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두콩도 맛있었다
완두콩을 샀다. 예뻐서.
완두콩을 먹어본 기억은 어릴 때 짜장면 위에 올라간 몇 알 또는 가끔 급식에서 나왔던 완두콩밥 정도밖에 없다. 따로 골라낼 정도로 싫어하진 않았지만, 딱히 좋아해 본 적도 없다. 그런데 우연히 카레집에서 완두콩을 몇 개 올려주는 것을 보고 귀여워 보여서 덜컥 냉동 완두콩을 한 봉지 사버렸다. 요리를 할 때 예쁘게 담아내는 것은 집밥의 소소한 즐거움 중 한 가지인데, 혼자 사는 사람에게 냉동 제품이란 너무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몸에 좋은 콩이라니, 진짜 어른이 된 듯한 뿌듯함까지 느껴졌다.
맘에 드는 구매를 했으니, 열심히 쓰려고 노력했다. 귀여웠던 카레집처럼 카레 위에도 몇 개 뿌려보고, 오므라이스를 만들 때도 넣어보고, 볶음밥에도 살짝 섞어보고, 수프에도 콩콩콩 올려보았다. 나름대로 완두콩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열심히 써보았지만 문제는 항상 데코용이었기 때문에 매번 두 알 또는 세 알... 너무 조금씩 쓴다는 게 문제였다.
안 그래도 좁은 자취방 냉동실에 완두콩 한 봉지가 자리를 차지한 지 어언 몇 달. 냉동실은 포화상태에 이르러 아무리 열심히 테트리스를 해봐도 도통 자리가 나지 않았고, 문을 열면 무언가 하나씩 위협적으로 발등을 향해 떨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 이상은 완두콩을 그냥 둘 수 없게 되었다.
완두콩을 한 번에 많이 먹을 수 있는 요리는 없을까. 맛있으면서도 효과적으로 완두콩을 처리하기 위한 레시피 검색에 들어갔다. 그러나 완두콩으로 검색을 하자 나오는 메뉴들은 매우 한정적이었다. 완두콩밥은 얼마 먹지 못할 것 같았고, 샐러드에 잔뜩 넣으면 맛이 없을 것 같고, 찌거나 볶은 메뉴들도 마찬가지였다. 쉽지 않은 재료다.
그래서 검색어를 GREEN PEA로 바꾸어 해외 레시피 검색에 들어갔다. 평소에 새로운 레시피에 도전해 보는 것을 좋아해 해외 레시피도 종종 찾아보곤 하는데, 역시 세상에 요리 방법은 다양했다. 완두콩 후머스, 완두콩 전, 완두콩 리조또 등등 보기만 해도 아주 초록 초록하고 이국적인 메뉴가 많았다.
무슨 맛일까 상상이 잘 가지 않는 낯선 메뉴들 중에서 왠지 친숙하고 맛있을 것 같은 느낌이 팍팍오는 레시피가 한 가지 있었는데 바로 완두콩 수프였다. 머그컵에 휘휘 저어서 아침밥으로 타 먹는 보노도 좋고, 브런치 맛집에서 예쁘게 먹는 멋진 수프도 좋고, 주말에 대충 끓여먹는 오뚜기 수프도 좋아하는 나의 마음을 확 사로잡았다.
재료: 완두콩 두 컵, 우유 두 컵, 물 두 컵, 감자 한 개, 양파 반개, 시금치 한 줌
양념: 치킨스톡 1/2T, 치즈(파마산 또는 그라나파다노) 2T, 소금&후추 조금
1. 감자와 양파를 작게 썰어서 볶아준다.
(수프의 좋은 점은 다 갈아버릴 것이기 때문에 예쁘게 자르지 않아도 된다.)
2. 완두콩, 물, 치킨스톡을 넣고 모든 재료가 푹 익을 수 있게 3~5분 정도 끓여준다.
3. 시금치를 넣고 숨이 죽을 때까지 1분 정도 더 끓여준다.
4. 우유를 넣고 불을 끈 뒤 모두 갈아준다.
5. 다시 불을 켜고 수프가 끓어오르기 시작하면 치즈와 소금을 넣고 잘 저어준다.
+ 그릇에 담은 뒤 크림 한 스푼을 올려주면 더욱 부드러운 수프가 된다.
+ 트러플 오일을 몇 방울 뿌려주면 풍미가 두배가 된다.
+ 완두콩을 몇 알 남겨두었다 위에 올려주면 귀엽다.
역시 수프는 웬만한 재료는 다 해결해 준다. 완두콩 수프의 맛은 친숙한 감자의 맛이 베이스를 담당해주고, 거기에 수프나 크림 파스타를 만들면 의외로 너무 맛있어서 초록색도 맛있다는 걸 알게 해주는 시금치가 맛을 더해주어 완두콩의 맛을 포근하게 가려주는 맛이었다. 겉이 바삭해지도록 구운 호밀빵을 찍어 먹었더니 든든하고 맛있어서 저녁에 한 그릇 먹고 다음날 아침에 또 먹었다.
오랫동안 냉동실에 잠들어 있던 완두콩을 성공적으로 변신시키고 냉동실에 자리도 한 줌 생겨나서 뿌듯한 요리였다. 오랜만에 새로운 요리에 도전하게 되어서 과정을 짧은 영상으로도 만들어 보았다. 혹시 우리 집처럼 오갈 데 없는 완두콩이 있는 집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코스코스는 매주 금요일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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