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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Jan 10. 2021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우리 곁에 있는 작은 행복이들

같은 것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눈으로 인한 교통마비와 그로 인한 사고 소식

며칠 전부터 눈 온다고 하더니 드디어 도로가 마비가 될 정도로 눈이 오고 말았다. 뉴스를 보니 교통이 마비가 되고 눈 때문에 사고가 나고 정말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눈 난리는 서울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창문 밖을 내다보니 정말 언제부터 온 건지 바닥에 눈이 소복이 쌓인 것을 볼 수 있었다.


물론 눈이 내리면 이쁘긴 하다. 하얀 솜처럼 생긴 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걸 보며 "눈 멍"을 때릴 때도 있으니깐. 이처럼 눈을 딱히 안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막상 무지막지하게 오는 눈을 보니 '어우 춥겠는걸'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다음엔 '저거 눈 다 치우려면 아빠 허리 아플 것 같은데..'라는 걱정이 앞섰다.


초등학생 때만 해도 이렇게 함박눈이 하늘에서 펑펑 내리면 걱정은커녕 일단 밖에 나가서 입을 아-하고는 눈은 무슨 맛이 나나 볼 색깔이 입술 색깔이 될 때까지 오들오들 떨며 눈을 맛보려고 했었는데, 이제 눈을 보면 걱정부터 앞서는 것을 보니 나도 이제 슬슬 아이와 어른 그사이 어딘가에 서있나 보다.




"아빠, 눈 엄청 많이 오는데?"

걱정된 나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어! 아빠 지금 눈 우고 있지! 헉헉"

가게 앞에 눈이 소복이 쌓이기라도 하였는지 아빠는 벌써부터 제설작업을 시작하고 계셨다.


"눈 계속 오는데 벌써 치워?"

"지금부터 치워야지 나중에 한꺼번에 치우려면 더 힘들어"

"그럼 내가 눈 치우는 거 도와줘?"

"에이, 뭘 너가 치워, 아빠가 하는 게 빨라, 걱정하지 말고 집에 있어. 어차피 삽도 하나밖에 없어서 못해."


나도  우는 거 잘할 수 있는데 아빠는 아직도 내가 냥 어린애 같기만 지 극구 말리셨다.


"그리고 어차피 눈 오는데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치킨 먹으면서 다 같이 영화나 보까~"

"그래! 그럼! 하여간 안 미끄러지게 조심해."

"아빠가 애냐 ㅋㅋ 아빠 이런 거 선수야~일단 눈 치워야 하니깐 끊어~사랑해~"

"엉 사랑해~"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참 동안 눈이 내리고 있는터라 괜히 아빠가 눈 우면서 미끄러지는 건 아닌지, 허리 아픈 건 아닌지, 무릎이 시리진 않을지 걱정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었다.




"어후 오랜만에 눈 우니깐 또 허리 아프네."


아빠가 집에 들어오시면서 한 손에는 치킨을 또 다른 한 손으로는 허리를 매만지고 계신 것을 보며 한마디를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었다.


"아빠! 그니깐 내가 치운다니깐!"

"에이 너 못 치워. 눈 엄청 많이 왔어."

"어휴 그냥 "아빠 수고하셨어"하고 상냥하게 말하면 되지. 꼭 그렇게 화내더라 너는. 치킨도 사 왔구먼"


매일같이 브런치에 엄마 아빠에게 잘해야겠다는 다짐으로 글을 쓰지만 아빠가 저렇게 고생하고 들어오시는 걸 보면 속상한 마음에 괜히 큰소리 먼저 나가고 만다. 화낸 건 아닌데 목소리가 크다 보니 괜히 화낸 것 같이 들릴 때가 있다. 엄마 아빠한테 정말 잘하려면 이 버릇 먼저 고쳐야겠다.


"엄마. 아니 이건 아빠한테 화낸 게 아니지 이거는. 일로와 봐 허리 주물러주게"

"알았어 알았어. 일단 아빠 씻고 땀 너무 많이 났다."


영하 10도 이하인데 눈을 계속 치우느니라 땀이 등에 흥건했다. 저러다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더 속상했지만 큰소리 내는 걸 참고 엄마 아빠가 씻으실 동안 재빨리 치킨을 세팅해놓았다.


엄마 아빠가 씻고 나오신 후에 다 같이 치킨을 뜯은 후에 거실에 이불을 펴놓고 옹기종기 앉아서 볼 영화를 고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옹기종기 거실에 앉아서 영화 볼 준비를 하고 있는 우리 가족

"그나저나 눈이 계속 너무 많이 와서 큰일이다 아빠 허리 어떡하니. 아휴. 걱정이다."

"그니깐 내가 치운다니깐"

"뭘 네가 치워.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겠지. 그래도 오랜만에 가족이 다 같이 영화도 보고 이야기도 하고 좋지~그치?"

"아빠 허리 아픈데 뭐가 좋냐"

"좋은 건 좋은 거고 그건 그거고. 다 생각하기 나름인 거다? 좋게 생각하면 좋은 일만 보이는 거고 계속 짜증내면 짜증낼일 만 보이는 거야."


눈 때문에 장사도 다른 때보다 덜 되고 허리도 더 아플 텐데 아빠는 힘들고 아프다는 내색보다는 가족끼리 다 같이 시간 보낸다고 좋다는 내색만 하셨다.


듣고 보니 아빠 말이 맞다. 어차피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인 거다. 그렇다면 그것에 대해 불평, 불만이 쏟아내기보다는 혹시라도 숨어있을 행복을 찾는 게 오히려 나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좋은 일 아니겠는가?


그렇게 우리 가족은 눈 때문에 약간은 고단했지만, 또 눈 덕분에 행복한 하루를 마무리 지었다.




물론 항상 행복한 일만 어나지는 않는다. 분명 힘든 일, 또는 속상한 일도 살다 보면 허다하게 일어나고,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좋게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은 물체라도 돋보기를 쓰면 더 크게 보이듯이 우리 인생에서 "불행 돋보기"는 잠시 넣어두는 대신 "행복 돋보기"를 더 자주 꺼내보는 건 어떨까 싶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의도치 않게 흘려보내고, 또는 지나치고 있는 작은 행복들을 더 크게 느낄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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