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서 유서에 관한 글을 봤다. 그 글을 보다 보니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 있었다. '내가 유서를 쓰게 된다면 내 유서에는 어떤 내용들이 들어갈까?' 내가 죽기 직전이라고 가정해보고 내 삶을 뒤돌아보며 유서를 쓴다면 현재 내가 놓치고 있는 삶의 일부분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배경은 지금 내 현재 상황이랑 똑같다고 가정했고, 죽음은 치유가 불가능한 몹쓸 병으로 가정했으며 사망일은 내일로 잡았다.
첫 문장은 그동안 후회가 많았던 내 삶을 덤덤히 떠올렸다. 죽는 순간까지 후회하는 나란 녀석.. 이 부분에서는 내 욕심이 많이 드러나는 것 같았다. 내가 더 열심히 살았어도 분명 후회는 존재했을 것이다. 이 후회에는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구체적인 후회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좀 더 열심히 살 걸' 따위의 두리뭉실한 후회였다. 눈물이 나 억울함보다는 씁쓸한 비웃음이 지어지는 구절들로 내 유서의 시작을 올렸다.
그다음은 먼저 죽는 것에 대해 가족에게 미안함을 표시했다. 다행히 아내님이나 자식들은 없기에 그들에 대한 미안함은 표시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남은 가족들에게는 큰 미안함이 뒤따랐다. 일종의 천명(天命)으로 죽는다고 가정을 했지만 그럼에도 내 죽음으로 인해 감정적 불안이 생겨날 그들에게 미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에 대한 사죄로써 내가 사회생활하며 모아 놓은 아주 약간의 돈을 가족에게 전부 전달하는 것으로 그 미안함을 약간이나마 씻고자 했다. 고작 이렇게 밖에 사죄를 표시하지 못하는 나 자신의 한심함에 웃음이 났지만 대작인 사과가 있다면 졸작인 사과도 있는 법이라며 애써 자신을 위안시켰다.
그다음으로 써 내려갈 내용들은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당장 내일 죽는다면 내가 생각했던 것을 못 이뤄놨을 것이기에 유서에는 내가 어떤 일을 이루고 싶었는지,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 준비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내용을 적혀 있었다. 주로 영향력을 넓혀서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싶다는 내용이 많았으며 일부에는 '나도 이쁘고 착하고 똑똑한 여성분이랑 결혼해서 알콩달콩 살고 싶었다'는 솔로의 처절한 갈망이 새겨진 문장도 같이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실제 사후 세계가 있다면 뭘 하고 싶은지를 적으며 내 유서는 끝이 났다. 바보 같겠지만 일단 만화에서처럼 내 몸이 막 전투형으로 변하는지를 확인해 볼 것 같다. 오른팔이 쭉 늘어난다던가, 하늘을 날아다닌다던가 등등.. 그 이상은 너무 유치하기에 적지 않기로 했다. 망각의 물이란 것도 있는 것 같던데 목마르면 그 물을 마시기보다는 입술과 혀만 살짝 적시면서 걸어가 볼까도 생각 중이다. 지금 사는 것과 비슷한 시기에 다시 탄생하면 다음 생에서는 초 부자 동네에서 발가락으로 타자를 치고 있지 않을까?
현재까지 그렇게 색채 넘치는 삶을 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었지만 생각보다 마지막 작성하는 글 까지 저렇게 무채색일 줄은 몰랐었다. 좀 더 많은 사람과 부대껴 살며 더 많은 경험을 하면 내 유서가 과연 여러 색채를 띄었을까? 지금부터라도 종교를 열심히 다니면 좀 더 밝은 색채가 나올까? 사랑을 하면? 여행을 많이 다니면? 앞서 말한 주제들을 깊게 느낄 수 있다면 유서가 정말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섣불리 하겠다며 결정하지도 못하는 나 자신이 있었다. 저것들을 했음에도 내 유언에 별 다른 색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무채색으로 유지되기는커녕 그나마 가지고 있는 색마저 희미하게 바래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직 30이기에, 어쩌면 내 삶의 밑바탕만 그려져 있기에 내 삶이 무채색을 띠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 그림은 검은색으로 밑바탕을 그리고 그 위에 색깔을 채워나가지 않는가? 내 삶도 지금은 스케치 단계일지도 모른다. 단지 많은 색을 담기 위한 여정 중인 것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색채를 채우는 것이 조금 늦는다는 생각은 그들보다 내 밑그림을 세세하게 그리고 있는 중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세세하고 꼼꼼하게 그려진 밑바탕인 만큼 앞으로 칠해질 색채들은 더 다양하고 다정한 색채로 가득 채워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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