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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Oct 23. 2021

청소부 할아버지에게 건네는 인사

인사로 시작된 소중한 배움, 그리고 소중한 인연

한국 학교와 미국 학교의 차이점을 찾아보면 꽤나 많지만, 그 차이점 중에서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 했던 건 바로 청소부가 있다는 점이었다. 지금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학교가 끝나면 청소당번들끼리 모여 캑캑거리며 칠판지우개를 털거나, 엄청난 양의 세제와 물을 바닥에 들이부은 뒤, 혹시라도 양말이 젖을까 봐 양말을 고이 벗어놓고 대걸레로 미친 듯이 바닥청소를 했다. 하지만 미국 학교에서는 바로 청소부가 있었다는 점이 매우 좋았다. 우리 학교는 청소부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그 할아버지가 학교 카펫부터 시작해서 화장실 청소까지 학교에 있는 모든 걸 다 치우셨기 때문에 학생 된 입장으로써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었다. 


할아버지가 그만큼 학교의 모든 것을 도맡아서 청소를 하셔서 그런지, 학교에서 안 계신 걸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항상 학교에 계셨다. 그래서 그만큼 할아버지를 자주 마주쳤지만 사실 통성명을 해본 적도 없고, 매일같이 무표정으로 계셔서 왠지 무서운 마음이 들었기에, 눈이 마주치면 피하거나 옆을 재빠르게 지나치기 일쑤였다. 단지 이름도 모르는 좀 무서워 보이는 청소부 할아버지셨으니깐.


그날도 나는 아줌마가 나를 데리로 올 때까지 학교 안에서 아줌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꽤 흐른 후, 드디어 아줌마가 학교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내가 다녔던 학교에서는 학생이 학교 버스를 타지 않거나 집까지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면, 반드시 학교 안에서 보호자를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기다린 후, 보호자가 도착하면 학생이 보호자와 함께 차를 타고 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보호자가 학교 안으로 들어와서 이 학생을 자신이 데리고 간다는 확인서에 사인을 한 뒤에서야 학생을 학교 밖으로 데리고 나갈 수 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아줌마는 서둘러 학교 안으로 들어온 뒤 확인서에 사인을 하고 나를 데리고 집으로 가려고 했다. 그때, 청소부 할아버지가 학교 현관 쪽을 청소하기 위해 우리 쪽으로 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여느 때와 같이 별생각 없이 할아버지가 오는 것을 멀뚱이 바라보기만 했다. 하지만, 아줌마는 할아버지를 발견하자 세상 밝게 인사를 건넸다.


"헤이! 밥! 요즘 어떻게 지내요? (hey, Bob! how are you?")


무서운 표정의 소유자라고 생각했던 청소부 할아버지는 아줌마의 인사를 듣자마자 청소기를 잠시 멈춘 뒤 미소로 화답했다. 그때가 아마 내가 처음으로 본 할아버지의 해맑은 미소였다. 어쨌든 그렇게 할아버지는 아줌마와 몇 마디를 나눈 뒤 다시 자신의 본업인 청소를 하셨고, 나와 아줌마는 집으로 가기 위해 학교 밖으로 나왔다.


차를 타고 집으로 가면서 아줌마가 나에게 물었다.


"아리야, 할아버지를 보면 인사를 해야지. 왜 가만히 있니?"


나는 갸우뚱거리면서 아줌마의 물음에 답했다.


"한 번도 서로 얘기를 나눠본 적이 없어서요."


그렇게 대답한 후, 아줌마 표정이 내 대답에 대해 만족하지 못한 듯 보이자, 나는 이름도 모르는데 뭔가 인사하기에 애매하다고 말을 덧붙였다. 그러자 아줌마가 나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럼 이름을 모르는 선생님들에게도 인사를 안 하니?"


아. 생각해보니 그건 아니었다. 아직 저학년이라 고학년 선생님들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고학년 선생님들을 보면 꼬박꼬박 '굿모닝~'하고 인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줌마의 물음에 개미만 한 목소리로 그런 건 아니라고 대답했다. 내 대답을 들은 아줌마는 나에게 화내지는 않으셨지만 나의 눈높이에 맞게 조목조목 인사를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주셨다.


