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눈 온다고 하더니 드디어 도로가 마비가 될 정도로 눈이 오고 말았다. 뉴스를 보니 교통이 마비가 되고 눈 때문에 사고가 나고 정말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눈 난리는 서울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창문 밖을 내다보니 정말 언제부터 온 건지 바닥에 눈이 소복이쌓인 것을 볼 수 있었다.
물론 눈이 내리면 이쁘긴 하다. 하얀 솜처럼 생긴 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걸 보며 "눈 멍"을 때릴 때도 있으니깐. 이처럼 눈을 딱히 안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막상 무지막지하게 오는 눈을 보니 '어우 춥겠는걸'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다음엔 '저거 눈 다 치우려면 아빠 허리 아플 것 같은데..'라는 걱정이 앞섰다.
초등학생 때만 해도 이렇게 함박눈이 하늘에서 펑펑 내리면 걱정은커녕 일단 밖에 나가서 입을 아-하고는 눈은 무슨 맛이 나나 볼 색깔이 입술 색깔이 될 때까지 오들오들 떨며 눈을 맛보려고 했었는데, 이제 눈을 보면 걱정부터 앞서는 것을 보니 나도 이제 슬슬 아이와 어른 그사이 어딘가에 서있나 보다.
"아빠, 눈 엄청 많이 오는데?"
걱정된 나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어! 아빠 지금 눈치우고 있지! 헉헉"
가게 앞에 눈이 소복이 쌓이기라도 하였는지 아빠는 벌써부터 제설작업을 시작하고 계셨다.
"눈 계속 오는데 벌써 치워?"
"지금부터 치워야지 나중에 한꺼번에 치우려면 더 힘들어"
"그럼 내가 눈 치우는 거 도와줘?"
"에이, 뭘 너가 치워, 아빠가 하는 게 빨라, 걱정하지 말고 집에 있어. 어차피 삽도 하나밖에 없어서 너 못해."
나도 눈치우는 거 잘할 수 있는데 아빠는 아직도 내가 마냥 어린애 같기만 한지 극구 말리셨다.
"그리고 어차피 눈 오는데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치킨 먹으면서 다 같이 영화나 보까~"
"그래! 그럼! 하여간 안 미끄러지게 조심해."
"아빠가 애냐 ㅋㅋ 아빠 이런 거 선수야~일단 눈 치워야 하니깐 끊어~사랑해~"
"엉 사랑해~"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참 동안 눈이 내리고 있는터라 괜히 아빠가 눈치우면서 미끄러지는 건 아닌지, 허리 아픈 건 아닌지, 무릎이 시리진 않을지 걱정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었다.
"어후 오랜만에 눈치우니깐 또 허리 아프네."
아빠가 집에 들어오시면서 한 손에는 치킨을 또 다른 한 손으로는 허리를 매만지고 계신 것을 보며 한마디를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었다.
"아빠! 그니깐 내가 치운다니깐!"
"에이 너 못 치워. 눈 엄청 많이 왔어."
"어휴 그냥 "아빠 수고하셨어요"하고 상냥하게 말하면 되지. 꼭 그렇게 화내더라 너는. 치킨도 사 왔구먼"
매일같이 브런치에 엄마 아빠에게 잘해야겠다는 다짐으로 글을 쓰지만 아빠가 저렇게 고생하고 들어오시는 걸 보면 속상한 마음에 괜히 큰소리 먼저 나가고 만다. 화낸 건 아닌데 목소리가 크다 보니 괜히 화낸 것 같이 들릴 때가 있다. 엄마 아빠한테 정말 잘하려면 이 버릇 먼저 고쳐야겠다.
"엄마. 아니 이건 아빠한테 화낸 게 아니지 이거는. 일로와 봐 허리 주물러주게"
"알았어 알았어. 일단 아빠 씻고 땀 너무 많이 났다."
영하 10도 이하인데도 눈을 계속 치우느니라 땀이 등에 흥건했다.저러다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더 속상했지만 큰소리 내는 걸 참고 엄마 아빠가 씻으실 동안 재빨리 치킨을 세팅해놓았다.
엄마 아빠가 씻고 나오신 후에 다 같이 치킨을 뜯은 후에 거실에 이불을 펴놓고 옹기종기 앉아서 볼 영화를 고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옹기종기 거실에 앉아서 영화 볼 준비를 하고 있는 우리 가족
"그나저나 눈이 계속 너무 많이 와서 큰일이다 아빠 허리 어떡하니. 아휴. 걱정이다."
"그니깐 내가 치운다니깐"
"뭘 네가 치워.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겠지. 그래도 오랜만에 가족이 다 같이 영화도 보고 이야기도 하고 좋지~그치?"
"아빠 허리 아픈데 뭐가 좋냐"
"좋은 건 좋은 거고 그건 그거고. 다 생각하기 나름인 거다? 좋게 생각하면 좋은 일만 보이는 거고 계속 짜증내면 짜증낼일 만 보이는 거야."
눈 때문에 장사도 다른 때보다 덜 되고 허리도 더 아플 텐데 아빠는 힘들고 아프다는 내색보다는 가족끼리 다 같이 시간 보낸다고 좋다는 내색만 하셨다.
듣고 보니 아빠 말이 맞다. 어차피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인 거다. 그렇다면 그것에 대해 불평, 불만이 쏟아내기보다는 혹시라도 숨어있을 행복을 찾는 게 오히려 나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좋은 일 아니겠는가?
그렇게 우리 가족은 눈 때문에 약간은 고단했지만, 또 눈 덕분에 행복한 하루를 마무리 지었다.
물론 항상 행복한 일만 일어나지는 않는다. 분명 힘든 일, 또는 속상한 일도 살다 보면 허다하게 일어나고,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좋게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같은 물체라도 돋보기를 쓰면 더 크게 보이듯이 우리 인생에서 "불행 돋보기"는 잠시 넣어두는 대신 "행복 돋보기"를 더 자주 꺼내보는 건 어떨까 싶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의도치 않게 흘려보내고, 또는 지나치고 있는 작은 행복들을 더 크게 느낄 수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