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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파 Nov 19. 2024

카톡의 공포

"띵 동 -"

금요일 밤 10시, 침대에 누워 여유를 만끽하려는 순간 스마트폰에서 카톡 알림음이 울렸다. 화면을 확인하자마자 온몸이 굳어졌다.


[김 부장님]

'강 사원, 카톡 첨부문서 좀 확인해봐.'


갑자기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이른바 '퇴근 후 카톡'이 시작된 것이다. 떨리는 손으로 답장을 보냈다.


'네, 부장님. 확인했습니다.'

'다음 주 거래처 미팅 자료 좀 미리 검토해서 내일 보내줘.'


순간적으로 숨이 막혔다. 내일은 토요일인데. 게다가 처음 듣는 미팅 건이었다.


'네······. 부장님. 혹시 미팅이 언제인가요?'

'월요일 오전. 미리 준비해야지. 우리는 중소기업이라 더 철저하게 준비해야 해.'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한숨을 쉬었다. 주말이 또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곧바로 동기들 단톡방이 폭발했다.


이수진 : 민준 씨도 연락받았나요?

윤태호 : 저도 방금······.

김동현 : 저도요 ㅠㅠ

강민준 : 다들 받았네요······.

이수진 : 주말에 약속이 있었는데······.

윤태호 : 취소해야죠. 뭐······.

김동현 : 도대체 이게 몇 번째인지······.


문득 지난 한 달을 돌아보니 온전한 주말을 보낸 적이 단 하루도 없었다. 늘 이런 식의 긴급 업무 지시가 있었고, 그때마다 개인 시간을 포기해야만 했다.

"민준아, 씻고 자려고 했는데 갑자기 무슨 소리야?"

거실에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

"아······. 회사에서 연락이 와서요."

"또? 이제 온전한 퇴근도 맘대로 못 하는구나······."

엄마의 한숨 소리가 마음을 더 무겁게 했다.

다시 카톡이 울렸다. 이번에는 송 대리였다.

'민준 씨, 많이 당황하셨죠?'

'네······. 정말 답답해요.'

'저도 처음엔 무척 힘들었어요. 퇴근 후에도 마음 편하게 쉬지도 못하고······.'

'송 대리님은 이런 과정을 어떻게 견뎠어요?'

'요령이 필요해요. 제가 알려드릴게요.'


잠시 후 송 대리가 긴 메시지를 보내왔다.


[퇴근 후 카톡 대응 지침]

바로 읽지 말 것

읽씹은 금물

통신 장애 핑계는 위험

<답장 요령>

즉답 피하기

모호한 답변으로 시간 벌기

긴급하지 않으면 다음 날 아침으로 미루기

<주말 대응>

토요일은 늦은 오후에 확인

일요일은 저녁에 확인

"지금 확인했습니다" 활용하기


송 대리의 글을 읽으며 씁쓸한 웃음만 나왔다. 이런 게 필요한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때 또다시 카톡이 울렸다. 이번에는 이 차장이었다.


'우리 팀 애들 다 연락받았지?'

'네, 차장님.'

'그래. 내일은 다들 출근하는 거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토요일에 출근이라니.

이 차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김 부장이 단톡방을 만들었다.


[영업관리팀 긴급 공지 방]

김 부장 : 다들 봤지?

이 차장 : 네, 부장님.

박 과장 : 네.

송 대리 : 네.

강민준 : 네, 부장님.

윤태호 : 네.

이수진 : 네······.

김동현 : 네.

김 부장 : 내일은 9시 출근이다.

전원 : 네······.


창밖을 보니 어느새 밤 11시가 넘어있었다. 주말 아침잠은 이제 사치가 되어버렸다.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려는 순간 여자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내일 데이트 못 하는 거야?'

'응······. 미안해. 갑자기 출근하게 됐어.'

'또? 이번이 세 번째야.'

'정말 너무 미안해······.'

