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학용 Dec 03. 2020

#13 히말라야에서 버스를 탄다는 것은

인도 마날리까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나

우리들은 히말라야를 건너는 도로를 이틀째 달리고 있었다. 그 길 끝에서 만나게 될 세상이 오아시스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은 작은 빗방울들 때문이다. 아침부터 차창에 빗금으로 미끄러지던 빗방울들. 라다크의 건조함이 끝난 것이다. 그 빗방울로 어제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만들어진다. 삐죽 홀로 길게만 자라던 나무들이 둥글고 풍성하게 모여 푸른 산의 색을 되찾았다. 


하지만 그 마음과는 달리 길은 점점 험해지고 있었다. 내리막길 경사가 심해지고, 도로를 가로질러 흘러내리는 물이 많아진다 싶더니 비포장 흙길이 시작되었다. 길이 파여 흙탕물이 여기저기 고여 들었다. 차들이 밀리고 버스가 거북이처럼 나아간다 싶더니, 결국 멈춰버리고 만다. 마침내 인도의 시작인가. 나의 여행에서 인도는 늘 기다림의 시간과 함께 왔었다. 아이들은 지루함에 몸이 뒤틀린다. 이제 배마저 고프다. 해남에서 와서 별명이 ‘해남이’인 남수의 질문.


“삼촌, 버스가 왜 안 가요? 이제 몇 시간 남았어요?”

“몇 시간? 오늘 안에 도착할 수 있을지가 걱정인데?”


“아침에 운전사 아저씨가 6시간 걸린다고 했는데요?”

“남수야 있잖아…, 이 삼촌이 인도에서 살아남는 비법을 하나 알려주지. 시간을 따지지도 재지도 마라. 왜냐하면 화병 나서 죽을지도 모른다. 인도 시간은 대한민국의 시간과 다르게 흐르거든.”

인도 마날리 가는 길
인도 마날리 가는 길, 빗방울이 반가운 아이들

남수를 놀려먹는 사이 버스는 1시간 만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 하지만 100미터도 가지 못하고 다시 멈추어서는 또 시동을 꺼야 했다. 남수의 실망하는 한숨소리. 


“삼촌, 그럼 우리 밤에는 어떻게 해요?”

“뭐가 걱정이니? 배낭에서 침낭 꺼내 덥고 추위와 용감하게 싸우면서 결코 아무나 경험할 수 없는 지독히 아름다운 추억을 오늘 밤에 만드는 거지~!”


그때 막내 우현이가 끼어든다. 그는 모자를 운전대처럼 둥글게 쥐고서 운전하는 흉내를 내고 있으면 차멀미가 덜하다고 내내 그러고 왔었다. 


“남수 형, 혹시 짜이 장수가 짜이를 파느라고 막히는 것 아닐까?”

“우현아! 그러면, 우리가 나가서 짜이 다 팔아주자~ 응!”


둘 덕분에 지루한 시간을 뚫고 차 안에 웃음소리가 터진다. 하지만 우리들의 걱정 따위는 아랑곳 않고 버스가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사이, 우리를 포함한 승객들은 점점 말이 없어진다. 그때 즈음이었다. 운전기사가 승객들을 돌아보며 엄청나게 큰 폭풍이 앞쪽에서 몰려오고 있다고 소리쳤다. 그랬다. 하늘은 온통 먹장구름으로 뒤덮였고 순식간에 5미터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안개가 몰려들었다. 


그 순간. 우리들은 무엇인가를 보고야 말았다. 버스 옆으로 창문을 다 채울 정도로 큰 바윗덩어리가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뒤집어진 트럭까지. 순간 내 심장도 쿵 하고 떨어진다. 산비탈의 바위 덩어리들이 도로로 굴러 떨어진 모양이다. 아직도 도로 가까운 비탈 위에 적지 않은 바위더미들이 위태롭게 붙어있었다. 아이들은 이미 잠이 다 달아나버린 얼굴로 얼어버렸다. 진실이는 창 커튼을 생명줄 인양 부여잡고 눈을 질끈 감고 있다. 


