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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레씨 Sep 20. 2022

모기의 입을 지나면 모두 우주의 아이

마루바닥에 발바닥이 닿는 것만으로 섬칫한 감각에 몸부림치던 아이는 예민한 어른으로 자랐다. 예민한 어른이 되어 뻣뻣한 휴지에 손가락을 스치는게 싫어 살금살금 테이블을 닦고 있다. 어른이 된 아이는, 그러니까 선은 일상의 절반을 차지하는 고통을 피해 몸을 웅크리느라 늘 피로했다. 선은 조금이라도 감각을 뭉뚱그리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니 종종 흐리멍텅해졌는데, 가끔은 어리석은 얼굴 위로 날카로운 빛이 감돌기도 했다. 그럴 때면 선은 아주 무서운 것들에 대해 골몰하느라 바깥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남들과 밥을 먹다가도, 친구들사이에서 왁자지껄 웃음을 터트리다가도 내면으로 파고들었다. 입술을 앙 다물고 주먹을 말아쥐고 있는 선의 머리속은 온통 섬뜩한 그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를테면, 모기의 입 안에서 으스러지는 혈관세포의 일그러진 표정. 목으로 넘어가는 세포의 꿈틀거림을 생생히 느끼며 비릿하게 미소짓는 모기의 입. 선은 이렇게 즐겁고 활기찬 인간의 삶도 조만간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이 사라질 것임을 깨달았다. 친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맨손으로 모기를 잡아 터트릴 때, 그래서 모기가 먹었던 혈관세포들도 함께 으스러질 때. 선은 느닷없이 허옇게 질려 어쩔줄을 모른다. 단 한순간의 공백도 없이 이루어지는 삶과 죽음의 고공행진은 얼마나 가지런한가. 언젠가 자신이 모기도 혈관세포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선은 자신의 나이가 궁금하다. 두려움에 질려 있던 안면근육은 느슨해지고 평화가 스르륵 스며든다. 머지 않아 육체가 바스러져 한 때 자신이었던 것이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난다면. 우리 모두 모기의 입과 하나 된다면. 우리는 모두 우주의 아이다. 살아가는 것들은 모두 어른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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