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운명은 만들어가는 것이다

by 은파

“당신은 당신 운명의 건축가이고,

당신 운명의 주인이며 당신 인생의 운전자이다.”

- 브라이언 트레이시



현대인들에게 운명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단순한 개념적 논의를 넘어 우리의 실존적 조건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어떤 이에게 운명은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절대적 힘으로 다가오고, 또 다른 이에게는 과학적 합리성 앞에서 무력한 미신으로 여겨진다. 이처럼 운명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지만, 그 근저에는 인간이 자신의 삶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본질적 열망이 자리 잡고 있다.

과학기술 문명의 발전은 인간의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합리성과 객관성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운명과 같은 초월적 개념은 점차 그 영향력을 잃어가는 듯하다. 그러나 인간의 삶에는 여전히 이성적 설명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신비로운 영역이 존재한다. 예기치 않은 만남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거나, 사소해 보이는 선택이 거대한 변화를 불러오는 경험은 우리로 하여금 삶의 신비로운 차원을 직면하게 한다.

이러한 경험들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를 넘어선다. 그것은 인류가 오랫동안 추구해 온 존재의 의미와 연결되어 있다. 운명이란 단순히 미래를 점치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 정신의 근원적 차원을 드러내는 창문과도 같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삶의 더 깊은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현대인들의 운명에 대한 관점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운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다. 이들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며, 그 속에서 삶의 지혜를 찾고자 한다. 현재의 순간에 충실하며,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태도는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하지만, 때로는 수동적인 삶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한계도 지닌다.

둘째는 운명을 거부하고 모든 것을 인과관계와 확률의 결과로 보는 관점이다. 이들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고 설계하고자 한다.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모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자신이 져야 한다는 부담도 따른다. 실패나 좌절을 겪을 때 더 큰 심리적 고통을 경험할 수 있다.

운명에 대한 태도는 결국 개인의 인생관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그것은 단순한 신념의 문제를 넘어, 실제로 우리의 삶의 방식과 행동 양식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따라서 운명의 실재 여부를 따지는 것보다, 우리가 그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현대사회의 맥락에서 운명의 의미를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과거의 미신적 관념이 아닌, 우리의 삶에 의미와 방향성을 제시하는 실존적 나침반으로 이해될 수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삶의 근본적 의미를 찾고자 하는 영적 갈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운명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결국 개인의 선택이다. 그것을 절대적 힘으로 받아들이든, 아니면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든, 어느 쪽도 절대적 진리를 주장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관점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그것이 삶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는 더욱 의미 있고 충실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운명은 결단이다

"인간의 운명은 결단에 달려 있다." 이 간단한 명제는 인간 실존의 심오한 진실을 담고 있다. 단순해 보이는 이 문장은 우리의 존재 방식과 삶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제기한다. 이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 실존의 구조와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이 필요하다.

하이데거의 실존철학은 이 문제에 대한 중요한 시각을 제공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세계-내-존재'로서, 세계와 분리될 수 없는 본질적 관계 속에 놓여 있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 존재 방식을 넘어, 우리가 세계와 맺는 모든 관계와 의미의 총체를 가리킨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특정한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맥락 속에 '내던져진' 존재다.

그러나 인간의 독특성은 바로 이 '내던져진' 상황을 초월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 우리는 주어진 조건에 완전히 종속되지 않고, 그것을 해석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이러한 자기 초월의 가능성이야말로 인간 실존의 고유한 특징이며, 이는 필연적으로 선택과 결단의 문제로 이어진다.

결단의 순간은 우리 삶에서 가장 실존적인 계기가 된다. 그것은 단순한 선택의 차원을 넘어, 우리의 존재 방식 자체를 규정하는 근본적 사건이다. 우리는 결단을 통해 무수한 가능성 중 하나를 현실화시키며, 이 과정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삶의 궤적을 그려나간다. 중요한 것은 결단의 결과가 아니라, 결단하는 행위 자체가 지니는 실존적 의미다.

하이데거의 통찰은 현대인의 삶에 중요한 함의를 제공한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선택의 자유 속에서 오히려 더 큰 불안과 혼란을 경험한다. 무한한 가능성은 동시에 무한한 불확실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이러한 불확실성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라고 본다.

