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골쥐 Dec 11. 2020

이탈리아에서 운전하기

사람들이 위험하기로 악명 높은 운전지로 중국과 이탈리아를 꼽지 않던가?

공교롭게도 나는 그 두 나라에서 운전을 했고 또 하고 있다.

경험했던 바로 중국은 도로상황은 물론, 안전 운전에 대한 경각심, 교통규칙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지만, 모두들 상대의 실수에 관대하다. 왜냐, 나도 거지같이 운전하니까 남한테 싫은 소리 할 이유가 없는 거다. 저기서 역주행하는 차가 와도 괜히 창문 열고 소리지르지 않고 슥 비켜가면 그만이다. 또 하나, 중국에서 운전해본 분들은 공감하겠지만 중국에선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경적을 울려댄다. 하지만 그다지 기분 나쁘게 생각할 것도 없다. 그냥 나 여기서 역주행 중이야, 나 갑자기 차선 바꿀 거야, 나 조심해~~ 이런 의미를 담은 경우가 대다수니까. 실제로 경적을 울리는 사람도 그걸 듣는 사람도 그렇게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그렇게 경적은 도로의 일상이 되어, 어느 순간 나도 막 누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


너도 엉망, 나도 엉망, 생각보다 마음이 편했던 중국 운전 (출처:saporedicina.com)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운전하기는 중국에서 운전하기와 사뭇 다르다.
운전자들이 아주 GR 맞다는 점에서 그렇다.
뭐 그렇게 욕할 게 많고 기분 나쁜 일이 많은지 도로에는 차 안에서 손으로 누군가에게 욕을 하고 있는 운전자가 차고 넘친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고된 인생의 한풀이를 길바닥에서 마주친 약자에게 퍼붓는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차 안에서 남들 운전하는 걸 이렇게 보고 있으면, 잘못한 애도 차 안에서 온갖 손짓 다 해가며 욕을 하고, 그 잘못 때문에 놀란 차는 말할 것도 없이 차 안에서 엄청 흥분해 손을 휘두르고 있다.

친구들이 말해주기로는 다들 차 안에서 손으로 욕만 하지 왠만하면 내리는 경우는 없다고 했는데 나는 내 앞에서 차 세우고 내려서 난리 치는 남자도 만나봤다.





처음 이탈리아에서 운전을 시작하고 유럽의 교통규칙에 무지했던 나는 직진 코스에서 달리다 오른쪽에서 차가 들어오면 당연히 내게 우선권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왠만한 유럽에서는 (오른쪽 차선에 따로 양보 표시가 되어 있지 않은 한) 다들 오른쪽에서 메인 도로로 합류하는 차에 우선권을 준단다.

오른쪽에서 합류하는 차량이 있다면 양보하세요


오른쪽이 우선권을 갖는 이유는 직진 코스 차들이 지나치게 과속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기도 하지만, 직진 코스의 차와 오른쪽 합류 차가 충돌할 경우, 오른쪽 차의 운전자가 더 큰 부상의 위험을 갖기 때문이란다. (그림을 그려보면 쉽게 이해가 갈듯)

그러니 유럽에서 운전할 때는 오른쪽에서 들어오는 차가 보인다 싶으면 속도를 멈추고 먼저 가라고 양보해줘야 한다. 그게 규칙이란다.

처음엔 그 규칙을 몰라서 욕 먹었다.
내 앞 차가 섰던 그 날은, 내가 직진이니까 껴들지 마 하고 정말 소심하게 크랙션 잠깐 누른 날이었다. 맹세코 중국의 빠아아아아아아아아앙 이런 거 아니었고 빵의 빠...정도만 소리나는 크랙션이었는데 갑자기 앞 차가 내 앞에서 차를 세우더니 내려서 막 퍼붓기 시작했다. 무슨 소린지 100%는 못 알아들어도 대충 '내가 우선권이 있는데 어디서 크랙숀 울리고 난리야!' 하고 호통치는 것 같았다. 운전석의 나는 얼음이 됐고 뒷좌석의 아이들도 얼어붙긴 매한가지...너무 놀라 눈도 잘 못 쳐다보고, 안타깝게도 항의 한 번 못해보고 쭈구리가 되었다.
상황이 대충 마무리 되고 남편과 그 친구 일동들에게 물어보니 다 앞서 설명한 교통규칙을 이야기해주며 내가 잘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보통 그렇게까지 뭐라고 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니가 운이 없었던 것 같다고...그래 그랬겠지, 내가 나이 지긋한 장년의 이태리 남자였다면 과연 그렇게 차에서 내려서 무섭게 호통을 쳤을까, 아니었겠지...씁쓸했다.



쨌든 그래서 오른쪽 차에게 무조건 양보의 원칙을 가슴에 새기고 운전을 하던 중,
지난 번 총각이 차 세웠던 바로 문제의 그 위치에서 똑같은 상황이 발생한 거다.
이번에는 실수하지 말자 단단히 마음 먹고, 속도를 늦추고 오른쪽 차에게 양보했는데, 이번엔 뒷차가 왜 차 세우고 양보하냐고 뒤에서 경적 울리고 쌍라이트 키고 난리 부르스다.
등뒤로 땀이 쪼로록 흘렀다. 대체 뭘 어쩌라는 거냐.
누구 장단에 춤을 춰야하는 거야...당췌 모르겠어.


그러다 엊그제는 내가 오른쪽에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가까운 곳에서 직진 차가 달려오고 있어서 그 차를 먼저 보내고 내가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 차의 한 100미터 뒤로 직진 차가 한 대 더 오고 있었는데 내게 우선권이 있으니 나는 그 차가 속도를 늦출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첫 차를 보내고 이번엔 내 차례지 싶어서 들어가려고 차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랬더니 순순히 속도를 낮춰줄 거라 생각했던 내 예상과는 달리, 뒤에 오던 차가 그 짧은 순간에 쌍라이트를 미친듯 켜고 손가락 욕을 날리면서 들어오지 말라고 생 GR을 시연하며 지나가셨다.
아놔 진짜 이것들이...

이태리에서의 운전은 정말 빡세다.

다들 각기 다른 운전면허 시험을 치른 건지, 저마다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다.
그냥 사고 나지 않게 최대한 노력하면서 남들이 욕해도, 뭐라 캐도 그냥 오냐, 하고 넘어갈 수 있는 관용과 관대함이 필요하다. 이태리 도로에서는 너는 짖어라, 나는 갈란다의 정신 승리를 거둬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아 근데 이태리에서 외국 면허 중 바로 이태리 면허로 바꿔주는 몇 안되는 나라 중 대한민국이 껴 있다. 하긴 우리나라에서 운전하기도 한 빡셈 하지요? 



작가의 이전글 소심한 번역가, 이탈리아의 섬이 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