바위들이 계속 내리는 빗물로 다시 구르기 시작한다면? 아마 우리들의 삶도 저 바위와 함께 굴러 굴러 계곡 아래로 향하겠지. 생각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이럴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히말라야에서 버스를 탄다는 것은 삶과 죽음의 맨얼굴과 마주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곳에서는 죽음도 삶도 그 경계가 참 선명하다는 생각과 함께.     

멀고 먼 인도 마날리 가는 길
아침부터 또 버스를 타고 달렸다. 안개가 뿌옇더니 그렇게 지독한 안개를, 그렇게 오랫동안 본 건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멋있다고 생각했다. But… 으악! 비가 오고 앞앞앞의 차는 고장이 나고, 1시간 무렵을 제자리에서 기다리고, 베테랑 기사 아저씨는 ‘Big storm's coming!’이라고 소리를 지르고, 아 이대로 여기서 자나 보구나 싶었다. 제대로 버스에서 추억을 남기겠구나, ㅋㅋㅋ 아쉽게도 길이 잘 풀려 마날리로 갈 수 있었다. -(어린 여행자의 일기, 아라)      
오늘은 어제보다 7시간을 적게 왔다. 그래서 좋았다. 그런데 도중에 버스가 1시간 동안 멈췄다. 처음에는 이유도 몰랐다. 왜냐하면 운전기사들이 사고가 생겼나 보러 갔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 기사한테 물어봤더니 비 때문에 큰 돌이 떨어지는 바람에 버스가 길 아래로 떨어졌다고 했다. 아찔한 상황이었다. 다행히도 우리가 갈 때는 작은 돌들만 떨어지고 큰 돌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또 긴장 속에서 마날리에 도착했다. 오늘은 파스타를 먹었는데 내가 싫어하는 종류의 파스타여서 슬펐다. 내일은 꼭 맛있는 것을 먹을 것이다. -(어린 여행자의 일기, 우현)     


마날리 버스터미널에 무사히 도착했다. 8시간 만이다. 버스 지붕 위에 실린 배낭들을 채 내리기도 전에 택시 운전사들과 삐끼들이 몰려들어 우리 일행을 에워쌌다. 우리 인원은 15명이었고, 그들에게는 큰 먹잇감이었다. 


“헤이 친구들, 택시 필요하지?”

“싸고 좋은 숙소 내가 알아.”

“물 사지 않을래?”

“어느 나라에서 왔니?”

“너희 모두 몇 명이야?” 


알아듣기 힘든 인도식 영어로 와글거리는 통에 아이들은 혼이 빠진 얼굴들이다. 무슨 이유인지 함께 달려들지 못하고 조금 떨어져 바라만 보고 있던 택시 기사 두 명을 불렀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우리들은 그들의 택시 두 대에 나누어 타고 여행자의 거리가 있는 ‘바사슈트’ 지역으로 이동했다. 

마날리 바사슈트 마을 

마을 어귀에 도착하고, 아이들은 모둠별로 흩어진다. 숙소 사냥이다. 그들은 3일 치의 용돈을 미리 받았다. 지금부터 아이들은 그 용돈의 범위 안에서 자고 싶은 곳에서 자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놀고 싶은 만큼 놀 것이다. 아무것도 간섭받지 않고, 누구도 잘했다거나 못했다고 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스스로의 성찰이 필요할 뿐이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마을은 산비탈을 깎아 만든 지형이라 숙소 사냥이 쉽지만은 않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이 시간을 좋아한다. 이유는 간명하다. 이 시간의 온전한 주인은 그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내가 여행학교에서 가장 소중히 생각하는 가치가 바로 그것이다. 스스로 여행자가 되는 것. 길 위에서 만나는 삶에 주인이 되는 것. 먹는 것, 자는 것, 그리고 노는 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단순한 삶의 아름다움을 몸 안에 익혀보는 것이다. 이제부터 여행은 온전히 아이들의 것이다.         


(마날리의) 바사슈트는 아기자기한 곳이었다. 레보다 훨씬 고도도 낮아서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비가 오고 있어서 힘들었다. 여기 숙소는 가격도 레보다 싸고 시설도 더 좋은 거 같다. 레는 지옥이고 마날리는 천국이다. -(어린 여행자의 일기, 정호)
매거진의 이전글 #12 인도는 늘 이런 식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