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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Sep 01. 2023

09-01

일기

  어제는 얼마나 어색하고 집을 잃은 것 같이 의기소침하고 아무 일도 없는데 당황스럽고 결국 바보 같았는지 모릅니다. 두 시간 넘게 기다려서는 두 시간도 못 마시고 집에 왔습니다. 이기지 못하는 만큼 술을 마셔 식은땀을 흐르고 어지러워 움직이지 못하다 당장이라도 게워낼 것 같은 속으로 숨듯이 터덜터덜 걸으면서 어서 집에 도착해 씻고 침대에 누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집을 잃은 것 같고, 어쩌다 서울에 있는지 갑자기 모르겠어 이제는 그만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을 했지만 아직은 여기가 집입니다. 따져보자면 정말이지 말도 못하게 부끄럽습니다. 나는 울려는 건 전혀 아니었고 술 취한 몸에 바로 내리 꽂는 에어컨 바람에 몸이 차갑게 식어 몸이 떨려 목소리조차 떤 것이었는데, 나를 보는 그 눈이 혹시 술 취해서 울려는 거 아닐까 겁을 먹은 표정이라 순식간에 거기 몰입해 갑자기 울 뻔했습니다. 그렇게 말을 이어가면서도 어이가 없었습니다. 왜 상황이 이렇게 돌아갈까, 여긴 왜 이렇게 추울까. 그러다 어지러증에 불이 붙은 걸 발견하고는 화장실로 피신했습니다. 빙빙 도는 화장실에서 겨우 나와 화장실 문 앞의 컴컴한 계단에 주저 앉아 눈을 감고 식은땀을 흘리면서, 같이 술 먹다 화장실 가서 이렇게 안 오는 것도 기분이 희한하겠다. 갑자기 화장실에 가서 이렇게 안 온다고? 황당하겠지? 그렇지만 몸을 아예 움직일 수가 없는데? 그 사람 앞에 가서 이렇게 눈 감고 벽에 기대고 식은땀만 십분 넘게 줄줄 흘릴 수도 없고, 이건 어쩔 수 없다. 나도 모르겠다. 그렇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빨리 괜찮아지면 좋겠다, 어서 괜찮아져야 되는데. 그러다 윗층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나 도망치듯 건물을 빠져나왔습니다. 정말이지 몸이 제멋대로 휘청거려 벽을 짚고 얼마 가지 못해 모퉁이 벽에 기대고 주저앉았습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가운데 또 눈을 감고 식은땀을 빙빙 흘려댔습니다. 돌아가서 집에 간다고라도 말을 하고 싶은데, 한 걸음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몸을 일으키기도 무리, 눈을 뜨는 것도 무리였습니다. 나는 그 사람을 만났을 때 사실 전에도 몸이 이렇게 됐었습니다. 술을 너무 빨리 마시다 몸이 위급해져서 그때도 최대한 꾹꾹 참으며 마무리는 멀쩡한 척 잘 하고 헤어져 똑바로 걷는 데 옷 힘을 쏟다 시야에서 확실히 벗어났을 만큼 멀어졌을 때 바로 건물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아 눈을 감고 한참을 있었습니다. 차갑고 그나마 안심됐고 그러나 쫓기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땐 겨울이었고, 이번이 세 번째 만남이었습니다. 이제는 둘이 만나는 일이 없을 겁니다. 진상을 부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누군가 필요한 날 만나 술 마실 기회는 없을 겁니다. 스스로 날려버렸습니다. 또, 그렇다는 건 그다지 올바른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이제 나는 나이도 많이 들어 나약하게 굴면 진상을 부리는 꼴이 됩니다. 또 젊음을 잃었을 땐 그저 어색하고 재미없는 인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아침에 떠올려보니 어제 만나서 술 취하기 전에 말을 그렇게 더듬던 것, 이상한 습관이 어디서 튀어나와 같은 단어를 자꾸 문장에 끼워 넣으며 말을 버벅대던 것, 정신없어 하던 헤매는 것, 밥 먹으면서 식은땀을 줄줄 흘렸던 것, 눈이 아마 절박하고 비어 있었을 것 그런 게 오히려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게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또 오래간만에 누군가와 단 둘이 만나 술을 마신 겁니다. 일 년에 그건 몇 번 없는 일이 됐습니다. 녹이 슬고 말았습니다. 너무 부끄러워 뻔뻔하게, 어쩔 수 없지! 이렇게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어쩌겠어? 부끄럽지만... 그리고 그럴 땐 사람을 만나는 게 오히려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 사람은 정말이지 변하지 않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구나. 이럴때만 누군가 필요해지지? 이럴때만 실감이 나지? 사실은 얼마나 나약한지,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어하는지, 괜찮을 때 큰소리 치지만 이렇게도 쉽게 똑바로 생각하지 못하는지. 이렇게 또 피해를 주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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