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한탄 끝에 옮긴 아파트는 의외로 마음에 쏙 들었다. 주변에는 온통 오래되고 촌스러운 건물들 뿐이었지만 지하철이 가깝고 아이들이 많았다. 조용하고 투박할지언정 정이 배인 동네였고, 정이라는 명목으로 서로를 옭아매기에는 서먹한 분위기였다. 신경질이 날 정도로 좁은 도보를 쭉 내려가면 강변이 나왔다. 한번 와본적은 있으나 설마 여기서 살게 될 줄은 모르고 기억에서 흘려 보낸 곳. 흉하게 낀 녹조와 악취로 남아있던 그곳은 곧 내가 사랑하는 장소가 되었다. 나는 강변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는데, 대부분 돌이킬 수 없는 지난 날들을 잊으려는 마음에서였다. 강변으로 향하면 어김없이 짙은 풀 냄새가 났다. 거칠다고 느껴질 정도의 풀내음이. 물이 얕은 구간에서는 악취가 났지만 조금만 깊숙이 들어가면 비린 강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거기서 이어폰을 꽂고 고개를 푹 떨군 채 걷고 있으면 기분은 나아지거나 엉망이 되거나 둘 중 하나였다.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는 시끄러운 아이돌 노래나 잔잔한 인디 가수의 목소리. 강은 늘 비슷한 용모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 기분은 그 날 어떤 음악을 듣느냐에 달려 있었다. 강은 호수처럼 고여있지도 않고 바다처럼 광활히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느리게 흘러갈뿐이라는 사실이 만족스러웠다. 한 자리에 머무는 것도 모험을 떠나는 것도 두려워 하는 나는 그저 천천히 흐르는 강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덧붙여 느슨한 자연의 대화에서도 쉬어갈 수 있었고. 세상의 소리를 100까지 매길 수 있다면 강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은 30 정도로 가늠할 수 있었다. 모든 감각이 날카롭게 곤두서 있는 나로서는 집 앞에 강이 있다는 사실이 축복이나 다름없었다. 강은 꼭 조용하면서 속 깊은 친구 같았다. 유리잔에 비쳐도 부끄럽지 않은 표정을 짓는 친구들. 한바탕 속앓이를 끝내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강인한 존재들. 내가 어떤 고민을 들고 가더라도 강은 위로도 비난도 하지 않은 채 내 옆에 서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것 때문에 매일같이 강으로 향했다.
복잡하지만 잘 다듬어진 서울에서 때때로 강을 떠올린다. 서울에도 한강이 있고 청계천이 있고 양재천이 있다지만 누군가 강 하고 내뱉으면 여전히 유천교가 떠오를 것이다. 스산한 버드나무와 외롭게 빛나는 공장의 굴뚝이 보이는 강변이 그리울 것이다. 그러다 줄곧 그리워 했던 강변으로 다시 내려갔을 때, 생각보다 볼품없는 풍경을 발견할 테다. 여전한 강과 늙어가는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