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리 Jan 03. 2021

우리 외할아버지의 공평한 듯 이상한 계산법

계산법으로 인해 외할아버지의 내리사랑을 깨달았다.

드디어 2021년 새해가 밝았다.


이렇게 또 다른 새해가 다가오면 괜히 남들보다 기분이 몽글몽글해지는데, 아마도 그 이유는 새해가 시작하고 곧바로 며칠 지나지 않아 내 생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어서 인가보다. 생일이 다가오면 또 나이를 먹는다는 점이 이제는 좀 무서워질 때도 있지만 그래도 무서운 마음보다는 아직은 설레는 마음이 더 크다.


심지어 요즘에는 온갖 SNS에서 12시가 되자마자 생일 축하까지 해주니, 이것 참 황송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렇게 자동 발신 메시지로 축하받는 것도 나를 설레게 하지만 아마 설레는 마음이 더 큰 건 생일이 다가올 때마다 친구, 언니들, 부모님 등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축하받는 점 때문일 것이다.

각종 SNS에서 받은 축하 메시지

하지만 생일 내내 기쁜 건 아니다. 예전보다 나를 맹목적으로 사랑해주시는 분들이 줄어들었다는 점이 나를 슬프게 하기도 한다.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친할머니에게 분에 넘칠 정도로 축하받았는데 지금은 세 분 다 안 계신다는 걸 깨달을 때마다 마음이 먹먹해지곤 한다. 어릴 때는 사랑을 받기만 하는 것에 익숙하여 별생각이 없었는데 좀 커서 생각해보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를 사랑해준 것만큼 사랑해드리지 못한 것 같아서 죄송한 마음이 크다.


항상 생각해보면 정말 사랑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그 많은 손자, 손녀 중에 나만 친할머니 손으로 직접 길러주셨으니 나를 향한 친할머니의 사랑은 말할 것도 없었고, 외할아버지도 그 몇십 명이나 되는 손주 중에 나를 가장 사랑하셨다. 정말 티 날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항상 생일날이 다가올 때마다 난 외할아버지의 그 공평한 듯 이상한 계산법이 생각난다.




내가 딱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였다.


그렇게 또 어김없이 새해가 찾아오고 오래간만에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집에 막내 이모 가족들과 우리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 막내 이모 말고도 나는 외삼촌이 무려 세분, 다른 이모들도 두 분 더 계시지만 내 기억으로는 여행을 가셨거나 처가 쪽에 인사를 드리러 갔기 때문에 막내 이모 가족과 우리 가족들만 모이게 됐다.


비록 두 가족만 모이긴 했지만 집은 사람들로 복작복작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막내 이모와 이모부는 슬하에 딸을 무려 세 명이나 두고 계셨으니 집에 사람들이 꽉 찰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은 외할머니가 아침부터 우리를 위해 미리 준비한 낙지볶음, 갈비찜, 잡채 등으로 가득 찬 상에서 배가 터지도록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음식을 먹고 얘기하고 놀다가 집에 갈 시간이 오자 외할아버지가 나를 포함한 손녀 네 명을 불러세우셨다.


할아버지: 자, 새해 됐으니깐 할아버지가 용돈 줘야지.

막내 이모의 막내딸 (다영): 와ㅏㅏ!!

나(아리) : 감사합니다!

막내 이모의 첫째 딸(가영), 둘째 딸(나영):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그래, 다들 공부 열심히 하고 엄마 속 썩이지 말고, 알겠냐?

막내 이모 딸들, 나: 네!!


그렇게 다들 집으로 가는가 싶더니, 막내 이모 막내딸이 내 봉투를 보더니 갑자기 갸웃거렸다.


“언니 봉투는 왜 내 거보다 더 두꺼워?”


흰 봉투에 넣어주셔서 속이 약간 비치긴 했는데 배춧잎이 두둑이 들어간 게 보인 것 같았다.

아직 5살밖에 안 된 막내는 외할아버지에게 다짜고짜 따졌다.


“할아버지, 왜 아리 언니만 많이 줘요? 나 만원밖에 안 받았어요!”


난 막내 말을 듣고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있었다. 봉투를 받자마자 바로 주머니에 넣거나 엄마에게 줬어야 했는데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게다가 원래는 거의 바지만 입지만 나름 새해라 새 원피스를 입고 갔는데 하필 주머니가 없는 원피스였다. 원피스에는 왜 주머니를 안 달아 놓는 거지? 어쨌든 할아버지가 나 때문에 괜히 난처해진 게 아닌가 싶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외할아버지는 결코 난처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다.


할아버지: 다영아, 느(너희) 집에는 너랑 나영 언니랑 가영 언니랑 다 합쳐서 3명이지?

다영: 네.

할아버지: 그럼 아리 언니는 언니나 동생이 있냐 없냐?

다영: 없어요. 아리 언니 혼자예요.

할아버지: 그렇지? 그러면 할아버지가 공평하려면 어떻게 해야겠냐?

다영: 다 똑같이 줘야 돼요!! 그래서 나도 5만 원 줘야 돼요!

할아버지: 아니지, 그러면 공평한 게 아니지. 가영이는 첫째니깐 배춧잎 3개, 나영이는 둘째니깐 배춧잎 2개, 다영이 너는 막내니깐 배춧잎 1개니깐, 그러면 총 배춧잎 5개지?

