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by 은파

“말이 있기에 사람은 짐승보다 낫다.

그러나 바르게 말하지 않으면 짐승이 그대보다 나을 것이다.”

– 탈무드



인간에게 주어진 특별한 능력 중 하나인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를 넘어 세계를 인식하고 창조하는 근본적인 힘을 지닌다. 특히 현대사회에서 언어의 영향력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해졌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말은 순식간에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개인과 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언어의 힘은 양면성을 지닌다. 한편으로 언어는 인간을 고양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창조적 힘이 될 수 있다. 위로와 격려의 말은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지혜로운 조언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길을 찾게 해준다. 예술가들의 시와 문학은 언어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우리 영혼을 풍요롭게 만든다.

그러나 동시에 언어는 파괴적인 힘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악의적인 비방과 거짓말은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린다. 특히 현대의 소셜 미디어 환경에서 가짜뉴스와 혐오 표현은 순식간에 확산하여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낳는다. 말의 폭력성은 때로 물리적 폭력보다 더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디지털 시대의 언어는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띤다. 익명성이 보장된 온라인 공간에서 사람들은 더욱 무책임하게 말을 내뱉는다. 문맥이 제거된 단편적인 메시지들이 난무하고, 즉각적인 반응과 판단이 요구되는 환경은 깊이 있는 소통을 어렵게 만든다. 더구나 알고리즘에 의해 강화되는 확증 편향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 간의 대화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도전 속에서도 우리는 언어의 긍정적 가능성을 발견하고 키워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언어가 지닌 책임의 무게를 인식해야 한다.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신중하게 언어를 선택해야 한다.

또한 진정한 소통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소통은 단순한 정보의 전달이 아닌,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통해 더 깊은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다양한 관점을 존중하며, 참된 대화를 나누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디지털 리터러시의 함양도 중요하다. 정보의 진위를 분별하고,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읽어내며, 건강한 온라인 소통 문화를 만들어가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는 개인의 노력을 넘어 사회적 차원의 교육과 제도적 지원이 필요한 과제다.

긍정적인 언어 사용을 위한 실천적 노력도 중요하다. 매일의 대화에서 상대를 배려하는 말하기, 건설적인 비판과 제안, 진실되고 정직한 소통을 실천해야 한다. 작은 친절한 말 한마디가 모여 더 나은 소통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

결국 언어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의 자산이다. 그것은 개인과 사회를 연결하고, 과거와 미래를 잇는 다리가 된다. 이 소중한 자산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언어의 창조적 힘을 믿고, 그것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 현대인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우리가 모두 언어의 책임 있는 사용자가 될 때, 비로소 진정한 소통이 가능해지고 더 풍요로운 문화가 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언어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도전이자 희망이다.

말의 퇴락 현상

하이데거의 언어에 대한 성찰은 현대사회의 본질적 위기를 예리하게 포착한다. 그에게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닌, '존재의 집'이었다. 언어를 통해 존재가 드러나고, 인간과 세계가 만나며, 진리가 모습을 드러낸다고 보았다. 그러나 현대 기술 문명의 발달과 함께 이러한 언어의 본질적 기능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고 진단했다.

현대사회에서 언어는 점차 도구화, 기능화되어 가고 있다. 효율적인 정보 전달만이 강조되면서, 언어가 지닌 존재 드러냄의 기능은 퇴보하였다. 예를 들어, SNS에서 오가는 단편적 메시지들, 뉴스의 속보성 중심 보도, 광고의 자극적 문구들은 언어의 본질적 의미를 상실한 채 단순한 기호로 전락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언어의 퇴락이 존재 자체의 망각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언어가 세계와의 본질적 연결고리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우리는 점점 실재하는 세계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현대인들은 수많은 정보와 말들 속에서 살아가지만, 정작 존재의 진리와는 단절된 채 살아가고 있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시인들의 언어에 주목했다. 시적 언어야말로 존재의 진리를 드러내고, 인간과 세계를 진정으로 연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시인은 일상적 언어 사용을 넘어서 존재의 심오한 차원을 열어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한 하이데거는 침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끊임없는 말의 범람 속에서 우리는 침묵을 통해 존재의 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침묵은 단순한 말의 부재가 아닌, 더 깊은 차원의 언어를 가능하게 하는 근원적 토대가 된다.

