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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럭저럭 소소 Oct 31. 2020

작은 것을 종합하면 큰 것을 알 수 있지

어제 지인 한 분을 만났다. 학습관에서 사회학 강의를 함께 들었던 분인데 따로 오붓한 시간을 보낸 적은 없었다. 서로가 나름의 스케줄이 있고 강의장을 떠나 따로 만남을 가질 계기를 부러 만들지 않았다. 사람을 알아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나이 들수록 길어진다. 예전의 나는 어떤 사람이 마음에 들면 그 사람과 빨리 친해지기 위해 작업을 시작하곤 했다. 남자든 여자든 성의 구분 없이 그 사람이 궁금해서 더 많은 것을 알아내려고 노력했다. 실용적인 지식을 쌓는 일에서라면 적극적인 노력은 그만큼의 생산성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을 알아가는 데는 인위적인 노력이 별로 쓸모가 없다. 사람을 지식 쌓듯이 알아갈 수 있나. 좋은 만남일수록, 마음이 끌리는 사람일수록 자연에 맡겨두자는 쪽으로 흐른다. 만날 사람은 적절한 때에 언젠가 만나진 다는 막연한 믿음 같은 게 있는데, 만약 그런 때가 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건 그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 긁어 부스럼 만들지 않는 만남, 얇고 투명한 유리잔을 다룰 때처럼 조심스럽게 만들어가고 싶은 만남. 이런 만남을 그리고 있다는 것은 어떤 학습효과 때문인 것 같다. 온갖 만남 중에 사람과의 만남만큼 나를 흔들어놓은 것은 없다. 그래서 그 만남은 신중해야 한다는.

화요일 내가 서울에 있다는 것을 언젠가 그분께 말한 적이 있는 모양이다. 그분도 서울 올 일이 있는데 시간이 맞으면 어디쯤에서 만나는 게 어떠냐고 문자로 물어왔다. 실례가 아니냐면서. 실례라니, 때마침 반가운 소식이 당도한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내 강의가 끝나는 곳은 종각 근처고 그분이 출발하는 곳은 서대문 쪽이라니, 조계사에서 만나기로 했다. 시월 조계사는 국화 향연이다. 대웅전 앞 뜰 수령 백 년은 넘은 듯한 노목이 국화 목도리를 둘렀다. 밑동을 국화로 폭신하게 감싸인 나무 주변을 사람들이 둘러서서 사진을 찍는다. 이 많은 국화는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작은 화분 하나하나마다 시주한 사람들의 이름표가 꽂혀있다. 한철 아름다운 경내를 위해 누군가 꽃 공양을 한 거다.

근처 조계사 공양간에는 신도증을 가진 사람한테는 한 끼 2천 원에 밥을 준다. 내 강의에도 신도증을 가진 분이 계셔서 그분 덕으로 강의 오신 분들과 조계사 이천 원짜리 점심을 한 3년째 먹고 있다. 근처 식당들의 칠팔천 원짜리 음식보다 속도 편하고 양도 적당해서 마음에 든다. 벤치에 앉은 노인들은 일행과 같이 온 분들도 있고 혼자 앉은 분도 있다. 이런 분들은 조계사 점심을 먹고 여기 앉아 사람 구경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계시나. 특별히 뭘 보자는 생각 없이 앞을 향해 눈을 두고 있자니, 자분자분 들려오는 사람들 말소리들이 분화되지 않은 채 한 덩어리 소리로 배경이 된다. 그때 내 옆자리에 앉은 할아버지가 내게 말을 걸어온다. "혹시 책 보는 거 좋아해요?" "그런 편이죠" "금강경 잘 나온 거 있는데 한 권 드려도 될까요?" 나는 잠시 이게 뭐지? 나한테 왜? 이런 생각이 스친다. 금강경이라면 응무소주 이생 기심,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 어디고 집착 없는 자유인이 돼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경전 아닌가. 요즘 들뢰즈니 니체니 버거운 사상가들의 철학으로 머리가 무거운데, 이런 나에게 (법계에서) 뭔가 의미 있는 도움을 주려는 것인가 보다, 나는 순간적으로 응했다. "네, 감사합니다."하고.

그 노인은 천천히 일어서더니 어디론가 가서는 푸른색 하드보드에 금박 글자가 적힌 책 한 권을 들고 왔다. 내가 그 책을 받아 들고 천천히 넘기자 그분은 금강경은 134쪽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맹자, 산상수훈, 금강경 의 일부를 한자와 번역으로 같이 실은 책인데, 받아 들고 보니 이 책을 그리 애독할 것 같지 않을 느낌이 들었고 그렇잖아도 비좁은 책장 어디에 이 책을 두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애써 이 상황을 나를 위한 법계의 신중한 연출이라고 믿고 싶어 지는 마음. 잠시 후 노인은 "혹시 책이 마음에 들면 천 원 정도 줄 수 있냐?"라고 한다. 순간 이건 또 뭐지? 하는 마음. 이 노인은 법보시를 하시는 분인가, 아니면 절 사정을 잘 알아 포교용 책을 얼마간 집어올 수 있고 그걸로 푼 돈이나마 버는 분인가, 휘리릭 계산기가 돌아간다. 나는 법보시를 받았다 믿고 지갑을 열었다. 천 원짜리가 없어 오천 원짜리 한 장을 드렸다. 그러고는 감흥이 퍽 떨어진 채로 책장을 훌렁훌렁 넘기고 있으니 노인이 또 어디론가 천천히 갔다가 잠시 후 돌아온다. 나한테 책갈피라며 건네는 종이 조각, 관세음보살이 그려져 있다. 별로 탐탁해하지 않는 기운을 감지 한신 것인가. 이 노인분은 사람을 오래 관찰해 어떤 패턴을 알아내신 분인 듯하다. 이 노인은 내 어디를 봐서 책을 받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을까.

오래전에 본 알 파치노 주연의 '여인의 향기'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퇴역장교 슬레이드는 시력을 완전히 잃고 절망 끝에 마지막으로 자신이 해보고 싶었던 여행을 하며 돈이나 실컷 쓰고 죽자는 결심을 한다. 아르바이트생 찰리와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을 때 슬레이드는 찰리에게 그들을 시중들던 스튜어디스의 고향을 알아맞힌다. 찰리가 신기해서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묻자 "작은 것을 종합하면 큰 것을 알 수 있다"라고 대답하는 장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나를 구성하는 작은 부스러기들이 말해준다. 액면 그대로, 본질이랄 것 없이 드러나 있는 나. 무엇을 감추고 말고 할 것인가. 볼 눈이 없는 사람에게 세상은 신비다. 노인은 벤치에 앉은 그 많은 사람 중에 내가 금강경을 받을만한 사람이라고 찍었고 적중했고 자신이 원하는 돈을 챙겼고 그게 생각보다 다섯 배 많으니 관세음보살 종이조각을 덤으로 줬다. 팩트는 이런데, 거기에 다른 의미를 붙이는 것은 믿음의 영역이겠지. 믿으면 있고 안 믿기로 결정하면 사기가 되는 세상, 둘이 아니다. 양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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