렇다고 위약금은 민법 398조에서 정한 손해배상액의 성격을 지닌다는 말로 대응하는 것도, 어느 하나 적절하지 않아 보였다. 내게는 익숙지 않은 몸의 대화를 나눠야만 하는 것인가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사내 무리들이 그를 말리고는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테이블에 앉았는데, 사장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사장은 저 만치서 핸드폰으로 통화를 계속하고 있었던 것 같다. 위약 현장조사서를 작성하고도 한참 후에야 사장은 자리로 돌아왔다. 위약 내용 및 위약 기간을 비롯한 위약금 산정 내역을 설명하고 확인서에 서명을 요청했다. 사장은 서명하기를 머뭇거렸다. "위약 사실을 부인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위약금 산정 내역에 의문이 드시는 겁니까? 다시 설명해 드릴까요?" 그런 건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끝끝내 서명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전화가 왔다며 다시 자리를 일어섰다. 사장이 혹시나 도망가지는 않을까 싶어 예의 주시했다. 한참을 또 통화하고 나서야 사장은 다 인정하니 명함을 주고 가면 내일 사무실로 들어와 서명을 하고 위약금을 납부하겠다고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오늘 전기사용 신청 후 계량기 부설 완료와 조사서 서명, 그리고 위약금 납부를 재안내를 하고 명함을 건네었다.


께름칙함이 남아 불편한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에 전화벨이 울렸다.

"여기 서울 ☆☆지점인데요. ○○○씨인가요?"

"예 맞습니다. 누구시죠?"

"아, ☆☆지점이에요. 오늘 위약 현장 조사하신 거 있죠?"

"예, 그런데요?"

본인의 이름도 밝히지 않고, 말투나 어조가 간부급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서울 강남에 있는 사업소의 간부라면 그 위치와 영향력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일 것 같았다.


"그거 내 친구가 모르고 했다고 그러거든요? 위약 처리 안 했으면 하는데..."

겨우 진정되었던 심장이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나는 차분하게 그리고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말했다. 위약 제보를 받아 현장조사를 마쳤고 규정에 따라 위약 처리해야 한다는 그도 이미 잘 알고 있을 법한 내용의 말을 전했다. 그러나 몇 번이나 위약 처리하지 말 것을 종용했다.


"그러면... 계좌번호 알려주세요."

더 이상 말이 안 통하는 젊은이인 것 같은지 위약금 납부 계좌번호를 물었다.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이 너무 순진했다는 걸 바로 깨달았다.

"아니 지점 계좌번호 말고 ○○○씨 계좌번호. 내가 친구보고 ○○○씨 계좌로 얼마 넣으라고 할 테니까 그러면 위약 처리 안 할 수 있겠죠?"


물론 나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왠지 이제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더 이상 정의와 진리를 말하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을 떨쳐내기 어려운 오늘을 살아간다. '깨끗하다"라는 표현은 왠지 먹는 물이나 자연에만 국한되어 사용되는 게 적절할 법하며, '청렴'이 부와 안위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말에 더 공감할 것 같은 오늘, 나는 다시금 내 낡은 스무살의 도덕 교과서를 펼친다. 시간이 지나면 낡고 헤어져 누레질지라도,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내 삶을 비추고 있는 그 스무살의 시선이 따가움으로 다가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갈등과 선택의 연속선상에서 단지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라면 어김없이 나는 스무살의 그 때를 회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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