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신은 항상 내 안에 있다

by 은파

“신은 언제나 다른 모습으로 찾아온다.”

– 탈무드



현대사회는 종교의 위상과 역할이 근본적으로 재정립되는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 개인주의의 심화, 가치관의 다원화는 전통적 종교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종교성이 등장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종교의 쇠퇴가 아닌, 더욱 복잡하고 다층적인 종교적 현상의 출현을 의미한다.

과거 종교는 사회 질서의 근간이자 도덕적 규범의 원천이었다. 종교는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고, 개인의 행동 기준을 제시하며,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절대적 권위를 지녔다. 그러나 현대사회로 접어들면서 종교의 역할은 점차 개인의 내면적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제 종교는 개인의 실존적 고민에 답을 제시하고, 심리적 안정과 영적 성장을 돕는 기능에 더 집중하고 있다.

현대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들 앞에서 종교의 사회적 책임도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경제적 불평등, 환경 파괴, 인권 침해 등 글로벌 이슈에 대해 종교는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많은 종교 단체는 사회 정의 실현과 평화 구축을 위해 노력하며, 소외계층을 위한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는 종교가 단순한 영적 안내자를 넘어, 사회 변혁의 주체로서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종교 간 대화와 협력의 증가다. 과거의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종교들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공통의 가치를 모색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고 평화로운 공존을 추구하는 현대사회의 요구와 맞닿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 변화 속에서도 우려스러운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종교적 극단주의는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분쟁과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일부 종교 단체의 권위주의적 행태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며, 종교의 상업화 현상은 종교의 본질을 왜곡시키고 있다.

더욱이 급속한 세속화와 개인주의의 확산은 종교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제기한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전통적 종교에 관한 관심이 감소하고 있으며, 개인화된 영성 추구나 대안적 신념 체계가 등장하고 있다. 이는 종교가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교는 자기혁신을 통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 첫째, 현대인의 실존적 고민과 영적 필요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둘째, 사회 문제 해결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실천적 종교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셋째, 다른 종교와의 대화와 협력을 통해 더 포용적이고 열린 종교로 거듭나야 한다.

종교의 미래는 이러한 도전과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종교가 시대적 요구를 수용하면서도 본연의 가치를 잃지 않는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종교는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종교는 인간의 근본적인 실존적 물음에 답을 제시하고, 삶의 의미와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계속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리와 제도의 개혁뿐만 아니라, 현대인의 필요와 고민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와 적응을 통해 종교는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정신적,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신은 죽었다

"신은 죽었다." 니체의 이 충격적인 선언은 단순한 무신론적 선언을 넘어 서양 문명의 근간을 뒤흔드는 철학적 폭탄이었다. 이는 소크라테스 이래 서양 철학의 전통, 기독교적 세계관, 그리고 전통적 도덕 체계 전반에 대한 근본적 도전이었다. 니체는 이 선언을 통해 인간을 구속해 온 모든 초월적 가치의 붕괴를 선언하고, 새로운 가치 창조의 시대를 예고했다.

니체가 비판한 것은 단순히 종교적 신앙이 아니었다. 그는 기독교 도덕이 지닌 '노예 도덕'의 본질, 즉 인간의 창조적 생명력을 억압하고 현실 도피를 조장하는 측면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에게 있어 전통적 종교와 도덕은 삶을 부정하고 인간의 능동적 의지를 질식시키는 장치였다. 이러한 가치 체계의 붕괴는 필연적으로 니힐리즘이라는 위기를 초래하지만, 니체는 이를 새로운 가치 창조의 기회로 보았다.

니체가 제시한 '힘에의 의지'는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힘이나 폭력의 추구가 아닌, 삶을 긍정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려는 적극적 의지를 의미한다. 니체는 이를 통해 인간이 신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진정한 삶의 주체로 거듭날 수 있다고 보았다.

하이데거는 니체의 이러한 선언을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한다. 그에게 '신의 죽음'은 인간 존재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결정적 계기였다. 초월적 존재의 부재는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지게 만들었으며, 이는 존재의 의미를 새롭게 탐구해야 할 철학적 과제를 제시했다.

하이데거는 특히 전통 철학의 주체-객체 이분법을 비판하며, 인간 존재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철학적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존재론적 전환'이라 불리는 이 시도는 인간 존재의 근본적 의미를 탐구하고, 실존적 책임을 강조하는 새로운 철학적 지평을 열었다.