'괜찮아······. 이제는 너무 익숙해지다 못해 다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야.'


자정이 다가오는데도 카톡은 계속 울렸다. 업무 지시, 자료 요청, 확인 사항······. 마치 퇴근이 무의미한 것처럼 일은 계속됐다.

태호에게서 개인 메시지가 왔다.


'민준 씨, 살아있나요?'

'겨우요······. 근데 이렇게 사는 게 정말 맞는 건가요?'

'글쎄요······. 전 이제 카톡이 울리면 심장이 떨려요. PTSD인가······.'


새벽 1시, 마지막으로 김 부장의 메시지가 왔다.


'다들 자료 준비하고 자. 그럼 내일 보자.'


스마트폰을 충전기에 연결하면서 한숨이 나왔다. 이제 진정한 '카톡 공포'가 무엇인지 알게 된 것 같았다.

그것은 단순히 늦은 시간의 연락이 아니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업무 지시,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는 부담감, 그리고 그로 인해 무너지는 일상이었다.

민준은 알람을 세팅하면서 생각했다.

'이게 정말 일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스마트폰의 노예가 된 걸까?'


주말 아침, 평소보다 이른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스마트폰을 확인하자 밤새 쌓인 카톡이 수십 개.


이 차장 : 자료 준비 상황 공유 좀.

박 과장 : 지금 어디야?

김 부장 : 다들 일어났지?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하나의 주말이 카톡 지옥 속으로 사라져갔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이수진과 마주쳤다.

"민준 씨도 한숨도 못 주무셨죠?"

"네······. 새벽 세 시까지 자료를 만들었어요."

"저도요. 근데 이상한 건······. 이제 카톡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려요."

그녀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그들은 이제 '카톡 강박증'에 걸린 것 같았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김 부장이 우리를 맞이했다.

"어, 다들 일찍 왔네! 역시 우리 팀이야!"

그의 웃음소리가 더욱 섬뜩하게 들렸다. 이제 스마트폰 알림음은 모두의 일상을 위협하는 공포의 소리가 되어버렸다.

또다시 울리는 카톡. 이제는 그 소리에 온몸이 경직되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이것이 MZ세대 직원들의 새로운 일상이었다.

'카톡 공포'와 함께 사는 직장인의 삶.


점심시간, 구내식당에서 동기들과 모였다.

"어제 다들 몇 시에 잤어요?"

김동현이 말문을 열었다.

"저는 새벽 세 시요······."

이수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저도 비슷해요. 자료 만들다가······."

태호도 고개를 떨구었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모두가 핏발 선 눈으로 피곤함에 찌들어있었다.

"근데······. 이거 법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나요?"

민준이 조심스레 물었다.

"야근 수당도 없이 이렇게 주말까지 일하게 하고······."

"쉿!"

태호가 급하게 내 입을 막았다.

"여기서 그런 말을 하면 안 돼요."

그때 마침 송 대리가 다가왔다.

"다들 힘들어 보이네요."

"송 대리님은 어떻게 견디세요?"

이수진이 물었다.

"저도 힘들지만, 시간이 가면서 이상하게 적응되더라고요."

"적응이라기보다 체념 아닌가요?"

민준이 무심코 뱉은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후 업무 시간, 또다시 카톡이 울렸다.


김 부장 : 지금 자료 검토 중인데,

김 부장 : 이거 전부 다시 해야겠어.

김 부장 : 오늘 퇴근 전까지 수정해서 보내.

 

순간 현기증이 났다. 주말에 뜬눈으로 밤새워 만든 자료인데······.

옆자리의 태호가 살짝 속삭였다.

"이제 알겠어요? 왜 다들 카톡 공포증에 시달리는지."

그 말을 증명하듯 또다시 카톡이 울렸다. 이번에는 이 차장이었다.

"강 사원, 우리 팀 카톡방 좀 확인해봐."

새로운 단체방이 만들어져 있었다.


