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에세이스트> 공모전 14회 가작 수상작입니다. :)
여러분의 이번 새해 목표는 무엇인가요?
이번엔 코로나 때문에 2020년 한 해 내내 온 세상이 온 난리여서 이러다가 자칫 2021년이 안 오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다행히 2021년은 곧 올 것 같다. 이렇게 새해가 밝아 올 때마다 내가 항상 하는 건 바로 “새해 목표” 세우기. 새해 목표를 세운다고 해서 항상 다 달성하는 건 아니지만 한 해를 시작할 때마다 목표를 세우면 왠지 뿌듯한 기분도 들고 나 자신이 장하다는 기분이 들어서 꼬박꼬박 세우는 것 같다. 내가 주로 세웠던 새해 목표는 "운동 열심히 하기", "1년 동안 책 100권 읽기", "전부 A 받기" 등 자기 계발을 하기 위한 것들이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얘기다. 보통은 그렇게 새해에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계속 채찍질하며 결국엔 자신이 한층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 하는 거니깐.
하지만 이번 다가오는 2021년에는 지금까지 세워온 자기 계발성 새해 목표와는 좀 다른 목표를 세워보려 한다. 이번 해에는 좀 더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는 목표로 말이다.
사실 이번에 색다른 새해 목표를 세우기로 마음먹게 된 건 코로나 덕분(?)이었던 것 같다. 코로나로 인해 수업이 다 온라인으로 바뀌다 보니 뭔가 엄마 아빠와 너무 멀리 떨어져 살며 혼자서 공부를 하는 게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그래서 고민하던 찰나에,
"그럼 그냥 다시 한국에 오는 게 낫지 않겠니? 어차피 다 온라인 수업인 데다가 마지막 학기고. 쉴 때는 엄마 아빠랑 같이 시간도 보내고 얼마나 좋아"
엄마 말을 들어보니 정말 그게 나은 것 같았다. 그렇게 하면 오히려 돈도 아끼고 혼자서 굳이 나를 고립시킬 필요가 없어지니 일석이조인 듯싶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 미련 없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2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엄마 아빠가 있는 한국으로 곧바로 귀국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미국으로 유학 갈 때만 해도 나는 절대적으로 미국에 뼈를 묻을 거라고 큰소리 땅땅 쳤는데 다시 한국에 오니 엄마가 해준 음식도 맛있고, 쥐 소리와 쥐오줌 냄새가 나는 그 감옥보다도 못한 자취방에 안 있어도 되고. (미국이라고 다 좋은 건 아니었다). 물론 마지막 학기에 듣는 수업이어서 다른 때보다 난이도도 높고, 심지어 과제도 더 많았고 시험도 많았지만 짬 날 때마다 엄마 아빠랑 함께 시간 보내는 게 너무 좋았다. 그건 엄마 아빠도 같은 마음이셨나 보다.
"코로나 때문에 요즘 걱정이긴 해도 그것 때문에 우리 딸이 다시 와서 이렇게 같이 있으니깐 좋네."
생각해보니 엄마 아빠와 시간을 이렇게 제대로 보낸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할 정도였다. 초등학생 때만 해도 다 같이 영화관에 쪼르륵 앉아서 영화도 보고, 생일에는 나름대로 기분 낸다고 고깔모자 쓴 채로 케이크를 포크로 마구 파먹기도 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계속 공부에만 매달리다 보니 엄마 아빠와 보내는 시간은 자연스레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엄마 아빠와 자주 시간을 안 보내다 보니 항상 내 기억 속에는 초등학교 때 기억하는 팔팔한 엄마 아빠만 남아있었고, 그래서 나는 당연히 엄마 아빠라는 존재는 내 곁에 평생 든든하게 있을 버팀목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보니 언제부터였는지는 몰라도 엄마 머리에는 새카만 검은 머리 대신 흰머리가 숭숭 나셨고, 나에게 자전거 타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려 이리저리 뛰어다니셨던 아빠는 몇십 년 동안 장사하면서 다 닳아버린 무릎 연골이 아픈지 틈날 때마다 무릎을 만지작거리셨다.
나이가 훅 들어버린 엄마 아빠를 보고 있자니 문득, ‘엄마 아빠도 언젠간 내 곁을 떠나실 날이 오긴 오겠구나.’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었다.
나: “아빠, 아빠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오래됐는데도 할아버지 보고 싶어?”
할아버지는 아빠가 딱 지금 내 나이였을 때 돌아가셨다고 했다.
아빠: “가끔이 아니라 항상 보고 싶지. 보고 싶은 건 맨날 보고 싶고 그냥 어떨 때는 더 보고 싶을 때가 있는 거지.”
나: “엄마, 엄마도 그래? 엄마도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랑 항상 보고 싶어?”
엄마: “그럼, 엄마도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 항상 그립지.”
그렇구나.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보고 싶은 거구나. 그럼 나도 언젠간 그러겠구나. 엄마 아빠가 나중에 없어지면 나도 엄마 아빠가 맨날 그립겠다는 생각이 들자 엄마 아빠를 사진으로라도 많이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옛날부터 사람들이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고 했는데. 역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찰칵”
무작정 엄마 아빠를 몰래몰래 찍고 사진첩을 만들려 핸드폰을 보니 친구들, 언니들, 포샾으로 덕지덕지 무장한 나의 셀카 사진은 가득한데 정작 엄마 아빠 사진 왜 이렇게 찾기가 힘든 건지. 내가 생각해도 좀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왜 진작부터 엄마 아빠랑 사진을 많이 안 남겨놓았나 후회스러웠다.
그래서 이번 다가오는 2021년에 내가 세운 목표는 지금까지와는 좀 다른 느낌이지만 바로 “엄마 아빠 꾸준히 기록하기”. 사진으로든, 영상으로든, 아니면 이렇게 글로든 말이다.
그렇게라도 엄마 아빠를 많이 남겨놔야 나중에 엄마 아빠를 더 많이, 더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을 테니.
김신회 작가님의 심사평 :)
<엄마 아빠 기록하기>를 읽다 보니 마치 아름다운 그림책 한 권을 읽고 있는 것처럼 화목한 가족의 모습이 절로 그려졌어요. 아무리 코로나 때문이라 해도 외국 생활을 잠시 접고 귀국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이번 기회를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은 글쓴이의 마음이 귀하게 느껴졌고요. 이 글은 한 편의 에세이이지만 부모님께 드리는 편지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더 잘 기억하기 위해 더 열심히 기록을 남겨놓겠다는 문장에 글쓰기의 효용 역시 생각하게 보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모습을 기록하는 일과 함께, 글쓴이의 하루하루의 경험과 감정을 잘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글쓰기 역시 계속해 나가시기를 응원합니다.
커버 이미지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