결단의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두려움과 불안이 따른다. 우리는 결단의 결과를 완전히 예측할 수 없으며, 때로는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불안과 실패의 가능성을 회피하는 것은 오히려 더 큰 실존적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결단을 미루거나 회피할 때, 우리는 진정한 자아실현의 기회를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실존적 결단은 구체적인 삶의 맥락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진로의 선택, 관계의 형성과 단절, 가치관의 정립 등, 우리의 삶은 크고 작은 결단의 연속이다. 각각의 결단은 우리의 실존적 지평을 새롭게 열어가는 계기가 된다. 때로는 작은 결단이 예상치 못한 큰 변화를 불러오기도 하고, 때로는 중대한 결단이 일상의 소소한 변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진정한 의미의 결단은 깊은 자기 성찰을 전제로 한다. 그것은 단순한 충동이나 일시적 감정에 따른 선택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가능성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실존적 상황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가능한 선택지들을 진지하게 검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따라서 "인간의 운명은 결단에 달려 있다"라는 명제는 우리에게 실존적 과제를 제시한다. 그것은 우리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운명은 더 이상 숙명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주체적 결단을 통해 열어가야 할 가능성의 영역이 된다.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실존적 결단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빠른 변화와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대에서, 확고한 결단력과 실존적 용기는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우리는 주어진 상황을 회피하거나 타인의 선택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과 결단으로 삶을 이끌어가야 한다.

결국 우리의 진정한 운명은 결단의 연속을 통해 실현된다. 그것은 이미 정해진 길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선택과 결단으로 개척해야 할 여정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진정한 자유와 자아실현의 기쁨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벽이 있으면 뚫고 가라

많은 이들은 운명을 피할 수 없는 숙명 혹은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 인식한다. 그러나 운명의 본질은 그러한 고정된 관념을 넘어선다. 그것은 단지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과 조건일 뿐, 그 자체로는 어떠한 결정적 힘도 지니지 않는다. 진정 중요한 것은 그러한 상황에 대응하는 우리의 태도와 의지다.

역사는 수많은 위인이 자신의 운명적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지평을 열어왔음을 보여준다.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태어나 세계적 과학자가 된 아인슈타인, 장애를 극복하고 인류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 헬렌 켈러,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위대한 예술 세계를 구축한 베토벤 등. 이들은 모두 주어진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해 낸 인물들이다.

인생의 벽을 뚫고 나아가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때로는 육체적 고통을, 때로는 정신적 좌절을 수반한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도전의 과정에서 우리는 더욱 강인해지고 성숙해진다. 마치 단련된 쇠가 더욱 단단해지듯, 우리도 시련을 통해 더욱 강해질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불굴의 의지다. 한두 번의 실패나 좌절로 모든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역경이 클수록 더욱 강한 의지로 맞서야 한다. 실패는 종착점이 아닌 새로운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진정한 패배는 포기하는 순간에 찾아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주하는 장벽은 겉보기와 달리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 모든 벽에는 반드시 균열이 있고, 그 균열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창조적 상상력과 끈질긴 도전 정신이다. 눈앞의 현실에만 매몰되지 않고, 그 너머의 가능성을 볼 줄 아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장벽을 뚫는 과정은 단계적으로 이루어진다. 처음부터 거대한 벽에 맞서기보다, 작은 도전부터 시작하여 점진적으로 더 큰 과제에 도전하는 것이 현명하다. 일상의 작은 성취들이 쌓여 결국 큰 목표를 달성하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어려움이 찾아올 수 있지만, 그것 역시 성장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벽을 뚫고 나아가는 여정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갱신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같은 방법으로는 새로운 장벽을 넘을 수 없다.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전략을 수정하고,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며, 때로는 타인의 도움과 조언을 구하는 열린 자세도 필요하다.

특히 현대사회에서는 더욱 다양한 형태의 장벽이 우리를 가로막는다. 기술의 발전, 사회의 급격한 변화, 새로운 가치관의 등장 등은 우리에게 끊임없는 적응과 혁신을 요구한다. 이러한 도전 앞에서 우리는 더욱 강인한 의지와 창의적 해결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결국 운명이란 우리가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여정이다. 그것은 결코 미리 정해진 길이 아니라, 우리의 도전과 노력으로 새롭게 창조되는 가능성의 영역이다. 장벽 앞에서 체념하는 순간 그것이 우리의 한계가 되지만, 끊임없이 도전하고 극복해 나갈 때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 어떠한 벽이 가로막더라도, 그것을 뚫고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과 열정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더욱 성장하고 성숙해질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운명 개척이며, 자아실현의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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