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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비 Mar 26. 2024

너란 존재는

나무

어둠의 흙을 뚫고

오랜 시간 동안 오르고 올라

코끼리 다리 같은 거친 단단함으로

너는 굳건히 섰다.

그 세월을 견딘 강한 밑동과

하늘을 향해 펼친 잿빛 가지로

네가 마침내 우리에게 내놓은 건

말도 안 되는 천진함

부서지는 웃음으로 가볍디 가벼운 바람에도 팔랑이며

수천수만의 초록손으로 까르르 손뼉 치는 너를 만나다니.


때론

보는 이의 가슴마다 탄성으로 물들이는

꽃분홍 사치를 허락하기도 하고.

흐드러지게 아름답기만 한 줄 알았더니

넉넉하기도 하여

긴 시간 고통과 인내로 뻗어 올린 기둥을

기꺼이 다른 이에게 내주며 함께 오르는 연대.

시작은 낮고 어둡고 작았지만

온 땅을 사정없이 내리쬐는 태양마저 가리며

무한의 하늘을 네 배경으로 만들어버리는 반역의 예술.

그 모든 서사를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한 마디의 불평도 없이 무심히 해내는

너는 존재로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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