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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Aug 31. 2023

어디쯤

?

  “어째서 그럽니까? 어째서 자신을 내던집니까?”

  “계속해서 가지고 있기 무겁다고 해서 어디 둘 곳을 찾아서 자신도 모르게 잠시 내려두는 것을 시작으로, 그것의 대가로, 불어난 이자와 같이 불현 듯 문을 두드릴 겁니다. 눈앞에 나도 모르는 오래된 빚을 한꺼번에 떠안게 됐을 때, 그게 누구의 탓도 아니라 지금, 자신처럼 느껴지지 않는 자신이 사실은 내내 마음대로 내내 저지른 시간으로부터 새어나와 온 집을 날려버린 거라는 걸 더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서야 남의 손으로 얼굴을 얻어맞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아무데나 두었다는 걸, 그보다 둘 곳은 애초에 없었으며 들고 있지 않았으니 마치 시간을 날려버린 것 같이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     

  “말로 덜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몹시 오만했군요. 말로 사람을 구슬리려 했다면 정말이지 잘못 생각한 겁니다.”     

  “제가 그랬나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꽤 아무 말이나 하시네요? 말을 쉽게 뱉어서는 안 됩니다. 옳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도, 실체도, 시간도, 과거와 미래도, 이성 역시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할 수 있는 말이 없지 않습니까?”     

  “그보다 말하지 않을 수 없을 뿐이겠지요.”     

  “말을 하지 않는다면?”     

  “생각을 담아 둘 줄 알아야 합니다. 차라리 그게 떠올랐다 흘러가도록, 다음 날 아침에도 자신의 곁에 남아있지 않도록, 거기에 애정을 쏟지 않도록 애를 쓰는 편이 낫겠습니다. 상상할 수 있는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다면 그는 돌아오고 싶지 않을 겁니다. 그가 돌아오지 않는 건 비통한 일은 아닐지 모르겠으나 쏟아낸 말은 자신을 해칠 수 있습니다.”     

  “결국 거리를 둘 수밖에 없군요? 누구와도 가까워질 수는 없는 거군요. 나는 나 자신과 같이 여겨왔습니다.”     

  “그건 필요할 때에만 그렇게 했을 겁니다. 필요하지 않을 때면 자신처럼 용서하는 일은 조금도 없었을 겁니다.”     

  “내가 그렇게 이기적입니까?”     

  “말로서 깊은 흐름을 막긴 합니다. 스스로 흐름을 방해합니다. 수위는 점점 높아지는데 당신은 그 자리에 서서 울상인 얼굴로 서서 흐름이 자신을 빗겨가도록 합니다.”     

  “저는 적어도 한 자리에 버티고 서서 남을 탓하진 않아요. 물살이 차갑습니다. 점점 거세게 빨라집니다.”     

  “그게 흐르고 있다는 실감입니다. 우리는 그 흐름 속에 잠시만 살아있습니다. 내내 떠내려간다고 울부짖을 순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말하기 시작하자 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떠내려갈 수 있습니다. 물살을 마음껏 느끼면서, 실감하면서, 살아있음에 조용하고 친숙한 태도로 열중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조언하는 겁니까? 뭘 아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나보죠? 그렇게 열심히 할 필요 없어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까?”     

  “도움 받을 게 뭐 있나요, 누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있나요?”     

  “그럼요, 혼자 살아가라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되도록이면 혼자 살아가려는 사람을 압니다. 자신을 책임지는 사람을 압니다. 그 사람은 행복해 보이지 않았어요.”     

  “그럼 누가 행복하게 보입니까?”     

  “모르겠습니다.”     

  “왜 행복하게 보여야 합니까?”     

  “언제 이렇게 행복이 어려워졌죠? 이제 그 단어도 신물이 납니다. 약간 역겹게도 느껴집니다.”     

  “행복한 사람은 거짓됐다고 보세요?”     

  “아닙니다. 행복했던 때가 있습니다. 빤한 말이 눈물겨운 진심으로 터져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과장이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때 나는 혼자였고 자유로웠습니다.”     

  “완전히 혼자였습니까?”     

