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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묵묵 Nov 28. 2022

이 정도 경력이면 화려하게 아파 본 걸까요?

어이없었던 저의 병원 기록

제가 걸렸던 질병과 당했던 부상을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쓸개 제거 (2014년)


직장 건강검진에서 쓸개에 담석과 염증이 발견됐습니다. 가끔씩 배가 아파 힘들었었는데 그 조그만 쓸개 안에 담석이란 놈이 자라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세브란스병원에 바로 좇아갔더니 초음파 사진을 본 의사 양반이 두 말도 않고 쓸개를 제거하자는 겁니다. 담석만 제거하면 될 줄 알았던 저는 쓸개를 아예 떼어 버리자는 소리에 놀라 자빠질 뻔했습니다.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인공 쓸개를 달아야 되냐’고 물었습니다. 의사가 이상한 표정 속에 ‘그거 없어도 사는데 지장 없어요’ 했습니다. 간에서 생성한 쓸개즙을 저장하는 창고 같은 거라 간만 심하게 망가뜨리지 않으면 괜찮다는 겁니다. 자기가 여태까지 쓸개 뗀 환자가 천 명은 되고 당시도 수술이 한 달 넘게 밀려 있다면서 걱정할 필요 없다고도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쓸개 빠진 인간이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사는 데 지장은 없습니다.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쓸개 빠진 놈이라 놀림받는 거 외에는.   


죽을 뻔했던 말라리아 (2015년)


그해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말라리아에 걸렸던 환자 224,000,000명 중 562,000명이 사망했습니다. 의료 인프라가 부실한 아프리카에서도 최빈국 르완다에 파견 나가 살던 시절이라 하마터면 저도 그 50여만 여명 중의 하나가 될 뻔했습니다. 부임 초기에 멋모르고 한국에서 하듯 습관적으로 야근을 하다 부지불식간에 말라리아모기에 물렸던 모양입니다. 처음에는 증상이 대수롭지 않아 감기인 줄만 알았습니다. 대충 넘어가려다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혹시나 하고 갔던 병원에서 말라리아 진단을 받고는 기겁을 했습니다. 병원에 식당이 없어 고생은 했습니다만 3박 4일 입원으로 쉽게 완쾌됐습니다. 따라오지 못하고 한국에 남아있던 마누라에게는 걱정할까 봐 퇴원 후에 알려줬습니다. 걱정은커녕 ‘아프리카에 갈 때 당연히 각오했던 거 아니야?’하던 의연한 반응에 어이없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는 얻기 힘든 진기한 경험이었다고 자부합니다. 


황당했던 다리 골절 (2022년)


연초에 오른쪽 다리가 두 군데 부러지고 인대가 끊어졌었습니다. 인체에서 가장 튼튼하다는 정강이뼈, 그 옆에 가는 비골뼈가 부러지고 복숭아뼈 근처 인대에 금이 갔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참으로 황당한 사고였습니다. 제가 아직 노인네도 아니고, 뛰어가다 그런 것도 아니고, 술에 취해 그런 것도 아니고, 누구와 부딪혀서 그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횡단보도를 건너다 차도와 인도 사이 비스듬한 경계석을 밟고 혼자 넘어지면서 생긴 사고였습니다. 살짝 엉덩방아를 찧는 순간 들렸던 딱 하는 소리가 제 몸에서 난 것인지도 몰랐습니다. 아파서 도저히 일어설 수가 없게 되어서야 아무래도 뼈가 부러진 것 같아 119 응급차를 불렀습니다. 사고가 설 연휴 직전에 벌어져서 의사들이 휴가에서 복귀할 때까지 기다리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부러진 다리를 붙들고 화장실 가고, 씻고 하느라 움직일 때마다 아파 죽는 줄 알았거든요. 항시 길바닥을 잘 보고 다녀야 된다는 아주 귀중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얻어걸린 코로나 (2022년)


다리 골절로 입원해 있던 병원에서 코로나에 걸렸습니다. 3주 정도 입원해 있던 4인실에서 옆 침대의 누군가에게 혹은 매일 출퇴근하는 의료진에게 옮겼던 것 같습니다.. 병원에서 걸렸으니 책임지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사식 넣어주느라 몰래몰래 집사람과 딸아이가 면회 왔던 게 문제 될까 잠자코 있었습니다. 사람 많은 로비에서 2미터 이상 떨어져서 간식거리를 주고받는 정도였지만, 방역 지침을 어긴 것 같아 찝찝했거든요. 코로나에 걸렸다고 즉시 1인실에 격리시키더군요. 쓰지 못하는 다리로는 아무래도 집보다 병원 생활이 편하기에 실비보험 쓰면서 더 입원해 있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 하나 때문에 식사와 회진, 소득 때마다 방역복을 입었다 벗었다 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미안하여 확진 판정 다음날 바로 퇴원했습니다. 퇴원 때는 대중교통도 안되고 운전도 못해서 10만 원 주고 사설 구급차를 불렀습니다. 목이 약간 부은 거 외에는 아무 증상이 없었기에 병원에서 하루 4번 체온 잴 때 발각되지 않았더라면 코로나에 걸렸는지도 모르고 넘어갈 뻔했습니다. 


그 외 잡다한 질병으로는 아프리카에 살면서 걸려봤던 아메바 감염, 식중독, 장염 등이 있습니다. 이만하면 꽤 화려한 병원 경력 아닐까요? 


2022년 11월 28일

묵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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