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베트의 만찬. 이자크 디네센 저
주어진 기회 앞에 망설이다 기회를 놓치고 아쉬워하는 내게 친구가 보내 준 글이 있다. 인생의 중요한 선택 앞에 떨고 있지만, 선택하든 거부하든 다 괜찮다는 내용이었다. 너무 깊은 울림을 주는 글귀여서 글의 출처가 되는 『바베트의 만찬』을 직접 주문하고 읽어보았다. 아주 얇은 책에 그림까지 곁들여져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인 것 같지만 내용은 가볍지가 않았다. 알아보니 이자크 디네센 (본명 카렌 블릭센)이라는 작가의 노년의 작품으로 다사다난한 그의 인생에서 배운 철학이 녹아든 작품이다.
이자크 디네센은 1885년 덴마크 코펜하겐 출생으로 28세에 보르트 폰 블릭센 남작과 결혼한 후 동아프리카 케냐에서 커피 농장을 경영했다. 영국인 사냥꾼 데니스 핀치 해턴과 사랑에 빠졌으나, 연인과 농장을 모두 잃은 후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두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 당시 수상자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알베르 까뮈였는데 헤밍웨이는 '카렌 블릭센이야말로 진정한 노벨 수상자 대상이다'라는 말로 카렌의 작품을 인정했다. 그의 회고록 『아웃오브아프리카』는 시드니 폴락 감독의 영화로 제작되어 우리에게 친숙하다.
『바베트의 만찬』은 모든 것을 잃고 노르웨이 한 시골 마을의 가정부로 들어온 바베트가 베푼 만찬이 불러일으킨 영향에 관한 이야기다.
만찬에 참석하던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한쪽은 평생을 엄숙한 종교의 그늘 안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려고 했던 두 자매와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며, 또 한쪽은 각자의 생각을 따라 꿈을 추구하며 살던 장군, 오페라 가수로 볼 수 있다. 문제는 그 어느 쪽에서도 구원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목사의 두 딸은 세상을 멀리하며 주어진 공동체와 청렴하게 살았으나, 살림살이는 궁핍했고, 성도들 사이의 분란을 잦아들지 않았다. 즉, 일이 잘 안 풀린 셈이다. 성공을 추구하며, 자신을 든든하게 세울 수 있는 지위, 돈, 가족을 다 얻은 장군도, 예술의 업적을 추구하던 가수도 무언가를 잃은 듯한 순간을 만났다.
오랫동안 수많은 나라에서 이룬 승리의 총합이 결국은 인생의 패배라는 것인가? 로벤히엘름 장군은 젊은 로벤히엘름 중위의 야망을 성취했다. 젊은 그의 야심을 다 채우고도 남을 만큼 성공했다. 세상을 다 얻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 당당하고 세상 물정에 밝은 노인이 된 그가 젊은 시절의 순진했던 자신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는 젊은 자신에게 물었다. 자기가 얻은 것이 무엇 인지, 엄숙하게, 아니 비통해하며 물었다. 어디에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그는 무언가를 잃었던 것이다.
모든 것을 잃은 또 한 여인이 있다. 남편과 아들을 잃고 조국에서 쫓겨나 타국에 몸을 숨겨야 했던 여인 바베트. 보수 없이 두 자매의 일을 돕는 가정부 일을 하지만, 기적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저 그녀가 만드는 음식, 살림살이를 통해 자매의 삶이 나아지고 주변 마을 사람들의 살림살이도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바베트가 집안일을 맡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매는 살림에 드는 비용이 놀랍게 줄고 이웃들을 위해 준비한 수프와 빵이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살찌우는 신비로운 힘을 발휘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도 바베트의 뛰어난 솜씨를 인정했다. 노란 집에 피난 온 이 여인은 제2의 고국이 된 이 나라 말을 배운 적이 없었지만, 엉터리 노르웨이어를 써가며 베를레보그에서 제일 짜다는 장사치들과도 훌륭하게 흥정했다. 부둣가와 장터 사람들은 그녀를 존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복권이 당첨되는 행운이 찾아온다. 그녀는 만 프랑으로 두 자매가 계획하는 돌아가신 아버지(목사)의 백 번째 생일을 기념하는 만찬회를 베풀기로 하고 음식을 준비한다. 모두 12명이 모인 식사자리. 보지도 못한 음식재료에 자칫 만찬자리를 망치지 않을까 우려한다. 그러나 그 걱정이 무색하게, 복권당첨금을 고스란히 다 쓰며 준비한 음식 앞에 그들은 예상치 못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다.
말수가 적은 노인들은 말문이 틔었고, 수년간 거의 듣지 못했던 귀가 열렸다. 시간은 영원 속으로 녹아들었다. 자정이 훨씬 지난 시각, 창문이 황금처럼 빛났고 아름다운 노래가 바깥의 겨울 공기 속으로 흘러나갔다.
