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집도, 누구의 집도 아닌 그곳의 공허함

push: 누가 집값을 올리는가 다큐멘터리를 보고.

by 희희

2030년에 나는 기성세대에 속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2030년의 기성세대가 법의 뒤에서 무기력하게 사회의 흐름에 이끌려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옛 기성세대가 모두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변화 시도를 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은 이제 효력을 다했다. 나는 이번 다큐를 보면서, 다수를 향한 소수의 지배가 매우 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갈수록 모두를 위해야 하는 법이 소수만의 ‘정의’로 정의되고 있다. 그렇다면 현존하는 블랙스톤과 같은 사모펀드의 공격에 어떻게 맞서야 하며, 그 대응이 한시적이지 않고 오래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영원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나는 모두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살 수 있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회를 위해서, 곱추와 앉은뱅이가 되지 않으면서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나만의 방법을 제시해보려 한다. ‘① 현재 상황을 냉철하고, 통찰력 있게 분석하기 ② 연대하기’이다.


우선 ‘① 현재 상황을 냉철하고, 통찰력 있게 분석하기’이다. 현재 상황을 명확히 알아야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문제의 거대한 흐름을 파악해야 하고, 더 많은 사람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심각하지만, 한국에서 내가 느낀 문제는 이러하다. 재개발의 피해가 갈수록 극심해지고 있다. 오직 ‘가진 자’들만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기존 주민들을 위한 이주 정책이 미흡한 것은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재개발이 이루어진 최신 아파트에 입주하는 사람들도 모두 안정적이지는 않다. 소위 금수저가 아니라 분양 당첨을 통해 입주한 사람들은 하루가 다르게 변동하는 집값에 마음을 졸여야 하기 때문이다. 입주할 때 보태었던 대출금과 이자를 갚아야 하니 말이다. 그럼 입주자들도, 아무런 걱정 없이 ‘온전한 나의 집’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면 ‘투자 목적으로’, 실제로 ‘거주하지 않은 채’ 법적으로 주인인 사람들의 경우는 어떨까. 가장 기본적으로 그들은 그 집에서 살지 않는다. 즉 형식적인 집에 불과하다. 그들에게는 집이 일종의 투자자산을 위한 도구로 여겨질 뿐이다. 그렇다면 그 집은 누구의 것이며, 진정으로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PUSH: 누가 집값을 올리는가’라는 다큐 영화를 보면서, ‘집’은 내 집도, 누구의 집도 아닌 그저 공허함이 자리한 장소로 정의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며 마음이 착잡해졌다. 그래도 이런 사실을 회피하거나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직시해야 한다. 그것만이 1%에게 반기를 들 수 있는 방법이다.


나는 ② 연대하기가 불공정한 사회의 피해자들을 도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만큼 가장 어렵고, 어쩌면 누군가는 나를 이상주의자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다큐에서 유엔 보좌관이 오랜 시간동안 준비해온 연설을 했을 때, 어수선한 회의장 분위기가 매우 충격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내 생각이 헛된 희망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아직 단념하기는 이르다고 생각한다.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사회적 약자를 위해 정책을 마련하려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하며 이것이 이어질 때 모두가 꿈꾸는 그 날은 올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모두가 건물주일 수 있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다. 서류상의 건물주가 아니라 걱정 없이 휴식을 취할 수 각자의 실질적 의미의 공간이 생겼으면 좋겠다. 지금의 상황으로는 모두가 홈리스인 상태이지만, 끊임없는 노력이 있다면 그 공허함이 채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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