다영: 네

할아버지: 그러면 아리 언니는 배춧잎 몇 개 받아야겠냐?

다영:?? 몰라요.

할아버지: 다영아, 느희들(너희들) 모두 용돈 받으면 엄마한테 맡기잖아. 아니야 맞아?


아직 존댓말이 서툰 다영이가 자신 있게 반존대로 외할아버지의 질문에 답했다.


다영: 나는 다 맡겨요!

할아버지: 그렇지. 아리 언니도 엄마한테 돈 맡기는데 그러면 느엄마랑 이모가 맡는 돈이 똑같아야 되지 않겠냐? 할아비 말이 맞아 안 맞아?


다영이는 잠시 갸웃거렸지만 이내 대답했다.


다영: … 맞는 것 같아요!


할아버지가 웃으시면서 회심의 한방을 날리셨다.


할아버지: 그러면 느희(너희) 세명한테 다 합쳐서 배춧잎 5개 줬으니깐 아리 언니한테도 배춧잎 5개 주는 게 맞지 않냐?

다영: 맞아요!


오.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상한 계산법이었는데 구렁이 담 넘어가듯 매우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다영이가 아직 5살이라 계산을 잘 못 해서 그런 건지, 외할아버지의 솔로몬 같은 화법 덕분인지는 몰라도 다행히 다영이는 배춧잎 한 장, 자신에게 주어진 만 원의 행복으로 만족한 듯 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가영 언니나 나영이에게 들키는 대신 5살짜리 막내인 다영이에게 들켰으니 다행이다.


그렇게 다들 집에 돌아가는 듯싶었지만, 할아버지는 나를 몰래 또 불러세우셨다.


할아버지: 아리야, 일루 와봐.

나:??


할아버지가 또 주머니에서 두둑한 흰 봉투를 꺼내시며 나에게 주셨다.


할아버지: 아리야, 이틀 뒤에 생일이지? 생일 축하하고 초등학생 된 거 축하한다. 앞으로도 엄마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해야 된다. 엄마 속 썩이지 말고, 알겠냐?

나:!!! 네!!!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그래, 아린 항상 잘하니깐 이 할아비가 걱정 안 하지.


나는 봉투를 손에 꼭 쥐고 이번에는 다영이에게 봉투를 안 들키도록 아주 재빠르게 엄마 아빠가 탄 차에 올라탔다. 인사를 하고 차에서 열어보니 덤으로 받은 내 봉투에는 배춧잎이 10장이나 들어있었다. 그리고 나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외할아버지의 그 이상하고도 공평한 계산법으로 용돈을 두둑이 받았다.




어렸을 때는 외할아버지가 나를 다른 손주들보다 더 사랑하셔서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커서 곰곰이 그때를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외할아버지의 금지옥엽 늦둥이 막내딸의 외동딸이어서 더 그렇게 이뻐해 주시지 않았나 싶다.


우리 엄마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늦둥이였는데 우리 엄마를 너무 늦은 나이에 낳은 신 터라 다른 자식들에게 해준 것만큼 우리 엄마에게 못 해주신 게 항상 미안하다고 말씀하셨었다. 특히 엄마가 한창 중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 외할머니의 지병이 좀 심해지셔서 병원비가 많이 들어갔는데, 그 때문에 집안이 약간 어려워지셨다고 했다. 그때 엄마는 집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려고 10원이라도 아끼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서 그 작은 고사리손으로 밥과 빨래를 해놓고, 버스를 타는 대신 십 리 길을 걸어서 등교하셨는데, 외할아버지는 그게 너무 마음 아프셨다고 한다. 10원 아끼자고 새벽부터 그 먼 길을 자신의 막내딸이 걸어간다는 게, 그리고 집안이 어려워 자기 딸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선뜻 말도 못 하는 외할아버지 자기 자신이 말이다.


결국 외할아버지는 우리 엄마에게 부모로서 너무 못 해줬다는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엄마뿐만 아니라 손녀인 나까지 더 이뻐해 주려고 노력하셨던 것 같다. 나름 외할아버지의 방식으로 말이다. 어렸을 때는 용돈을 받을 때 남들보다 많이 받아서 마냥 좋기만 했는데 나이가 들다 보니 외할아버지가 어떤 마음이셨을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돼서 괜히 마음이 욱신거릴 때가 있다.




지금은 돌아가셔서 세상에 계시진 않지만, 외할아버지에게 말씀드릴 수 있다면 드리고 싶다.


엄마는 외할아버지에게 충분히 사랑받아서 행복했고,

어렸을 때부터 고생은 많이 했지만, 엄마는 그래도 자신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자식이어서 감사했다고,

그리고 이제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둘 다 세상에 안 계시지만, 그만큼 내가 엄마를 많이 사랑해 드릴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이다.


외할아버지, 우리 엄마를 낳아주셔서 감사해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엄마 딸로 태어나서 오늘 이렇게 생일을 보낼 수 있게 되었으니깐요.

그리고, 살아계실 때 많이 표현 못 했지만 저도 많이 사랑해주셔서 감사해요.


사랑해요, 외할아버지.



가영, 나영, 다영, 아리: 혹시 모를 신분 노출 때문에 가명을 사용했어요 :)

커버 이미지 출처: Pixabay

작가의 이전글 "엄마, 그냥 미용실 가. 그래도 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