한때 서로를 욕했던 두 늙은 여인은 앙숙 같은 사이가 되기 훨씬 이전, 둘이 함께 견진성사를 준비하며 손을 맞잡고 끝도 없이 노래 부르며 베를레보그 거리를 돌아다니던 소녀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한 늙은 형제는 사내아이들이 치고받듯이 옆의 형제의 옆구리르 툭 치며 소리쳤다. “네놈이 나랑 목재 거래할 때, 그때 날 속였지!” 이 소리를 들은 형제는 거의 고꾸라질 정도로 배꼽을 잡고 웃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래, 그랬다. 이 친구야. 내가 그랬어.” 할보르센 선장과 오페고르덴 부인은 어느새 방 한구석에 다정하게 서 있었다. 두 사람은 젊은 시절 비밀스러운 사랑에서 도망치느라 못다 나눈 긴 입맞춤을 했다.
로벤히엘름 장군의 고백에서 저자의 메시지가 녹아 나온다.
우리는 인생의 중대한 선택을 할 때 떨고, 선택을 하고 나서도 잘못한 것이 아닐까 두려워 다시 한번 떱니다. 하지만 우리의 눈이 번쩍 뜨이는 순간이 있습니다. 은총이 무한하다는 것을 때 닫는 순간입니다. 여러분, 은총은 우리가 그것을 믿고 기다리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만을 원합니다. 형제 여러분, 은총은 조건을 달거나 어느 누구를 특별히 선택하지도 않습니다. 은총은 우리 모두를 품에 안으며 죄를 용서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것을 얻었고, 우리가 거부한 것까지도 우리에게 왔습니다. 우리가 거부한 것이 오히려 우리에게 풍요롭게 쏟아졌습니다. 자비와 진리는 하나가 되었고, 정의와 축복이 입맞춤했기 때문입니다.
한 푼도 남기지 않고 다 써버린 바베트는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지 않고 자매들과 함께 지내겠다고 고백한다.
위대한 예술가는 결코 가난하지 않아요. 마님, 예술가들에겐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것이 있어요.
눈이 번쩍 뜨이는 순간, 무한한 은총을 깨닫는 순간, 자비와 진리가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바베트의 만찬은 바로 그 은총의 순간이었고,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이었다. 살면서 무언가를 잃은 것 같은 느낌을 모두가 가지고 있다. 종교인도, 성공한 군인도, 음악가도, 공동체 안에 있은 사람도, 바베트도,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잃고 있다. 무언가를 잃은 것 같은데, 사실은 잃은 것이 아니다. 그것을 바베트의 만찬이 일깨워주었다. 그걸 진부한 단어 '사랑'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그냥 음식이 아니라, 위대한 예술가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음식 앞에 모두 무장해제되고, 손에 손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문득 잃어버린 그 무엇을 다시 찾은 듯한 순간을 경험했다. 그 순간을 작가는 '시간은 영원 속으로 녹아들었다'라고 표현했다. 현실에서 보기 드문 장면이다. 잃어버린 그 무엇. 그것이 없다면 그 어떤 것의 끝도 상실감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열심히 살아왔지만 무언가를 잃은 듯한 답답한 인생에 선물처럼 찾아온 바베트의 만찬은 진정한 예술 작품이었고, 진정한 예술성 앞에 모두의 마음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났다. 귀가 열리고 입이 열리고 창문이 열리고 이야기가 오고 가고 마음이 오고 가고 집안의 노래가 바깥으로 흘러갔다. 닫혀 있고 굳어 있던 것이 흘러가게 하는 건 음식이든 그 무엇이든 톨스토이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가 너무나 갈구하는 진부한 그 '사랑'과 맞닿아 있을까?
앙숙이던 두 여인처럼 누군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얼굴을 외면하는 두 노인처럼 눈을 흘기고 있다.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 마음은 쩍쩍 갈라지는 사막 같은 적막감에 시달린다.
함께 밥을 먹지만, 서로 대립하고 있다.
열심히 살아왔지만, 무언가를 잃은 것 같다.
원하던 것을 이루지 못한 실망감을 보상받을 길이 없다.
이리가나 저리 가나 모든 것의 끝은 상실감뿐이다
바로 그곳에
혀가 풀리고 마음이 빗장을 여는 순간이 찾아왔다.
한 예술가의 진심은 은총이 무한함을 알게 했다.
바베트는 가장 위대한 정신의 현현이며 상징이다.
꽃샘추위가 오고 가는 3월입니다. 한 해를 시작하며 가졌던 많은 결심들도 한풀 꺾이기도 하고, 새 학기와 더불어 새롭게 다시 시작하기도 합니다. 성공지상주의 세상에서 많은 경우는 허탈감과 실패감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주말이 되면 한주의 성취를 감사하며 편하게 쉬어야 하건만, 오히려, 더 자신을 몰아가며 '미친 듯' 뭔가를 하라는 명령에 내몰리기도 합니다. 열심히 살았으나 뭔가 잃어버린 듯한 허전함은 『바베트의 만찬』에 소개되는 인물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선택하든, 거절하든, 오든, 가든, 얻었든, 놓쳤든, 그 어떤 경우라도 우리에게 무한한 은총이 있다고 책은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그 은총을 만나, 오래 막혔던 것이 뚫리며 잃은 것을 회복한 듯한 순간을 경험하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지는 각자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요. 주말 잠시, 그림 곁들여진 얇은 책이라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바베트의 만찬』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