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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x Mar 01. 2023

[삼형제 도시탈출기] 06. 로망은 개뿔... 절망

농촌유학 실전기(2)

아이들은 마당에서 뛰어놀고 나는 뜨거운 햇살 아래 앉아 커피를 한잔 마시고 새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고 밤하늘 별을 머리에 이고 잠이 든다.

라던 나의 로망은 농촌유학의 실전기에 접어 들면서 사라진지 오래다.


현실은 시궁창.

농가 마을이 학교에서는 가까워도 집들과는 좀 먼 외진 곳에 있는 터라 불편함이 한두개가 아니다.


1. 지하수.

모터로 물을 끌어올려 물이 나오는데 자꾸 모래가 보인다. 

샤워 한번 했는데 샤워기 필터가 샛노래졌고 필터안에 모래가 쌓여있다. 마시는 물은 따로 사서 마신다 해도 주방에서 쌀도 씻고 음식도 해먹어야 하는데 모든 물은 사온 생수로 감당하려니 쉽지 않다. 우리가 사는 집과 옆집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시는 집. 딱 2개이고 주변으로 다 논밭이다. 상수도를 해 준다고 하지만 언제될지 모를 일이다. 4월에나 연락을 준다고 하니 여름엔 되려나 싶다.


2. 온수

무엇이 문제인지 온수가 나오지 않는다. 시골에 내려온 뒤로 수도꼭지에서 따뜻한 물을 만나지 못했다. 처음엔 전기가 문제라고 해서 전기를 고쳤는데 여전히 안나온다. 설비하시는 분이 오셔서 왔다갔다 무언가를 만지는데 혼잣말을 들어보니 간단한 문제가 아닌 듯하다. 따뜻한 물이 없이 찬물로 샤워도 하고 머리도 감는다. 지하수는 왜 그렇게 차가운 지. 내 마음마저 꽁꽁 얼어붙을 것 같다.


3. 인터넷

디지털 시대. 인터넷이 안되는 곳이 있다. 이 곳이다. 주변에 와이파이도 없을 뿐더러 인터넷을 설치하려면 유일하게 가능한게 KT인데 전신주 3개와 인터넷 선을 끌어와야 해서 400만원이 든다고 한다. 1년 살이를 위해 400을 투자하는 건 너무 부담이고 이곳 주인 역시 그건 무리다. 교육청과 시청 쪽에 문의를 넣었다. 앞으로 농촌유학 가정이 계속 올텐데 지금 당장은 포켓 와이파이로 버틴다 해도 장기적으로 인터넷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겠냐고. 고충은 알겠다. 알아는 보겠다고 하지만 언제가 될지 기약이 없다.


4. 농가 현주소

내가 선택한 곳은 사람이 살던 곳이 아니었다. 임시 거처로 쓰기 위해 만든 곳이라 생필품이 하나도 없었다. TV, 세탁기, 냉장고, 냉온풍기를 놓아주기로 약속했다. 나는 2월24일에 내려갈거라고 미리 연락도 했는데 3월 1일 현재까지 TV(인터넷 미설치로 필요도 없다) 하나만 덩그러니 있다. 세탁기는 설비업체에서 수도를 놔줘야 가능하고 냉장고는 왔었는데 없어졌다. 브런치 에피소드를 위해서인지 새로 배송된 냉장고 상단 모서리가 찌그러져 도착하는 바람에 도로 가져갔다. 그러다 보니 음식을 사다놓지도 못하고 빨래도 못하고 답답하다. 다른 유학생 가정과 만났는데 다들 기본적인 생활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는 모양이다. 냉장고 식품이 계속 어는 집이 있고 세탁기가 안되어서 차를 타고 시내로 나가 빨래방을 이용하고.. 나도 시내를 좀 나가고 싶은데 돌담 세운다, 온수기 고친다 등등 계속 사람이 오니 외출도 쉽지 않다. 


농촌유학을 준비하면서 조금 춥고, 편의점 이용이 쉽지 않고, 배달음식을 시킬수도 없고, 약국이나 병원이 차로 나가야 있고 등등 이런 불편이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지금 그런건 문제도 안된다. 다른 무엇보다 기본 생활시설이 안되니 답답하고 황당하다. 농가선택 과정에서 시청에서 미리 점검을 하고 제반상황을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지금 농촌유학의 실전은 로망은 바이바이, 절망으로 뒤덮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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