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숙한 맹세 : As long as the sun and moon shall endure.
마음의 친구를 갖는 것은 앤이 간직한 평생의 꿈이다. 그토록 기다려온 그 꿈이 오늘 이루어지려나 보다. 마릴라는 앤에게 자신과 함께 배리 부인 댁으로 가서 다이애나와 인사를 나누라고 말했다.
“Oh, Marilla, I’m frightened—now that it has come I’m actually frightened.”
평생의 꿈과 마주하게 된 어린 소녀의 마음은 두렵다고 말할 정도로 긴장감과 두근거림이 휘몰아쳤을 것이다. 그래도 앤은 배리 아주머니에게 자신을 소개하며 끝에 e가 붙는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I solemnly swear to be faithful to my bosom friend, Diana Barry, as long as the sun and moon shall endure.”
다이애나의 두 손을 마주 잡고 마음의 친구가 되겠다는 맹세도 엄숙히 마쳤다. 평생의 꿈을 이룬 앤은 지금 이 순간 이 섬에서 가장 행복한 소녀다.
초콜릿
초콜릿은 테오브로마 카카오(Theobroma Cacao)로 만든다. 1753년에 칼 폰 린네(Carl von Linné, 1707~1778년)가 붙인 학명이다. 테오브로마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신들의 음식이라는 뜻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고대 마야인들은 카카오를 재배하여 거품을 낸 음료로 만들어 마셨다. 아즈텍인들 역시 음료와 화폐로 중요하게 여겼는데, 이 음료에는 인간의 피를 상징하는 제의적인 의미도 담겨있었다. 이후 유럽의 스페인 궁정에서는 지위의 상징이 되었고, 프랑스 궁정에서는 우아함을 상징하는 음료가 되었다.
카카오 열매는 15세기 말에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1506년)의 신대륙을 향한 4번째 항해를 통해 유럽에 알려졌다. 1세기 후에는 대양을 항해하는 코코아의 상업적인 거래가 시작되었고, 17세기 전반기에 스페인 궁정이 사랑하는 음료로 재탄생되었다. 이후 스페인은 약 1세기 동안 카카오 열매를 비밀리에 관리하면서 비싼 가격으로 유럽에 판매했다.
1615년, 합스부르크(Habsburg) 왕가의 안 도트리슈(Anne d'Autriche, 1601~1666년)가 루이 13세(Louis XIII, 1601~1643년)와의 혼인을 위해 프랑스로 간다. 초록지붕 집의 앤처럼 그녀도 스펠링 끝자리에 e가 붙어있다. 스페인의 왕 펠리페 3세(Felipe III, 1578~1621년)의 딸이자 유럽에서 손이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알려진 그녀는 프랑스 궁정에 초콜릿을 소개했다. 초콜릿은 마시면 가슴이 두근두근 했기 때문에 사랑의 묘약이라 불렸다.
Mancerina와 Tasse Trembleuse (구글 검색)
프랑스의 상류층은 아침 식사 시간에 초콜릿을 즐겨 마셨다. 가능하면 침대에 반쯤 기댄 채로 마셨다. 누워있는 것도 아니고 앉은 것도 아닌 상태로 거품이 많이 난 초콜릿을 마셨기 때문에 길쭉한 잔과 독특한 받침을 사용했다. 1640년에 페루 총독을 지낸 스페인의 만세라 후작에 의해 제작된 Mancerina는 잔을 고정시킬 수 있도록 마치 테라스의 난간 같은 구조물이 받침의 중앙에 있다.프랑스에서는 1690년대 즈음에 받침의 굽을 높게 만들고 그 안에 잔이 놓아 흔들리지 않도록 만든 Tasse Trembleuse가 제작되었다. 덕분에 사람들은 여유롭고 나태해 보이는 자세로 초콜릿을 옷에 흘리지 않고 마실 수 있었다.
앤이 매튜 아저씨께 받은 초콜릿은 고체 상태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초콜릿은 액체에서 고체 상태의 제품으로 발전한다. 물론 이전에도 고형 초콜릿이 있었지만, 그것은 음료로 만들기 위한 것이어서 앤의 완제품과는 차이가 있다. 1828년에 네덜란드의 콘래드 반 호텐(Conrad J, van Houten, 1801~1887년)은 볶은 카카오에서 지방을 추출하는 특허를 등록했다. 1847년에는 영국에서 최초로 판형 초콜릿 제품을 출시했다. 높아지는 인기만큼 생산도 증가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하인이 거품이 나도록 힘들게 저어서 만드는 초콜릿 음료를 대신하여 어린 소녀가 절반을 뚝 떼어 손쉽게 나눌 수 있는 고형 초콜릿이 사랑을 독차지하게 되었다.
두 배의 달콤함 : I can give Diana half of them.
다이애나는 앤에게 이것저것 줄 것도 많고 빌려줄 것도 많지만, 앤은 지금 이 순간 이 섬에서 가장 행복한 마음을 갖게 해 준 다이애나에게 줄 것이 없었다. 그런데 산타 할아버지 같은 매튜 아저씨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았다. 매튜 아저씨가 건넨 작은 봉투에는 보석 같은 초콜릿이 여러 개 들어있었다. 매튜는 앤과 처음으로 아침식사를 했던 날에 앤이 했던 초콜릿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I’ll just eat one to-night, Marilla. And I can give Diana half of them, can’t I? The other half will taste twice as sweet to me if I give some to her. It’s delightful to think I have something to give her.”
앤은 허락을 구했다. 오늘은 하나만 먹고 다이애나에게 초콜릿 반을 나누어주고 싶다고 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나머지 절반은 두 배로 달콤할 것이라는 말과 함께! 초콜릿은 앤에게 삶의 달콤함이자 행복이다. 그것을 서슴없이 나누겠다는 앤이 없는 삶은 이제 마릴라에게는 상상하지 못할 일이 되어버렸다. 앤과 함께한 날들은 봉투에 든 초콜릿 하나보다 작은 크기의 시간이지만, 그 속에 담긴 모든 달콤함과 비교할 수 없는 존재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