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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Sep 05. 2023

일기

20230905

  그러니까 나는 지금 쓰레기장입니다. 뭘 해야 될지 모르겠고, 지금 내가 써내려가는 건 모두 쓸모 없습니다. 뭘 해야될지 모르겠다보니 뭘 해야될지 모르는 내내, 뭐가 좋을지 모르겠던 내내 쌓여있던 말들을 아무렇게나 쓰레기 봉지에 담아 집 밖으로 부지런히 내다 놓는 중입니다. 어디에 써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여기 와서 이러고 있는 건 맞을까요? 나는 바깥 사정을 모릅니다. 3년은 긴 시간입니다. 내가 3년 간 그렇게 바뀌었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에서야 느낌이 조금 왔습니다. 3년이란 얼마나 긴 시간인가. 

  그러나 내다 버리기로 시작한 건 다행입니다. 우선은 내다 버립니다. 사태 파악을 다 할 순 없습니다.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어디서 나온건지도 모르겠는 뭔가가 어느덧 바닥을 뒤덮고 쌓이기 시작한데다 불어나고 있으니 우선은 봉지에 담아 집 밖으로 내다 버리는 겁니다. 제가 숨이 막힌다는 건 이런 거예요. 아무 일도 잘못되지 않았는데 끔찍이 잘못된 기분이 든다는 겁니다. 그럴 때 저는 평온한 얼굴로 집 가까운 마트나, 동네를 거닐고 있습니다. 매우 정신이 없이 머릿속이 복잡하게 꼬여 있는데도 어느 때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흐르는 날들입니다. 새로운 일이란 건 일어나기 어려워요. 그래서 머릿속으로 새로운 일을 찾아냅니다. 그간 몰랐으나 부당했던 것이나 지나간 일 중에서 그땐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제 알 것 같은, 내가 왜 이 지경이 됐는지 이제야 알 것 같은 깨달아 봐야 속만 좁아 터져 나가는, 점점 마음이 여유로운 사람이 되기에는 글러먹는 일들을 나는 새로 만들어 냅니다. 

  그러니 읽을 만한 글을 쓸 수 있는 날은 멀었습니다. 쓰지 않는다면 영영 쓰레기장이 될 겁니다. 그래서 다 뱉어내고 토한 다음엔 뭘 쓸 수 있을지, 과연 그렇긴 할지 그것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뭘 쓸 수 있다고 진짜로 믿었던 적은 있나? 처음과 끝이 있는 하나의 이야기, 기록하고 보관할 만한 하나의 글, 끝을 맺은 완성품 그게 정말 가지고 싶긴 한가? 이렇게 스스로 물었더니 정말 그렇다고 합니다. 허구한 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건 그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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