이러한 하이데거의 통찰은 현대사회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우리는 언어의 도구화, 기능화를 경계해야 한다.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언어 사용은 결국 인간의 실존적 빈곤을 초래할 수 있다. 둘째, 언어의 시적 차원을 회복해야 한다. 예술과 문학을 통해 언어의 창조적 힘을 되살리고, 존재와의 연결을 회복해야 한다.

더불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도전에도 주목해야 한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언어는 더욱 기계화되고 있으며, 가상현실의 확산은 실재와의 거리를 더욱 멀어지게 만든다. 이러한 상황에서 언어의 본질을 되찾는 것은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된다.

실천적 차원에서는 다음과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깊이 있는 독서와 사유를 통해 언어의 깊이를 회복해야 한다. 또한 일상적 대화에서도 진정성과 깊이를 추구하며,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서는 소통을 시도해야 한다.

결국 하이데거가 제시하는 언어의 회복은 현대인의 실존적 회복과 직결된다. 언어가 다시 '존재의 집'으로 거듭날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세계를 경험하고 더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언어의 본질적 과제일 것이다.

존재의 언어로 살아가라

존재의 언어로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한 언어 사용의 문제를 넘어선다. 그것은 우리의 존재 방식 자체, 즉 어떻게 살아가고 세계와 관계 맺을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물음과 연결된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닌 존재를 드러내는 근원적 매개체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이해하고, 세계와의 관계를 형성하며,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현대사회에서 언어는 점차 도구화, 상업화되어 가고 있다. 광고는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고, 정치적 수사는 대중을 조종하며, 미디어는 현실을 왜곡한다. 이러한 '비본래적 언어'는 우리의 존재를 물질적이고 표면적인 차원으로 한정시킨다. 그 결과 우리는 진정한 자아와 단절되고, 삶의 본질적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본래적 언어'는 이러한 왜곡을 넘어서려는 시도다. 그것은 인간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세계와의 진정한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언어다. 시인의 언어가 세계의 숨겨진 의미를 드러내듯, '본래적 언어'는 우리의 존재 가능성을 열어준다.

존재의 언어로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는 자기 탐구의 과정이다. 그것은 일상적 관행과 관습을 넘어, 자신의 고유한 존재 방식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발견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며, 더 풍요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갈 수 있다.

특히 디지털 시대에서 존재의 언어를 회복하는 것은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된다. 소셜 미디어의 피상적 소통,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언어 환경, 가상현실의 확산은 우리를 실존적 진실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만든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더욱 의식적으로 '본래적 언어'를 추구해야 한다.

존재의 언어는 침묵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끊임없는 말의 소음 속에서 우리는 때때로 침묵해야 한다. 침묵 속에서 우리는 존재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더 깊은 차원의 언어를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마치 고요한 호수가 하늘을 더 선명하게 비추는 것과 같다.

실천적 차원에서 존재의 언어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깊이 있는 독서와 사유를 통해 언어의 깊이를 회복해야 한다. 둘째, 일상적 대화에서도 진정성을 추구하며, 표면적 소통을 넘어서려 노력해야 한다. 셋째, 예술과 문학을 통해 언어의 창조적 차원을 경험해야 한다.

이러한 여정은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존재의 언어를 추구하는 노력은 우리를 더 깊은 차원의 삶으로 이끌어줄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언어의 변화가 아닌, 우리의 존재 방식 자체를 변화시키는 근본적인 전환이 될 것이다.

결국 존재의 언어로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는 자기 초월의 과정이다. 그것은 주어진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이며, 더 진정한 삶을 향한 여정이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존재 의미를 발견하고, 세계와의 더 깊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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