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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아닌 Oct 12. 2021

조금씩 닳아 없어지는 삶

Day 16

자세히 보니 붉은 반점이었다. 드립포트에 녹이 슬어있었다. 스테인레스에도 녹이 슨다는 것은 최근에 안 사실이다. 다만 작은 물방울에도 금세 붉은 자국이 생길 줄은 몰랐을 뿐. 드립포트를 쓰고 나면 늘 설거지를 한 뒤 물을 털어내고 건조대 위에 올려두었다. 그걸로 부족했던 모양이다. 검색을 해보니 누군가는 마른 천으로 남은 물기를 닦아낸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카페에서 일을 할 때는 스테인레스 기구를 늘 에스프레소 머신 위에 올려두었다. 기계 위로 올라오는 열기 때문에 기구들은 언제나 바짝 말라있었다.


다른 드립 용품이었다면 대안이 있었겠으나 드립포트는 방법이 없었다. 가느다란 물줄기를 균일하게 따라내는 일이 너무 어려웠다. 별 생각 없이 계량컵으로 커피를 내리려다가 물이 왈칵 쏟아지고 말았다. 드리퍼에 있던 원두가루들이 물을 맞고 주변으로 튀었다. 가운데 자리에는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깊은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곧바로 드립포트를 사기 위해 나는 가까운 마트로 갔다. 애인은 스테인레스에도 종류가 있다고 말했다. 스테인레스 함유량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너무 저렴한 제품을 고르면 금방 다시 녹이 슬 것 같았다. 나는 처음 생각한 금액보다 더 값이 나가는 물건을 손에 집었다. 새로 산 드립포트에는 뚜껑도 달려있었다.


새카만 연마제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드립포트를 닦아냈다. 그리고 커피를 한 잔 내려마셨다. 입에 향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나는 드립포트를 세척했다. 꼭 마른 천으로 남은 물기마저 닦아낼 생각이었다. 그때 손에 든 식기가 거품을 타고 미끄러졌다. 그리고 아래 있던 드립서버에 큰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내열 유리로 되어있던 드립서버에는 기다란 금이 생겼다. 나는 설거지를 멈추고 깨져버린 드립서버를 비닐봉투에 담았다. 아무래도 드립서버를 새로 사야할 것 같았다. 드립포트를 사자마자 사야 할 물건이 다시 생긴 셈이었다. 돈이 줄줄 새어나가는 기분이 언짢았지만 이미 비슷한 경험이 많았다. 나는 아끼던 옷을 버리던 때가 떠올랐다.


내가 번 돈으로 옷을 사입기 시작하며 나는 옷이 소모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옷의 수명은 생각보다 짧았다. 물론 내가 사입던 옷들이 모두 SPA 브랜드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셔츠는 몇 번 세탁을 하면 금세 실밥이 풀렸고 티셔츠는 목이 늘어났다. 겨우 모은 셔츠 몇 벌은 한 해를 넘길 때마다 다시 몇 벌을 버려야 했다. 그게 좀 이상했다. 한 번 쓰고 버리는 티슈처럼 옷도 몇 번 입고 나면 다시 입을 수 없는 소모품이라는 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아마 이 느낌은 나의 시급과도 엮여 있을 것이다. 셔츠 한 벌이 5만원이라면 당시의 내 하루 일당보다 비쌌다. 옷이 소모품이라는 사실은 내 몸값이 휴지조각이라는 뜻처럼 들렸다.


물론 다소 과장된 비유다. 사실 세상에는 소모품이 아닌 게 없다.


이윽고 나는 되도록 옷을 버리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얼룩이 생긴 옷이더라도 스웨터 안에 겹쳐 입을 수 있으니 버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개중에 몇 벌은 내가 버리지 않았는데도 사라진 게 있다. 문득 생각이 나서 옷장을 뒤져 보지만 도무지 보이지 않는 옷들. 과연 그 옷들은 전부 어디로 간 것일까. 나는 붙박이장의 깊은 어둠 속에서 고이 개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옷들을 상상했다.


며칠 전에는 어머니와 함께 이십오 년 전 사진들을 꺼내보았다. 아버지가 아주 어린 나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사진을 보며 아버지가 입은 붉은 색 재킷을 가리켰다. 이 옷 기억나지? 옆에 있던 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나는 그 옷이 가물가물했다. 저런 옷이 있었던가. 그렇지만 기억 한 편에서는 익숙한 냄새가 느껴졌다. 오래된 천 냄새. 바스락거리던 촉감과 내가 한강공원에서 길을 잃었던 날, 아버지가 나를 찾아내고서 꼭 안아주었던 기억. 그때 아버지가 입고 있던 붉은 재킷의 서늘함이 떠올랐다. 아마 지금은 사라진 옷일 것이다. 벌써 이십오 년이나 흘렀으니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나의 재킷을 매만져보았다. 언젠가 사라질 옷이었다. 갑자기 옷 한 벌을 버리는 일보다 더 큰 서글픔이 느껴졌다. 내 삶이 언젠가 초라해질 것이라는 예감이었다. 결국 우리는 모두 사라질 존재들이다.


그러니 사람은 소모되는 일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것은 필연적이다.


살림을 시작하며 가장 어려웠던 일은 장을 보는 것이었다. 무엇이 필요한지 제대로 아는 게 없었다. 조미료부터 건전지까지. 필요한 물건들이 너무 많았고 막상 하나를 사면 다른 하나를 모두 써서 필요한 물건이 다시 생겼다. 세상 모든 것들이 소모품인 것 같았다. 그게 조금은 부당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살다가는 평생을 장을 보다가 다 보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삶이 당연한 것이라면. 우리가 단지 조금씩 닳아 없어지는 존재일 따름이라면. 그렇다면 장을 보며 사는 삶도 그럭저럭 괜찮은 삶이 될 수 있을까. 말하자면 오늘 하루가 단지 나의 인생 중 하루를 낭비한 것일 따름이라도. 그것만으로 하루를 잘 살아냈다고 말해줄 수 있는 걸까.


아마 그럴 것이다. 사라지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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