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편을 들어야 될지
르완다에서 복귀하느라 자택에서 2주간 강제 자가격리 중입니다. 제게 좀 더 쾌적한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밥 먹기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하고자 집사람과 딸내미가 시내의 레지던스 호텔을 얻어 나갔습니다. 연말에 엄마와 딸이, 단둘이 오붓하게 호텔 생활을 즐기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저도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잘 지내나 싶었던 둘은 며칠 못 가서 한 판 붙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남자 친구를 만나러 나가느라 호텔 방에 엄마만 남겨두고 가는 게 미안했던 딸이 조그만 선물을 준비한 게 싸움의 발단이었습니다. 딸이 나름대로 신경 쓴다고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비싼 케이크와 음료를 준비했는데 케이크를 싫어하는 집사람은 그게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입니다.
둘은 번갈아 제게 전화해서 하소연을 했습니다. 먼저 집사람입니다.
"걔는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기어 나갔어"
"어쩌겠어. 크리스마스 이브에 방구석에 있지 못하는 청춘인데..."
"나가는 건 좋은데 이상한 걸 주고 가더라니깐"
"뭔데?"
"엄마 혼자 놔두고 가는 게 미안하다고 쪼끄만 조각 케이크와 이상한 음료수를 날 먹으라고 주고 갔어"
"그럼 감사하고 칭찬할 일 아니야?"
"당신도 똑같은 소리를 하네. 나 케이크 안 좋아하잖아? 선물은 받는 사람이 좋아하는 걸 해야지"
"정성으로 받아. 지 딴에는 엄마한테 좋은 걸 해주고 싶었나 보지"
"좋아하는 게 뭔지도 모르는 게 무슨 정성이야. 싫어하는 걸 비싼 돈 주고 사서 던져놓고 가는 게 정성이야?"
"참고 먹어봐. 그래도 선물이고 어쩌다 있는 일인데"
"몰라! 걔는 쓸데없이 비싼 데 돈 쓰고 욕 얻어먹는 미친년이야!"
얼마 안 있어 딸내미에게서도 전화가 왔습니다.
"아빠! 엄마는 도대체 왜 그래?"
"야! 니가 엄마가 좋아하지도 않은 걸 선물이라고 줬다며?"
"좋아하지는 않더라도 준 사람을 생각해서 그냥 먹을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엄마가 그럴 사람이냐? 너는 아직도 엄마를 모르냐"
"몰라. 엄마는 쓸데없이 까탈스러워"
"기왕 선물하려면 엄마가 좋아하는 걸 하지 그랬냐?"
"도대체 엄마가 좋아하는 게 뭔데?"
"그건 아빠도 모르지. 아빤 그래서 선물을 아예 안 하잖아. 그러면 최소한 너처럼 점수가 까이지는 않지"
"아이고! 아빠는 그걸 자랑이라고 해?"
두 여자 달래느라고 힘드네요. 그래도 이 정도면 누구 편도 들지 않으면서 가운데서 잘한 거 아닌가요?
2020년 12월 26일
묵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