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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아닌 Oct 13. 2021

삶의 태도가 되는 불안

Day 17

가끔씩 중요한 일을 잊어버린 듯한 불안에 시달린다. 이를 테면 대출금의 이자 납입일을 놓친 게 아닐까 싶은 걱정. 불현듯 서류 접수기한이 이미 지나버렸다는 생각에 오싹한 느낌. 다행히 큰 실수를 저지른 적은 없으나 그렇다고 해서 불안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동안 내가 벌인 무수한 일들은 팔할이 불안에 등 떠밀려 첫술을 뜬 것들이다. 불안 덕분이라는 말을 써야 할까. 내가 열었던 전시. 나의 직업. 어렵사리 얻은 첫 집. 모든 것들이 뜻 모를 불안해서 출발했다.


아무래도 성격 탓이다. MBTI 같은 것을 믿고 싶지 않으나 자꾸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특히 일터에서는 MBTI에 들어맞는 일처리 유형 같은 게 있다. 어떤 이는 대단히 계획적으로 일하고 어떤 이는 동물적인 감각에 따라 일한다. 아주 큰 행사를 감독할 때에도 누군가는 초연하지만 어떤 이는 불안에 떨 것이다. 나는 일을 할 때면 걱정이 많은 편이었다. 이건 내 오래된 단점이다. 걱정을 하느라 시간을 다 보내고 마감을 앞두고서야 허겁지겁 일을 처리하는 스타일이었다. 매번 가까스로 기한을 맞춰 일을 끝냈지만 돌이키면 한숨이 나왔다. 걱정할 시간에 진작 일했다면 더 좋은 결과를 만들었을 텐데.


물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도 있다. 이를 테면 어렵게 준비한 행사에 참가자들이 아무도 오지 않을 때. 미리 홍보하고 사전에 참석조사를 진행하였더라도 때로는 마음처럼 되지 않는 행사가 있다. 그럴 때면 텅 빈 좌석들을 두고 행사장을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다. 대신 눈을 질끈 감는다. 몇 시간이 지나서 늦은 저녁이 되고 내가 침대에 눕는 장면을 떠올린다. 잠에 들 즈음에는 모든 일들이 상관없어질 것이다. 가끔은 이를 악물고 어떻게든 해결방법을 찾는다. 참석하기로 응답한 이들에게 전화를 돌리거나 행사 방식을 급히 변경할 수도 있다. 다만 그날 하루는 기진맥진할 것이다. 현장에서 일을 할 때면 수명이 줄어드는 게 느껴진다.


현장이 체질이라는 이들은 어떤 종류의 사람일까. 그들께 깊은 존경을 보낸다.


언젠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던 날이다. 목사님은 종교에서 중요시 여기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건 사건과 자기자신을 분리하는 태도였다. 내게 벌어진 일들에 너무 깊이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를 둘러싼 사건들은 대부분 내 뜻과는 무관하게 벌어지는 일들이었다. 어쩌면 하나의 사건이 생기는 데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손길을 거쳐왔을 것이다. 혼자 벌어지는 일은 없다. 그러나 종종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자기 탓을 한다. 오직 내 잘못이라는 자기 비관은 도리어 교만한 마음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큰 실수를 하더라도 벌어진 사건과 그 앞에 마주선 자신을 고요하게 분리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우리는 에워싼 무수한 말들과 표정들 앞에서도 결국 나는 나일 따름이다.


당연하게도 생각을 글로 적는 것과 마음대로 살아가는 일은 다르다. 요새는 한 발자국 뒤에서 나를 바라보는 연습을 한다.


요즈음에는 올해의 끝을 생각하면 불안했다. 한 해가 끝난다는 것이 거대한 데드라인 같았다. 12월의 말일을 기한으로 하는 사업들. 연말연초에 받게 될 각종 평가들. 아홉수가 되는 내 나이. 별반 다를 것 없을 나의 통장 잔액. 시간을 되돌리는 상상은 이제 습관이 되었다. 자꾸만 한 달 전의, 수 년 전의 나에게로 돌아가 있었다. 더 열심히 살았을 텐데. 이윽고 막상 시간이 되돌아가더라도 바뀌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뒤따른다. 만약 더 나은 선택을 한다면 오늘과 다른 삶이었을까. 실은 그 쪽도 썩 내키지 않는다. 오늘에는 오늘의 불안만큼 오늘의 행복이 있기 때문이다. 가진 돈을 모두 털어내고 들어온 집과 수백 번쯤 다퉜을 애인과의 저녁식사가 부디 사라지지 않기를 나는 바란다.


어쩌면 불안은 흘러가는 시간을 바라보는 마음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마음이 어딘가 서글픔을 닮아 있고 오지 않은 시간에 대해서는 기대나 두려움을 느낀다면, 지금 여기에서 내 눈앞의 시간을 바라보는 마음이 불안 아닐까. 매번 깊은 불안에 시달릴 때는 잠시 시간이 멈추기를 바랬다. 숨을 가다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 기분에 따라 걸음을 바꾸는 시간은 없다.


결국 불안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 이상한 결론이 된 것 같지만 별 수 없다. 우린 묵묵히, 차근차근 살아갈 뿐이다. 이를 테면 어느새 겨울이었고 그래서 밤이 빨랐다. 어두운 하늘을 볼 때면 난 이상한 불안감을 느꼈다. 이건 내가 이른 저녁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삶의 태도가 되는 불안에게 나는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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