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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Feb 14. 2021

할머니의 달달한 김치부침개

“할머니의 사랑”이라는 재료보다 좋은 재료가 있을까

*공모전에 응모한 글입니다*


지금은 잘 못 먹는 편보다는 잘 먹는 편에 속하지만,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밥 먹는 것을 너무 싫어했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옛날엔 어른들이 밥상 앞에서 주로 "아이고 잘 먹네, 그렇게 잘 먹어야 복이 오지" 또는 "깨작거리면 못써 복 나간다."라는 말들을 많이 하셨는데, 나는 전자보다는 후자 소리만 듣고 살았을 정도로 정말 밥 먹는 것을 싫어했다.


밥 먹는 것을 너무 싫어했던 나는 아침, 점심, 저녁 시간이 될 때마다 상당히 고통스러웠다. 밥을 먹어야 하는 고통을 또 느껴야 한다니. 그것도 하루에 세 번씩이나. 어린 나에게는 참 곤욕스러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만큼 스트레스받고 고통받는 이가 또 있었는데 그건 바로 우리 할머니였다. 부모님께서 맞벌이이시기 때문에 부모님을 대신하여 나를 키워주시려 할머니가 일부러 시골에서 도시까지 올라오셨는데 손녀딸이 밥을 너무 안 먹으니 할머니는 할머니 나름대로 고충이 많으셨다.


지금까지 자식을 무려 여섯 명이나 낳고 기르시면서 밥이 없어서 못 매긴 적은 있어도, 밥이 있는데도 밥을 안 먹는 아이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으신 우리 할머니는 피골이 상접한 손녀를 보고 정말 하염없이 걱정을 쏟아내셨다.  


하지만 우리 할머니는 마냥 걱정만 하시는 분은 아니었다. 모든 문제에는 답이 있고, 정답을 모르면 그에 걸맞은 해답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었다. 그런 분이셨기 때문에 할머니는 손녀딸의 편식을 고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셨고, 손녀딸 밥 먹이기 프로젝트에 대한 우리 할머니의 해답은 바로 “설탕"이었다.


꼬마애들 대부분은 단 것을 좋아하고, 나도 그 꼬마애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단 것을 꽤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할머니는 밥에다가 설탕을 섞어 넣기 시작하신 것이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 돈 주고 먹으라고 해도 안 먹겠지만, 그 당시에 나는 밥에 설탕이 들어가자 그때서부터 밥을 슬슬 먹기 시작했고, 밥 먹는 것에 나름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현재 식품영양학 전공자로서 할머니의 식이요법을 평가하자면 말도 안 되고, 어릴 때부터 소아비만이나 당뇨병을 유발할 수 있는 식이요법으로써 최악 중 최악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손녀로서 할머니의 식이요법을 평가하자면 손녀딸이 조금이라도 밥을 먹었으면 하는 마음에 그러신 것이니 잘하셨다고, 그렇게 해서라도 손녀딸의 편식습관을 고쳐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어찌 됐든 할머니의 “설탕 식이요법”은 나에게 통했고,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엄마 경악하시긴 했지만, 내가 점점 커가면서 설탕이 없이도 밥을 먹기 시작했으니 이래저래 다행이었다.


그렇게 할머니는 나의 유년기를 나와 항상 함께 보내주셨다. 내가 밥을 잘 안 먹을 때는 어떻게 하면 내가 먹을까 하고 고민하셨고, 내가 잘못된 행동을 할 때는 그 누구보다 엄하게 혼내셨고, 내가 학교에서 잘하면 그 누구보다 기뻐해 주시고 자랑스러워해 주셨다. 엄마 아빠가 들으많이 섭섭하시겠지만, 그 당시에 할머니는 나에게 엄마이자, 아빠였고 좋은 친구셨다.


하지만 내가 좀 더 크자 나는 집에서 할머니 손길을 받기보다는 학원이나 방과 후 봉사활동으로 인해 밖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고, 그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점점 더 줄어들었다. 할머니는 혼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더 많아지셨고 더 이상 나를 돌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판단하시고는 다시 시골로 내려가셨다.


그렇게 할머니의 식이요법은 내게서 잊혀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서 할머니의 식이요법이 잊혀져 가고 있던 것이지, 할머니가 나에게서 잊혀진 것은 아니었다. 계속 학년이 올라가면서 점점 더 바빠졌지만, 명절이나 할머니 생신이 다가오면 우리 가족은 할머니가 있는 시골로 어김없이 내려가할머니께 꼬박꼬박 인사를 드렸고, 어릴 때와는 달리 할머니가 만들어주시는 음식을 배가 터지게 먹곤 했다. 할머니도 옛날과는 달리 밥을 잘 먹는 나를 보시고는 “아이고 내 새끼, 잘 먹네~”라고 말씀해주시곤 했다.


그렇게 나는 계속 잘 먹는가 싶더니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 다시 "밥 안 먹는 병"이 도지고 말았다. 수험생의 스트레스였는지 입맛도 없고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혹시라도 대학에 못 붙으면 어쩌나, 다른 친구들 다 대학 가는데 나만 못 가면 어쩌나, 별 잡생각을 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쓸데없는 기우였지만 그때는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아무리 스트레스를 받아도, 그리고 내가 아무리 고3 수험생 이어도 시골에 안 내려갈 수는 없었다. 1년 365일 내내 가는 것도 아니고 정말 손에 꼽을 정도만 할머니를 뵈러 가는데, 고3이라는 이유로 할머니를 안 뵈러 가면 오히려 죄송스러운 마음 때문에 공부에 집중할 수 없을 것 같아서 할머니를 뵈러 갔다.


