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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타날 현 Mar 13. 2023

초등학생의 눈동자가 무서울 줄이야

초등 영어수업은 처음이라.

작년 9월, 나는 초등 영어수업을 전문으로 하는 학원에서 여름학기 3개월 근무 기간을 겨우 채우고 퇴사를 했다. 학원 강사로서 내가 첫 발을 디딘 곳이었는데 고작 세 달만의 퇴사였다. 그곳에서의 얘기부터 꺼내어 보련다.


그 학원은 대형 프랜차이즈 학원이었다. 전국에 분원이 셀 수 없이 많고 어느 동네를 가든 그 학원 이름이 붙은 봉고차가 쉽게 눈에 띄일 정도로 큰 학원이었다. 영어강사로 커리어를 시작한다면 이왕이면 대형 학원이 낫겠다는 생각에 이력서를 제출했는데, 제출하기가 무섭게 면접날짜가 바로 다음날 잡혔다. 나는 운 좋게 면접에 합격해서 바로 그다음 주부터 근무를 시작했다.


그곳은 대형 학원인만큼 커리큘럼과 교재가 확실했다. 학원에서 제공되는 교재와 PPT 자료를 가지고 수업만 하면 되는 시스템이었다. 초등 수업은 처음이었던 나에게 그 점은 큰 장점이었다. 게다가 면접 때 나를 좋게 봐준 분원 원장과 교육팀장 덕분에 나는 학원 강사로서의 초봉치고는 꽤 많은 월급을 받고 시작하게 되었다. 한 달에 한 번씩 70명 가까이 되는 학부모에게 상담전화를 돌려야 하는 업무를 제외하고는 교재 선정이나 추가적인 교육 자료를 따로 만들지 않아도 되는 등, 강사에게 딱히 잡무라고 할 만한 일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아이 낳고도 오랫동안 일하는 강사들도 많았고 대형 학원이라서 월급이 밀리거나 떼이는 일도 없다며 주변의 많은 강사들이 꽤 만족하며 일하는 듯 보였다.


다만, 막상 근무를 시작하고 보니 초등학생을 처음 접하는 나로서는 수업에서 초딩들의 통제 불가능한 행동을 맞닥뜨릴 때마다 수명이 하루씩은 줄어드는 것 같았다. 나는 첫 직장생활로 고등학교에서 영어교사로 근무를 했었는데 그땐 10대들과 그럭저럭 소통이라는 게 가능했다. 그 시절, 스물네 살에 불과했던 나보다 아이들이 오히려 어른스럽게 느껴지던 날이 더러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나이가 한 자리 숫자에 불과한 초등학생 꼬맹이들과는 도통 말이 통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건 둘째치고 초등학생들의 돌발적인 행동이 나를 당황시켰다.


참을 인자를 새겨야 하는 순간은 참으로 자주 찾아왔다. 50분 동안 연필을 열댓 번도 더 떨어뜨리고, 연필도 교재도 없이 수업에 들어와서 친구에게 장난을 걸고, 단어 게임을 하다가 승부욕에 못 이겨서 다른 팀 친구와 싸우고, 점수가 잘못됐다며 울고불고, 수업 도중에 아무 때나 화장실을 가겠다고 손을 들고, 친구들의 반응이 재밌어서인지 일부러 엉뚱한 대답을 하며 맥을 끊는 모습이 한 타임의 수업 안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다. 한창 학교생활과 단체생활을 배워가는 초등학생에게는 어쩌면 자연스럽고 당연한 행동들일 텐데도,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스트레스로만 다가왔다. 영어수업이지만 영어는 거들뿐, 초등수업은 절반 이상이 케어에 해당된다는 걸 전혀 몰랐더랬다. 내가 겁도 없이 초등영어학원에 뛰어들었다는 걸 매일 매 순간 깨닫고 있었다.


나의 못된 성질을 꾹 누르고서 목소리를 낮춘 채로  주의를 주려고 눈을 맞추고 이야기할 때면, 아이들은 나를 빤히 쳐다보곤 했다. 그 눈동자가 너무도 투명해서 처음에는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생의 눈을 이렇게 제대로 본 적이 실로 얼마만이던가. 최근에 아이의 눈을 본 게 언제였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악의라고는 티끌만큼도 보이지 않는, 막무가내로 순수하기만 한 그 눈동자를 보고 있노라면 내가 이 어린애를 데리고 뭘 하고 있는 건가. 무기력해지곤 했다. 눈동자 너머 자기 생각하기 바쁜 어른들과의 대화에 내가 익숙해진 건지, 어린이들의 눈동자는 되려 버겁게 느껴졌다. 어떨 때는 그 눈동자가 텅 비어 보여서 이상하리만큼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제대로 통제도 못할 아이들로 꽉 찬 교실에서 수업을 장악해 보려던 내 발악은 나를 금방 지치게 했다.


게다가 주 5일 내내 연강이 쉴 틈 없이 이어졌다.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한 시간 남짓 공강시간을 제외하고 앞뒤로 네다섯 시간씩 화장실 갈 새도 없이 수업 스케쥴이 빡빡했다. 저녁도 못 먹은 채로 11시쯤 집에 돌아오면 하루종일 왕왕거렸던 아이들 소리에 질려서 눕기 바빴다. 저녁을 굶었지만 그렇다고 뭘 입에 넣고 싶지도 않은 기분이었다. 근무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이미 3킬로가 빠진 상태였다. 본능적으로 이러다 내 명에 못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퇴근할 때면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절래거렸다. 그렇지만 한 달 만에 퇴사를 결심하는 건 나 스스로 용납이 되지 않았다. 적어도 한 학기는 버텨보자며 다짐하고 있었는데 내 퇴사에 불을 지른 건 아이들이 아니라 다른 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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