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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heur maman Aug 11. 2021

어머니, 맥주 한 잔 하실래요?

말 한마디의 기쁨

오늘도 지각이다. 항상 마음은 정시 전에 출근하고 싶은데, 아이를 낳고 나니 여러 가지 변수가 생긴다. 그러면 안 되는데 오늘은 아침에 로또를 맞았기에 발걸음이 잘 안 떨어졌다. 노력은 하려 하지만 몸이 잘 안 따라 준다. 아이가 출근 전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남편은 아침에 피곤하겠지만, 나는 아이를 보고 출근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남편보다 출근 시간이 빠른 나는 아이의 자는 모습을 보고 출근하곤 했다. 아침에 일어난 아이에게 어젯밤 열심히 해놓은 반찬들을 보여주니 새벽부터 밥을 먹는다고 한다. 밥과 반찬에 푹 빠져서인가, 울지도 않고 손 흔들며 회사를 잘 다녀오라고 한다. 다행이다. 맘 편히 출근하는 나는 오늘도 운전대를 잡았다. 조금이라도 지체한 날이면 막히는 출근길이 기다리고 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픈 채 날짜를 보며 생각해냈다. 오늘은 어머니 칠순 생신이었다. 다행히 지난 주말에 칠순 파티를 해드렸기에 오늘은 출근길에 연락만 했다.

“할머니 생신 축하드려요.”

출근하며 시댁 채팅방에 우리 귀요미 아들 사진과 함께 문자를 남겼다. 아버님께서 제일 먼저 답장을 하셨다.

“우리 손자가 제일 먼저 할머니 생신 축하 메세지를 전하는구나.”

난 좀 서운했다. 별거 아닌 메시지인데도 말이다. 아이는 아직 문자도 못 쓰는 두 돌 안된 꼬꼬마일 뿐이다. 메시지는 손자가 아니라 며느리가 제일 먼저 축하 메세지를 보낸 거라고 정확하게 정정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기에 웃었다. 아직은 내가 부족한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아들 둘 키우신 시부모님이기 때문에, 며느리의 미묘한 무언가를 알아채시기엔 부족함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무사히 회사를 마치고 퇴근길도 유난히 막혔다. 어젯밤부터 콧물이 있는 아이 때문에 마음이 바빴다. 어서 퇴근 후 병원에 가봐야 했기에 막히는 차 안은 곤욕이었다. 문득 칠순 생신인데 문자 아닌 전화는 한 통 해드리는 게 나을 거 같아서 어머니께 전화했다. 전화 통화 자체를 원래 잘 안하는 스타일이라 문자를 하곤 하는데, 항상 이해해주시는 것 같아서 감사할 따름이다. 처음엔 약간은 어색했지만 금세 안정을 찾고 얘기했다.


“어머니, 오늘은 아버님과 저녁에 맥주 한잔하신다면서요?”

“응~ 아마도 그럴 거 같아. 너희도 같이하면 좋을 텐데.”

“아, 네. 근데 애가 콧물이 나서 병원 가야 해서요.”

“아이구, 고생이 많네. 수고해. 전화줘서 고마워.”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전화를 끊었는데 마음이 좀 그랬다. 그래서 다시 문자를 드렸다.

“어머니, 혹시 저희 집에서 맥주 한잔 하고 싶으시면 오셔도 좋아요.”

그리고 받은 문자.

“그래. 지금 갈게.”


으응? 난 지금 무엇을 한 거지? 그냥 던져본 말은 아니고, 마음에서 우러나서 한 말이긴 했지만 난 어머니가 괜찮다고 하실 줄 알았다. 아이가 병원을 간다고 말씀드렸고, 남편도 야근하여 12시가 넘을지도 모른다고 하였었다. 그리고 어제 통잠을 자지 못한 아이 덕분에 난 피곤하기도 했고, 내일 출근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난 분주해졌다. 아이에게 떡뻥을 가득 쥐여주고 부엌으로 향했다. 아이 병원은 고사하고 냉장고를 열어 부리나케 식사를 준비했다. 엄밀히 말해서 안주꺼리를 준비했다. 팟타이 국수, 연두부 미역 샐러드, 어묵탕 등등 아무것도 준비하지 말라는 문자가 왔지만, 그래도 오늘은 어머니 칠순인데, 그럴 수 없었다. 퇴근 후 어찌나 정신없이 준비했는지, 난 대문까지 열어놓고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음식이 완성될 무렵, 시부모님이 도착하셨다. 아무 것도 준비하지 말라 하셨는데, 모든 반찬과 요리들을 싹싹 비우셨다. 행복한 시간이 되셨던 것 같다. 그러면 된 거지 뭐. 난 그걸로 만족했다.


아무래도 아들이 오기만을 기다리시며 며느리와 더 시간을 갖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만, 보통 9시 전에 잠들던 아이가 하도 잠을 자질 않아서 11시가 넘으니 그제야 가셨다. 그리고 남편은 12시 넘어서 들어왔다. 그리고 고맙다고 한다. 많이 피곤했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전사했다. 낼 아침도 6시엔 일어나야 하는데, 나 낼 회사에서 졸아야 하나?


나도 이럴 때가 있었다. 워킹맘을 하며 정말 하루하루를 바쁘게, 아이를 애틋하게 보며 지내던 때가 있었다. 하루에도 여러 번 CCTV 속의 아이를 보면서 웃고 울고를 반복하였다. 나의 커리어와 아이 사이에서 고민하고 또 고민했던 시절이었다. 정신없는 일상을 살아낼 때도 있었다. 항상 아이를 보고 싶어 하시는 양가 부모님을 생각하며, 유일한 아이와 온전히 함께할 수 있는 주말을 그들에게 양보하기도 했다. 이번 주는 누구랑 함께 보내야 할까를 생각하면서 서운하기도 했다. 그나마 내 마음을 알아주고 돌직구를 잘 날리는 덕분에 친정 부모님은 나를 많이 배려해주셨으나, 잘 몰라주시는 시부모님께는 마음 한쪽엔 서운함만 가득한 채 그냥 웃곤 했었다. 마음에 없는 말과 행동은 안 하는 성격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서든 짬을 내곤 했다. 체력이 강하진 않은 까닭에 퇴근 후엔 약속을 따로 잡지 않곤 했는데, 그런데도 보고 싶어 하시는 그들을 위해 힘을 내었다. 그래도 좋았다. 힘들었지만 그 시간만은 행복했다. 하루를 지내더라도 다음날이 없는 것처럼 열심히 살아내야 후회가 없었다. 지금은 싱가포르로 와서 이제 더는 없다. 코로나시대라 오갈 수도 없다. 이것도 그때의 추억거리가 되었다. 그때를 생각을 하면 웃음이 난다. 나는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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