"그 할아버지가 선생님은 아니지만, 선생님들처럼 학교에서 일하시는 분이잖니? 그렇게 항상 학교에 계시는데 이름을 모른다고 인사를 안 하면 안 되지. 인사를 하는 게 맞는 거야. 그냥 오다가다 마주치면 굿모닝 하고 인사해야 해. 생각해보렴. 그분이 아니면 아마 아무도 청소하지 않아서 학교는 지금쯤 엉망이 되어있을걸?"


아줌마의 말에 나는 알겠다고 대답한 뒤 속으로 나의 창피함을 곱씹었다. 나는 정말 왜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안 했을까? 나도 모르게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생각해서 인사를 안 한 걸까? 분명 속으로는 청소부 할아버지가 계신 덕분에 한국 학교에서 처럼 청소를 안 해도 돼서 되게 좋다고 생각했으면서 왜 바보같이 인사를 안 했을까? 심지어 알고 보니 그분은 학교 사정이 안 좋은 걸 알고 돈을 덜 받고 일하시는 분이라고 했다. 게다가 자신의 손녀가 이 학교를 즐겁게 다니는 것을 보며, 손녀가 깨끗한 환경에서 공부하길 바라는 마음에 최소한의 돈을 받으며 학교 청소부로서 일하시는 것이라고 아줌마에게 들었다. 정말 멋진 분이고 대단한 분이었다. 그런데 나는 나도 모르게 단지 할아버지의 직업만 보고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생각해서 할아버지께 그 짧은 인사 한마디 안 건넸나 보다. 인사한다고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뭔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닌데. 참 부끄러웠다. 


그렇게 혼자서 몇 번을 반성하고 또 반성한 뒤, 그 후로는 할아버지를 항상 볼 때마다 꼬박꼬박 인사를 건넸다. 무서운 표정의 소유자라고 생각했던 할아버지는 내가 인사를 할 때마다 매번 밝게 인사로 답해주셨고, 나중엔 가끔씩 짧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알고 보니 할아버지는 MIT라는 명문대에서 물리학 전공을 한 뒤, 한동안 연구원을 하시다가 은퇴를 하셨다고 했다. 그래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것저것 아는 것도 많으시고, 조언도 많이 해주셨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 내가 즐거워하며 할 수 있는 걸 하라고. 물론 그게 쉽지는 않겠지만 뭔가 관심이 생기면 두려워하지 말고 한번 용기 내서 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또는, 힘이 되는 말도 해주실 때도 있었다. 내가 가끔씩 다가오는 시험 때문에 엄청 긴장된다고 할 때면 "굿럭!" 하며 당이 떨어지면 먹으려고 주머니에 넣어두셨던 Starburst(새콤달콤과 비슷한 미국 사탕)를 건네주시기도 하였다. 그렇게 다재다능하고 멋진 매력의 소유자였던 청소부 할아버지는 내가 고3이 되던 해에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다. 처음엔 인사조차 건네지 않았던 할아버지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정이 많이 들어서 장례식 때 정말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할아버지가 죽기 전에 할아버지라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할아버지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게 되어서 정말 감사하다. 할아버지는 내가 알았던 청소부 중에 가장 마음이 따뜻한 분이셨으니.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이 별거 아닌 것 같은 짤막한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미소를 가져다주는 마법의 단어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힘을 주는 문장 일수도, 결국은 본인에게 다시 기쁨을 가져다주는 행복의 단어 일수도 있다. 그런 게 쌓이고 또 쌓이다 보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게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 일을 계기로 그때의 나를 매번 곱씹으며, 항상 내 주변 사람들에게 밝게 인사를 건네곤 한다. 그분이 경비실 아저씨던, 청소부 할머니이던. 왜냐면 그분들은 상상 이상으로 우리의 삶에 필요한 분들이자, 감사한 분들이고 멋진 분들이니깐.



커버 이미지 출처: 언스플레쉬

청년이야기대상 7회에서 입선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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