  “아닙니다. 대도시 안에서, 군중 속에서, 어느 때보다 나를 친밀하게 여기는 얼마 전까지 모르던 사람들 사이에서, 여러 사람을 뜻 없이 이끌리는 대로 사랑하는 채였습니다. 나는 갈 곳이 있었습니다. 피난처라 여기는 곳이, 더 바랄 것 없이 만족스러운 사람이 있는 장소가 있었습니다.”     

  “그때 자신을 내려놓았습니까?”     

  “짐을 푼 것 같은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여태껏 힘겹게 메고 온 짐을 잠시 내려둘 곳을 찾자 어린 시절부터 내내 따라다니던 멀미가 처음으로 사라졌습니다. 나는 매일이 신선하고 놀라웠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새롭게 보여 떠밀려오는 자극과 감각에 기분 좋게 피로한 채로 둥둥 떠다니는 듯했고, 동시에 제대로 땅에 발을 딛고 있었습니다. 나는 진짜로 걸었고, 진짜로 잠에 들었다가 제대로 깨어났습니다. 생각 없이 웃었고, 자신이 어른이자 아이로, 남자이자 여자로, 경계 없이 모든 것이 될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랬군요.”     

  “제가 그래서 그 뒤로, 더는 그렇게 느낄 수 없을 때부터 흐름을 느끼지 못한 게 아닐까요?”     

  “그럼 거기에서 나올 때, 짐을 제대로 싸서 나왔습니까? 다시 더해진 짐을 얹어 풀었던 짐을 제대로 싸서 나왔습니까?”     

  “나는 울타리 밖으로 울면서 나갔습니다. 나가고 싶기도 나가고 싶지 않기도 했습니다. 영영 잃고 말았다고, 무슨 일을 저지르는지 모르겠지만 대단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고 생각하며 산산이 파괴한 쾌감에 머리가 터져버린 것 같았습니다.”     

  “과격한 말을 쓰시네요. 그래서?”     

  “그래서………, 기억이 잘 나지 않죠. 짐을 제대로 싸는 건 신경을 못 썼습니다.”     

  “자신을 거기에 약간 떨어트려 놓고 왔군요?”     

  “………, 그게 나였군요.”     

  “별건 아닐 겁니다.”     

  “소중한 반지를 잃어버린 적 있습니다. 소중한 강아지를 잃은 적이 있어요.”     

  “그것들이 찾아와 문을 두드립니까?”     

  “아닙니다. 여전히 다정한 인상을 하고서 멀리에서 쓸쓸한 눈길로 나를 볼 뿐입니다.”     

  “네, 너무 미련스러운 말은 하지 마세요. 보는 사람도 마음이 답답해질 겁니다. 애초에 점점 모든 것을 잃게 될 운명이었습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사라질 운명에 처한 모두이자 모든 것. 그러나 이 흐름만은 진짜입니다.”      

  “짐을 챙겨가지고 나오겠습니다. 이번엔, 제대로.”     

  “아니요, 나는 같이 가지 않습니다. 누구도 같이 가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같이 걸을 순 없을까요?”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나 짐을 잘 챙겨서 떠나세요. 가여운 강아지를 긴 끈으로 매달고 질질 끌고 가지 않도록. 무거운 쪽 끈을 잘라낸다고 해서 그리워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그 강아지를 당신의 소유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서로 의존하며 살아가는 것은 추합니까?”     

  “나약한 사람은 모여 살아가겠죠. 내가 정답을 알고 있을 거라고 의존하지 마세요. 갑자기 이 목소리에 구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할까봐 우려스럽네요.”     

  “알겠습니다.”     

  “길을 떠나는 것에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     

  “그런데, 그거 아시죠? 저보다 훨씬 많이 떠드셨어요. 저보다 더 외로워 보입니다.”     

  “…….”     

  “가세요, 너무 쓸쓸해 마세요. 쓸쓸해질까 두려워서, 신발과 바지 밑단이 젖을까 두려워서 언제까지고 비를 피해 숨어있기만 하지 마세요.”     

  “우리는 닮았군요.”     

  “우리는 서로를 걱정하느라 잔소리가 많네요.”     

  “……내가 너라는 걸 알고 있었잖아.”     

  “먼저 울타리를 부순 게 너야. 너라고 나를 몰랐나?”


  나는 이 집에 살고 있는 유령 같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악몽을 꾼다. 외로운 꿈의 감각에 밤새 젖은 머리는 지끈거린다. 마치 손상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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