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을 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도서관의 향과 소리를 좋아한다. 헌책방에 가면 비스무리한 냄새가 있지만, 아무 책에서나 맡을 수 있는 향이 아니다. 도서관에 가야만 맡을 수 있는 특유의 책향이 있다. 책에 담긴 내용과 함께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그 향은 진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맡아봤을 세월에 담긴 향이다.
게다가, 고요함 속에서 책장이 넘겨지는 소리를 좋아한다. 다른 이가 책을 읽으며 일정한 간격을 두고 한 장 한 장 넘겨져 나는 소리를 좋아한다. 책에 빠져 현실을 망각한 채 책을 읽는 모습을 보면 왠지 더 사랑스럽다.
대학시절 영화 <러브레터>에서 나온 도서관 장면을 기대하며 이쁜 사서가 있는 창가에 앉아 책을 읽어보기도 하고, 읽지도 않을 크고 두꺼운 외국 원서를 빌리기도 했었다. 여러 번 찾아가니 인사 정도는 나누는 사이가 되었지만 눈길 한번 받지 못했다. 참고로 다른 인연을 도서관과 관련된 의외의 곳에서 만났다.
옛 생각에 기회가 되어 도서관 봉사활동을 신청했다. 도서관에는 자주 가봤지만, 실제로 일해 보니 책을 어떻게 분류하고, 진열하고, 그리고 상호대차는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지 알게 되었다.
실은,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일할 게 별로 없어 힘들지 않아 보였다. 봉사활동도 마찬가지로 할 일이 많이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첫날부터 끊임없이 오고 가는 사람들로 붐볐다. 책이 쌓이면 정리를 하고, 정리를 하는 동안 다시 책이 쌓이고 그러면 다시 정리를 했다. 책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잘 알지 못해, 한번 다녀오면 더 많은 책이 쌓여 있을 때도 있었다. 이것도 며칠 해보니 익숙해져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지만 아직까지도 분류기호를 보고 할 때가 많았다.
봉사활동을 마치고 그냥 오는 것이 멋쩍어 책 몇 권을 들고나온다.(또 있어 보이는 척한다.) 하지만 도서관에서 살펴봤을 때는 꽤 재미있다가도 집에만 오면 책에 흥미를 잃는다. 그렇게 벌써 몇 권의 책이 쌓여 있다. 참고로 내가 봉사한 도서관에도 이쁜 사서가 있다. 물론 거짓말이다. 있었으면 좋았겠다 라고 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