두 철학자의 차이점도 주목할 만하다. 니체가 모든 가치의 붕괴를 인정하고 전적으로 새로운 가치 창조를 강조했다면, 하이데거는 인간 존재의 본질적 의미를 탐구하는 데 더 집중했다. 니체의 '힘에의 의지'에 대해서도 하이데거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는데, 진정한 힘은 존재 가능성의 실현과 진정한 관계 형성에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두 철학자는 '신의 죽음'이 인류에게 새로운 도전이자 기회라는 점에서는 일치했다. 이는 인간이 더 이상 초월적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아나가야 할 과제를 부여받았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통찰은 현대인들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신의 죽음' 이후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전통적 가치 체계가 흔들리고 새로운 가치관이 요구되는 이 시대에, 니체와 하이데거의 철학은 우리에게 중요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들이 제시한 과제, 즉 새로운 가치의 창조와 존재의 의미 탐구는 현대인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철학적 과제로 남아있다.

결국 '신의 죽음'은 끝이 아닌 시작이다. 그것은 인간이 진정한 자유와 책임 속에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 가야 할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이다. 이제 우리는 이 도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실천해 나갈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이다.

신성(神聖)한 삶과 함께하라

하이데거의 '사방세계(四方世界)' 개념은 현대 과학기술 문명이 상실한 삶의 신성성을 회복하기 위한 철학적 시도다. 이는 단순한 공간적 개념이 아닌, 인간 존재의 본질적 거주 방식을 드러내는 존재론적 통찰이다. 하늘, 땅, 신적인 것, 그리고 죽을 자로서의 인간이 서로 얽혀 형성하는 이 복합적 관계망은 우리 삶의 진정한 의미를 되찾게 해주는 철학적 지평을 제시한다.

사방세계에서 '거주한다'라는 것은 일상적 의미의 주거와는 전혀 다른 차원을 지닌다. 오늘날 우리는 집을 단순한 생활공간이나 재테크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하이데거가 말하는 거주는 존재의 본질적 방식을 의미한다. 이는 잃어버린 존재의 의미를 되찾고, 신성한 것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실존적 과제와 연결된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사방세계가 지닌 관계적 특성이다. 인간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계시를 받아들이고, 땅의 생명력을 받아들이며, 신적인 것을 기다리는 존재다. 이러한 복합적 관계망 속에서 인간은 진정한 실존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하이데거의 이러한 통찰은 현대 과학기술 문명이 상실한 삶의 차원을 회복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신적인 것'은 전통적 종교의 신과는 구별된다. 이는 오히려 삶의 신성성, 즉 일상적 삶 속에 깃든 초월적 차원을 의미한다. 고대로부터 인류의 삶에는 이러한 신성한 차원이 늘 함께했다. 그러나 근대 이후 과학적 세계관과 기계론적 사고방식의 지배로 인해, 이러한 신성성이 우리 삶에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신성성의 상실이 현대인의 실존적 위기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보았다. 모든 것을 계산이 가능한 대상으로 환원하는 과학 기술적 사고방식은 삶의 신비로운 차원을 제거하고, 인간을 영적 공허 상태로 몰아넣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성한 삶의 회복은 현대인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가 된다. 이는 맹목적인 종교적 신앙으로의 회귀가 아닌, 삶의 신성한 차원에 대한 새로운 자각과 관련된다. 우리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포착하지 못하는 삶의 깊이를 회복해야 한다.

이러한 회복은 실천적 차원에서 여러 가지 함의를 지닌다. 우선, 우리는 일상적 삶 속에서 신성한 것의 현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자연의 경이로움, 예술의 아름다움, 인간관계의 깊이 등에서 우리는 이러한 신성성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과학기술 문명이 제공하는 편리함에 매몰되지 않고, 보다 깊은 차원의 삶의 의미를 추구해야 한다. 이는 물질적 풍요를 넘어서는 영적 충만함, 기계적 효율성을 넘어서는 존재론적 깊이를 향한 추구를 의미한다.

결국 하이데거가 제시하는 신성한 삶은 현대인에게 중요한 실존적 과제를 제시한다. 그것은 과학기술 문명이 상실한 삶의 차원을 회복하고, 더욱 풍요로운 실존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제는 단순한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현대적 맥락에서 삶의 신성성을 재발견하고 실현하는 창조적 도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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