[영업관리팀 자료공유방]

······.


여기저기서 자료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주말은 물론이고 밤낮없이 카톡이 울릴 것이 뻔했다.

"저기······."

이수진이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네?"

"제가 다음 주 수요일에 집안일이 있어서······."

"무슨 일인데?"

"할머니 제사라······."

"아, 그래? 그럼 카톡으로 자료를 공유하면 되겠네."

이 차장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자, 이수진의 표정이 굳어졌다. 제사 중에도 카톡을 확인해야 한다니.


저녁이 되자 새로운 공지가 올라왔다.


김 부장 : 오늘은 일찍 퇴근들 해.

김 부장 : 대신 집에 가서 자료를 보완하고.

김 부장 : 카톡으로 공유하자.


이른 퇴근이 반갑기는커녕 더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밤새도록 카톡이 울릴 테니까.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여자친구에게 메시지가 왔다.

'오늘 저녁은 만날 수 있어?'

'미안해······. 자료를 수정해야 해서······.'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야?'

대답할 말이 없었다. 민준도 모르는 일이었다.


밤 11시, 결국 자료를 수정해서 보냈다.

하지만 곧바로 김 부장의 카톡이 왔다.

"이것도 아직 부족해. 더 보완해서 내일 아침까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제 스마트폰은 더 이상 소통의 도구가 아닌, 구속의 도구가 되어버렸다.

새벽 2시, 마지막 수정본을 보내고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끌 수가 없었다. 언제 또 카톡이 올지 모르니까.

이것이 현실이었다.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심지어 잠자리에 들어서도······.

카톡의 공포는 계속됐다.


"띠링-"

또다시 울리는 알림음에 한숨을 쉬었다.

이제는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도 잊어버린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송 대리와 대화를 나눴다.

"민준 씨, 어제 몇 시에 주무셨어요?"

"새벽 3시요······. 자료를 수정하다가."

"저도 그랬어요. 예전에는 아이 깨우는 알람이 가장 무서웠는데, 이제는 카톡 알림음이 더 무섭네요."

송 대리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카톡은 그저 친구들과 소통하는 즐거운 도구였는데, 이제는 우리를 옥죄는 족쇄가 되어버렸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김 부장이 호출했다.

"강 사원, 어제 자료는 좀 보완했나?"

"네······. 말씀하신 대로 수정했습니다."

"음······. 근데 아직도 뭔가 부족한데······."

또다시 시작될 수정 작업과 카톡 폭탄의 악몽이 떠올랐다.


점심시간, 카페에서 태호와 이야기를 나눴다.

"전 이제 진짜 카톡 알림음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려요."

태호가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저도······. 어제는 꿈에서도 카톡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심지어 진동 소리만 들려도 놀라요. 다른 사람의 스마트폰 진동 소리에도."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제는 공식적으로 '카톡 공포증' 환자가 된 것 같았다.

그때 마침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우리 회사는 퇴근하면 카톡은 절대 안 해."

"맞아, 그게 정상이지. 퇴근했는데 카톡으로 일하라고?"

부러운 마음에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저런 회사도 있었구나.


오후, 또다시 카톡이 울렸다.


김 부장 : 다음 주부터 카톡 응답 시간을 점검합니다.

김 부장 : 5분 내로 답장 없으면 경고.

김 부장 : 지각이랑 똑같이 취급할 겁니다.


순간 숨이 막혔다. 이제는 아예 공식적으로 감시를 시작하겠다는 건가.

"이제 진짜 스마트폰의 노예가 되는구나······."

이수진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퇴근 시간,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진정한 퇴근은 아무도 할 수 없었다. 이제는 집에 가서도 계속될 카톡 업무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이것이 모두의 새로운 일상이 되어버렸다.

24시간 대기조가 된 채, 언제 울릴지 모르는 카톡에 가슴을 졸이며 사는 날들.

'자유'는 이제 먼 나라의 추억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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