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이런 거냐고 묻고 싶을 때가 있다. 영화 ‘트루먼쇼’의 주인공처럼 나 빼고 다 아는데 나만 속고 있는 기분이다. 이건 분명 나만 모르는 게 확실하다. 아니면 내가 나이를 헛먹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쯤이면 내가 아는 게 있긴 한 건지 그조차도 모르겠다. 언제까지 이런 상태가 지속되다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걸까. 넘어갈 수는 있을까. 나보다 나이가 한 살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보면 염치 불고하고 붙잡고서 물어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서른 즈음을 지나올 때 어떠셨나요. 저만 이런 건가요. 여전히 스물다섯에 멈춰있는 상태로 한 뼘도 못 크고 있는 것 같아요. 도대체 어떤 의미를 붙잡고 삶을 살아가야 하나요. 철없이 터져 나오는 끝없는 내 물음에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심리상담 선생님은 이렇게 답하셨다.
“어른이 되어도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는 작은 아이가 있어요. 아현씨 마음속에 있는 그 아이는 물감도 있고 색연필도 있고 분명 다 있는데, 큰 도화지를 앞에 두고 아무것도 못 그리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그 아이가 어떤 마음일지, 그 아이에게 무어라고 말해주면 좋을지 한 번 생각해보셔요.”
상담이 끝나고 내 마음속에 살고 있는 그 아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건 생각보다 힘겨웠다. 어렴풋 떠오르는 형상이 애처로웠기 때문이다. 틀릴까 봐 동그라미 하나도 못 그리고 있는 아이. 그게 나였다. 손에 쥔 연필마저도 자신이 없어서 혹여나 다른 아이들은 벌써 붓을 쥐고 있는 건 아닌지 고개를 돌려 확인이라도 하고 싶은 아이. 먹먹할 만큼 하얗기만 한 도화지 앞에서 멀뚱 거리고 있는 그 아이에게 나는 무어라고 말해주어야 할까.
“괜찮아, 아무거나 막 그려도 돼.”
맨 처음 막연히 떠오른 말이었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는 걸 말을 뱉어보는 순간 알았다. 이미 아무것도 그리지 못하고 쩔쩔 매고 있는 아이에게 ‘아무거나’ 그리라는 말처럼 무책임한 말도 없을 것이다. 조언이랍시고 내가 후배에게, 친구에게, 지인에게 던졌던 말들이 나에게 메아리처럼 돌아온다. 괜찮아, 뭐든 해봐, 뭘 해도 괜찮은 나이잖아. 깊이 없는 조언만큼 쓸모없는 말이 없었다.
연필 한 자루를 힘없이 들고서 멈칫 거리는 아이에게 나는 어떤 말로 혹은 어떤 제스처로 용기를 줄 수 있을까. 동그라미 하나라도 그릴 수 있게 도와주고 싶은데 나는 아직도 그 아이를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다. 내 마음속의 아이가 연필을 쥔 손에 힘을 꽉 주고서 ‘아무거나’ 그리기 시작한다면 열렬히 최선을 다해서 응원해줄 텐데……. 애타는 마음을 모를 그 아이에게 조심조심 다가가서 그 말이라도 슬쩍 전해주어야겠다. 골똘히 고민하다가 그린 그림이 무엇이 되었든 너를 자랑스러워해 줄 내가 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