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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루리 Mar 10. 2022

'불안한 사람들'(프레드릭 배크만)을 읽고..


십수년쯤전에 본 영화 한편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은행강도사건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은행에서 모의훈련을 실시하는 경찰들, 어수룩하기만 한 주인공이 강도역할을 담당합니다. 정해진 메뉴얼대로 훈련을 실시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이 놈의(?) 인질들이 당췌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나는 강도로서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고 싶은데.. 어느새 훈련은 가야할 방향을 잃은 채, 뭔가가 꼬여도 단단히 꼬여 버립니다. 결국 모의 인질극은 특수기동대가 투입되고 전국에 TV가 생중계가 되는 등.. 실전보다 더 실전같은 은행강도사건으로 발전되고야 맙니다.


지금은 세세하게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배우 정재영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 '바르게 살자'의 내용입니다. 은행강도역을 맡은 경찰입장에서 제 말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는 인질(?)들이 참 야속하게만 느껴집니다. 좌충우돌 기발한 발상의 코믹한 스토리가 지금도 생각이 나네요.


소설 '불안한 사람들'을 읽으면서 어렴풋하게나마 영화속 줄거리가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똑같은 설정은 아니지만, 강도와 인질을 담당하는 그들이 어느새 상황을 역이용하여 순간을 즐기는 스토리가 나도 모르는 사이 미소를 머금게 합니다. 어쩜 이리도 한결같이 독특하기만 할까요? 은행강도의 시선에서 바라보자면 그들은 정말 최악의 인질들입니다.


'불안한 사람들'은 '오베라는 남자'의 저자로 유명한 스웨덴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의 2021년 작품입니다. 매번 신작을 출간할 때마다 독특한 발상의 소설들로 독자들의 관심을 독차지합니다. 이번 소설 역시 예외가 아니네요. 아파트 매매 오픈하우스에서 펼쳐지는 은행강도의 좌충우돌 인질극이란 내용이 참 솔깃했습니다. 역시나 마지막장을 덮은 지금, 흐뭇한 미소가 입가에서 가실 줄 모릅니다. 독자들의 입맛을 충족시키기에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요즘은 웃음과 감동이 함께 하는 힐링소설이 대세이니까요.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는.. 소설초반부에서 잠시잠깐 책을 덮어 버렸습니다. 왜냐 하면, 좀체 줄거리가 진행이 되지 않더라.. 이겁니다. 가난한 삶에 찌들어 아파트 월세 걱정을 하던 은행강도가 애꿎은 오픈하우스고객들을 상대로 때아닌 인질극을 벌이게 됩니다. 그녀(강도)는 결코 이 상황을 의도한 것이 아닙니다. 전혀 그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나도 모르게 인질극을 벌이게 되었군요.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다음 이야기가 너무나도 궁금한데 스토리는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질 않습니다. 소설은 인질로 붙잡혀 있던 인물들의 개별적인 이야기들을 한참동안이나 풀어 놓습니다. 그들이 누구인지. 과거에 어떤 일들을 겪었고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 것인지 단 한명도 허투루 빼놓지 않습니다. 인물들간의 다툼이나 갈등요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걸 굳이 알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요. 성향의 차이겠지요. 계속해서 들여다 봅시다.


사라진 은행강도의 행방을 쫓기 위해 사건을 수사하는 젊은 경찰 '야크'와 나이든 경찰 '짐'.. 그들은 부자지간입니다. 심문과정을 듣고 있자니 어쩜 이렇게도 화가 나는 것일까요? 인질로 붙잡혔던 그들은 하나같이 왜 이 모양인지 경찰을 이렇게나 우습게 생각해도 되는 건가요? 저마다의 콤플렉스에 휩싸여 그저 불안하기만 한 그들.. 소설의 제목 그대로 '불안한 사람들'이 여기 있었군요.

그들은 경찰만 우습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은행강도도 전혀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되려 이 인질극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만큼 은행강도의 범죄행각이 우스울 따름입니다. 고작 6천 5백 크로나, 한화로 약 88만원을 훔치기 위해 은행을 털다니요? 이쯤되면 이후의 이야기는 머릿속에 충분히 그려봄직 하지요. 독자들뿐 아니라 소설속 등장인물들도 은행강도가 경찰에 검거되지 않길 바랍니다. 유유히 현장에서 벗어나 이제는 좀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네요. 눈 녹듯 사라지는 마음의 응어리는 인질들뿐 아니라 경찰의 마음까지도 사로잡아 버립니다.


시종일관 유쾌하고 흐뭇합니다. 때로는 어이없음에 실소를 머금기도 하고 작가의 유머감각과 촌철살인같은 현실풍자에 탄복하기도 합니다. 참, 생각해 보니 장진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특유의 유머코드가 바로 여기에 있었네요. 기발한 발상의 유쾌한 창작자들은 어디에나 존재하는가 봅니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다시금 책장을 넘기길 참 잘한 것 같네요. 서사중심의 소설을 좋아하는 개인적인 성향도 이만큼 흐뭇한 소설이라면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습니다.


소설의 성격 그대로 결말은 누구나 생각해봄직한 전형적인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됩니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전형적이지만 진부하지 않은.. 작가 고유의 마력은 바로 그 유쾌함에 있으니까요. 앞으로 펼쳐질 그들의 행복한 일상을.. 나도 함께 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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