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는 건 당연하지만 그 일이 있은 뒤로는 엄마에게 미용실 가서 잘랐냐고 물어보는 건 내 습관이 되어버렸다.
엄마 아빠가 냉면 장사를 하시다 보니 여름에는 다른 때보다 바쁘실 수밖에 없다. 가게 오픈 시간이 10시이긴 해도 10시부터 시작할 장사를 위해 새벽 5시부터 일어나서 육수를 만들고, 면 반죽을 하고, 냉면 위에 올라갈 고명을 만들고, 참기름을 짜고, 가게 청소를 하다 보면 4~5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리고 만다.
그래도 장사를 하려면 밥을 먹고 힘을 내야 하니 10시가 되기 전에 젓가락질하는 시간이라도 아끼기 위해 주로 비빔밥을 드시거나, 비벼 먹을 반찬을 그 전날에 준비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그냥 물에다가 밥만 말아서 드실 때도 허다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미용실 가서 머리를 자를 시간조차 없는 건 당연했다.
그렇다고 해서 엄마 아빠 두 분 다 머리를 안 자르고 여름 내내 머리를 치렁치렁하게 기를 순 없었다. 음식 하는 사람이 머리를 너무 지저분하게 하고 있으면 손님들도 괜히 비위가 상하는 법이니깐. 그래서 미용실을 가는 대신 엄마는 엄마의 긴 머리를 드라마 sky 캐슬에 나왔던 김서형 배우님처럼 짱짱하게 묶은 뒤, 조금이라도 튀어나온 잔머리는 음식에 절대 들어가지 않도록 무자비하게 핀을 꽂으셨다. 하지만 아빠도 엄마처럼 머리에 핀을 꽂으실 수는 없는 노릇인 데다가,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머리 손질을 자주 해야 하는 편이기도 하고, 남자들 머리 자르는 게 여자들 머리 자르는 것보다 비교적 시간이 덜 걸리기에 아빠는 손님이 없는 틈을 타 미용실에서 머리를 후딱 자르고 오셨다.
<드라마 SKY캐슬에서 나오는 김서형 배우님 헤어스타일>
“엄마도 머리 좀 잘라야 하는데~”
“그럼 아빠 일할 때 후딱 갔다 와. 아빠는 그러잖아.”
“에이 아냐 그냥 묶으면 되긴 해.”
엄마는 아빠 손이 완전히 다 나은 게 아니라 아직 걱정되셨고, 아빠가 혼자서 장사할 동안 손님이라도 몰리면 아빠 손에 혹시나 무리가 갈까 봐 선뜻 미용실에 간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물론 자식인 내가 도왔으면 좋으련만 여름에는 학교를 안 다니는 대신 봉사활동과 학원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나 또한 시간을 내서 엄마 아빠 가게를 돕기에는 무리였다. 엄마 아빠는 못 도와드리면서 봉사활동이라니. 도대체 무엇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는 건지. 뭔가 아이러니하다.
“머리 길면 말릴 때 불편하니깐 그냥 아빠한테 후딱 말하고 갔다 와. 머리 자르는 데 뭐 시간이 걸려봤자 얼마나 걸린다고.”
“왜~그래도 좀 걸리지~아냐 그냥 엄마가 요렇게 조렇게 잘하면 돼”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엄마가 “요렇게 조렇게”하면 된다는 게 그냥 머리를 잘 묶으면 된다는 말인 줄 알았다.
그날도 학원이 끝난 후 봉사활동을 하고 겨우 집에 도착했다. 집에 들어가니 엄마가 벌써 씻고 머리를 말리고 계셨다.
“나 다녀왔쏭~”
“우리 딸 왔어~? 오늘은 어땠어?”
엄마 질문에 막 대답하려는 찰나에 엄마 머리를 봤는데 뭔가 이상했다.
“엥? 엄마 머리 잘랐어?”
“응~”
머리를 묶는다는 줄 알았는데 자른 걸 보니 오늘은 시간이 좀 있었나 보다 싶었다. 근데 뭔가.. 좀 이상했다. 꼭 머리가…
“머리가 뭔가 쥐가 파먹은 것 같지?”
아 맞다. 정확한 표현이다. 머리가 뭔가 쥐가 파먹은 것 같다.
“뭐야? 왜 그래? 누가 잘랐어? 왜 이렇게 못 잘라? 어디서 잘랐어? 돈을 그래도 받아? 파마 안 하고 머리만 자른다고 괄시하나 아놔.”
“어차피 미용실 가서 잘라도 머리는 맨날 묶기만 하니깐 그냥 엄마가 가위로 혼자서 머리 잡고 잘랐지~!”
심지어 집에는 미용가위도 없기 때문에 그냥 일반 가위로 엄마 혼자서 자른 엄마의 머리를 본 나는 너무 어이없고 황당해서 거의 랩 하듯이 속사포로 엄마에게 잔소리를 쏟아내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누가 요즘에 머리를 그냥 가위로 잘라버려? 미용사들이 괜히 있겠어? 그 사람들이 다 시간과 돈을 들여서, 그 뭐야, 자격증 따는 이유가 있는 거라고!"
"아니 무슨! 아니 그리고 그 사람들도 먹고살아야지 누가 이렇게 집에서 머리를 잘라?"
"옛날 사람들이 애들 머리에 바가지 올려놓고 집에서 머리 자르는 것보다 심한 거지 이거는! 이게 말이 돼?”
“어휴 왜 화를 내고 그러니, 그래도 잘 잘랐으면 됐지~그리고 엄마 전에도 종종 이렇게 잘랐어~”
가만히 엄마 말을 듣고 있자니 나 자신이 화가 난 건지 황당한 건지 분간이 안 갈 정도였다. 심지어 전에도 종종 몇 번 그러셨다고 하니 말문이 턱 막히는 듯했다.
“아니 엄마. 나는 화를 낸 게 아니고, 황당해서 그러지. 아니. 아니. 참나. 그리고 뭐가 잘 잘라? 쥐가 파먹은 것 같다고 엄마가 엄마 머리 보고 그랬으면서.”
“그래도 아무도 몰라~머리 올려서 묶는데 누가 아니~”
“아니 엄마. 그래도 이제부터 그냥 아 미용실 가서 잘라. 그래도 솔직히 머리는 미용실 가서 자르는 게 맞지.”
“알았어~알았어~하여간 엄마는 맨날 이렇게 딸이 걱정해주니 좋네~”
“엄마. 그냥 걱정할 일을 만들지를 마. 딸을 걱정시키는 게 좋은 게 아니야. 엄마는 내가 엄마 맨날 걱정시키면 좋아? 아니잖아? 안 그래?”
“알았어~알았어~”
엄마는 더 이상 딸을 걱정시키기는 싫으셨던지 그 후에는 없는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꼭 미용실 가서 머리를 자르신다. 그래도 딸 입장에서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종종 물어보곤 하지만 다행히 나의 잔소리는 엄마를 미용실로 이끌기 충분했던 것 같다.
물론 모든 엄마가 이런 똑같은 상황에 놓이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엄마들은 자식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자신에게 박한 경우가 많지 않나 싶다. 자식들이 그렇게 하는 걸 보면 제일 먼저 속상해할 분들이면서…
오늘도 어디선가는 자신을 자신도 모르게 홀대하고 있으실 어머니들에게 감히 한 말씀드리고 싶다. 꼭 모든 걸 희생해야지만 가족들이, 자식들이 행복한 건 아니라고.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을 내셔도 된다고, 그렇게 사랑받아야 마땅한 존재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