할머니는 여느 때와 똑같이 우리 가족을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리고 TV에서 대구탕이 수험생에게 좋다는 걸 보셨는지 난생처음 보는 대구탕까지 끓여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하지만 하도 스트레스를 받아서 음식을 잘 먹지 못하던 나는 대구탕 국물 몇 번 떠먹고는 밥 한 공기도 다 못 먹고 밥을 남기고 말았다.


할머니: 아이고 내 새끼 왜 이렇게 못 먹니? 맛이 없나?

나: 에이 아니에요 그냥 입맛이 없어요.. 맛은 있는데 요즘에 입맛이 없어가지고..

엄마: 어머니 요즘에 공부하느니라 얘가 스트레스받는지 도통 뭘 먹지를 않네요. 아리야 그래도 할머니가 너 생각해서 대구탕 만들어주셨는데 좀 더 먹지.

나: 아 나 입맛이 별로 없어…

엄마: (눈치를 보시며) 어머니 대구탕 너무 맛있어요~그렇지 여보~

아빠: (눈치를 보시며) 응~아빠는 어릴 때 대구탕 먹어본 기억도 없다야~이것 좀 더 먹어봐 할머니가 일부러 하신 건데~

할머니: 아이고 됐다 됐다. 입맛이 없어서 으쯔까 (어떡하나).


그러더니 갑자기 할머니는 일어나시더니 조용히 부엌으로 들어가셨다. 엄마는 할머니가 상처라도 받으셨을까 봐 냅다 할머니를 따라 부엌으로 가셨다. 할머니 뵈로 일부러 시골까지 왔는데 괜히 할머니 기분만 망친 것 같아서 나도 기분이 좋 않았다. 하지만 입맛도 가뜩이나 없는데 국물이 하얀 대구탕을 보고 있자니 별로 먹고 싶은 생각도 안 들었고, 매운탕처럼 빨간 국물이 아니라 맑은 대구탕이다 보니 꼭 대구가 목욕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할머니껜 정말 죄송했지만, 도저히 입으로 들어가질 않았다.  


그렇게 몇 분 지나고 나니 엄마와 할머니가 다시 방으로 들어오셨다. 방에서 나가실 때는 빈손이셨는데 방으로 다시 들어오실 때는 접시에 김치부침개를 들고 들어오셨다.


할머니: 아가, 이거 김치부침개라도 먹어봐라. 좀 먹어야지 머리도 잘 돌아가지. 공부하다가 병난다. 청양고추도 넣었으니깐 아마 이거는 입맛이 좀 돌 거다. 한입이라도 먹어봐~야~ (사투리).


사실 그때까지도 입맛이 없어서 별로 안 먹고 싶었지만, 내가 걱정된 할머니가 김치부침개를 일부러 해서 오셨으니 마냥 거절할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한입 베어 물었는데, 맵기보다는 달았다.


나: ‘김치부침개가 왜 달지?’


내 표정에서 내 생각이 드러나기라도 했는지 할머니가 나를 보시고는 걱정스레 다시 한마디 하셨다.


할머니: 원래 어릴 때도 뭐 잘 안 먹으면 내가 설탕 넣어주고 그랬는데, 부침개에다가 설탕이라도 넣으면 네가 먹을까 싶어서 설탕도 넣었다.


김치부침개에 설탕이라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유치원생이 아닌 고등학교 3학년인데 할머니 눈에는 아직도 내가 편식하는 유치원생으로 보였나 보다. 우리 할머니다운 해답을 찾으신 것 같아서 안 웃으래야 안 웃을 수가 없었다.


나: 아~할머니~무슨 김치부침개에 설탕을 넣어요 ㅋㅋㅋㅋ

할머니: 왜~이제는 그렇게 해주면 안 먹냐~?

나: 아뇨. 맛있어요~할머니~


사실 김치부침개에 설탕이 들어간 맛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다. 허나 그 김치부침개에 단지 설탕만 들어갔을까. 설탕뿐만 아니라 “할머니의 사랑”이라는 재료, “김치부침개를 부치며 손녀딸이 제발 한입이라도 먹기를 바라는 할머니의 마음”이라는 재료의 맛이 더 많이 느껴졌기 때문에, 나는 결국 김치부침개가 담긴 접시를 깨끗이 비워냈다.


할머니: 아이고~내 새끼~잘 먹네~뭐든지 잘 먹어야지 안 아프지~

나: 네 할머니 ㅎㅎ 이제부터 잘 먹을게요~할머니 너무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할머니의 김치부침개 덕에 미친 듯이 치솟던 고3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줄일 수 있었다. 물론 그 뒤로 스트레스를 한 번도 안 받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나를 항상 너무 사랑해주시는 할머니의 마음과 응원이 있음을 알았기에, 그리고 엄마 아빠도 나를 끊임없이 응원해주고 있음을 알았기에 무사히 고3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내가 가고 싶은 대학에 갈 수 있었다.




 땐, 특별한 말이 담긴 웅장한 응원이나 위로보다, 단순한 말 한마디, 행동하나가 오히려 더 큰 응원이 되고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나에게 몸소 보여준 우리 할머니. 래서 더 감사하고 더 많은 사랑을 드리고 싶은 우리 할머니..


슬프게도 이 세상에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우리 할머니가 너무나도 그립다. 특히 명절이 다가올 때면 우리 할머니가 더 그리워진다. 지금 나에겐 “할머니의 마음”이라는 재료는 없지만, 할머니의 사랑이라도 추억하기 위해 이렇게 한번 김치부침개를 만들어본다.


내가 만든 김치부침개



공모전에 응모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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