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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숙 Sep 04. 2023

차순이 16

양희의 눈물

언니와 헤어져 간단한 생필품 몇 개를 사고 기숙사로 왔다. 귀소보고를 하고 배차표를 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자신의 이름이 없다. 사감실에는 김사감과 윤사감이 드라마를 보며 빵과 과일을 먹고 있었다. 아마도 어느 안내양이 외출했다가 돌아오면서 사다 준 것 일 것이다.


"저 내일 배차가 빠진 것 같아요"

TV에 시선을 고정하고 김사감이 말했다.

"내일 하루 더 쉬어, 기사들이 너하고 일 못하겠다고 너 배차 넣지 말래, 그리고 내일은 외출금지야"

양희는 순간 시간이 멈추는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배차거부를 당할 만큼 잘못한 일이 없다. 시간이 아직6시 전이니 잘 말하면 수정해줄지도 모른다.  

"저 이달도 며칠 안 남았는데 일을 좀더 하게해주세요.이달에 막아야 할 금액이 많아요"

사감은 눈길도 안주고 오늘 배차는 이미 끝났으니 들어가라고만 한다. 머뭇거리는 양희를보고 김사감이 또 한마디 한다.

"기사들이 너하고 일을 못하겠단다. 배차가 왜 빠졌는지 그렇게 눈치가 없니?"

양희는 자존심도 상하고 일을 못해서 펑크날 돈 때문에 눈물도 나려고 한다. 자존심이라도 회복해보려고 참았던 말들을 쏟아놓았다.

"제가 뭘 잘못했나요? 삥땅 안 준다고 횡포를 부리는 건 기사님들인데 왜 제가 배차거부를 당해야 하냐고요? 윤사감님 정말 모르세요? 기사님들이 제가 삥땅 안 준다고 저 거부하는 것을요? 왜 알면서 모른 체하세요? 지난번 그만둔 인자언니도 기사들이 뺑뺑이 돌려센타 당하고 그만 둔 거라면서요? 왜 삥땅 안 하고 정직한 사람들이 밀려나야 되죠?"


TV를 보고 외면하고 있던 윤사감이 고개를 돌리고 양희를 쳐다보고 차갑게 말했다.

"들어가, 시끄럽게 하지 말고, 너 싫다는 기사들 빼다 보니 넣을 데가 없었어, 한 달에 20 일 근무는 채워줄 테니까 내일은 그냥 쉬어"


안내양의 기본 근무일은 20 일이다. 추가 근무가 없으면 월급도 기본급만 나온다. 기본급 20 만원, 세금 떼고 밥값 떼면 16만 원 정도 남는다. 그런데 5일만 더 배차를 받아 일하면 30 만원을 훌쩍 넘는다. 안내양들은 그 5일을 더 배차받기 위해 사감실에 슬쩍슬쩍 빵이나 과일이 든 검은 봉지를 갔다 놓곤 한다. 2~3일 휴가를 얻어 집에라도 다녀올 때는 아예 떡을 한말씩 해다 바치는 안내양도 있다. 양희는 그것마저도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면 다 무마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사감들이 먹고 있는 저 빵과 과일을 사다 준 그 안내양에게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긴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사감실에 더 매달려봐야 다음번 배차시에 불이익만 더키 울 것 같아 방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때 금희언니가 들어오고 있었다. 풀 죽은 양희를 보고 멈칫하던 언니는  -좀 있다 샤워실로 와-라고 살짝 말하고 사감실로 귀소보고를 하러 갔다.  -금희왔니?- 하며 톤이 올라간 윤사감의 소리가 양희  뒤로 따라왔다. 윤사감이 나이는 많아도 금희언니가 근무년수는 3년이나 더 많다. 그래도 자신에게 대하는 것과 너무 차이가 다.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먼저 입사 했다는 이유만으로 저럴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스쳤다.


샤워실로 가니 금희언니가 먼저 와 있었다. 언니가 양치질을 하며 옆으로 오라고 눈짓을 했다.

"왜 표정이 안 좋아?무슨일 있었어?"

"내일 배차가 빠졌어요. 기사들이 저랑 일하기 싫다고 했대요."

양희는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금희언니는 칫솔질하던 손을 잠시 멈추고 바라보았다. 그러나 딱히 좋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 하고  다시 칫솔질을 했다.

"내일 첫차라서 일찍 자야 되거든, 너도 일단 오늘은 자고 방법을 생각해 보자."

언니는 마치 양희를 피하기라도 하듯이 서둘러 세수하고 발만 닦고 들어갔다. 사감들하고 친한 금희언니가 한마디만 해주면 배차조정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는데, 또 빗나간 자신의 생각에 겨우 만난 오아시스가 마실수 없는 독수가 되어 자신의 갈증을 더욱 부추기는것 같았다. 양희는 세수 할 기분도 아니어서 양치질만 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다음날 배차를 못 받았으니 일찍 잘 필요도 없고 잠도 오지 않아 휴게실로 갔다.


몇 명의 안내양들이 TV를 보며 키득대고 있었다. 입사동기인 오명란이 아는 체를 하며 옆으로 앉으라고 옆자리에 자리를 만들었다. 오명란은 잘 적응하고 있는 듯 보였다.

"야! 정양희, 너 센타 당했다며?"

양희가 센타 당한 일은 이미 기숙사에 다 퍼져있었다. 아니 회사 곳곳에 퍼져있을 것이다. 삼삼오오 숙덕거리며 양희가 언제 그만둘지를 내기라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니 양희는 얼굴이 빨개지며 일어서고 싶어졌다. 오명란은 양희 귀에 대고 물었다.


"야! 너 기사는 안 주고 혼자 다 먹었니? 그러니까 기사들이 열받아서 너만 타면 손님을 안태우지~"

양희는 이건 또 무슨 소린가 했다.

"혼자 다 먹다니? 뭘 혼자 다 먹어?"

양희의 동그래진 눈이 무슨 이야기인지 빨리 말하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그때 함께 있던 안내양들이 모두 양희를 쳐다보았다. 싸움구경이라도 하는 모양새였다. 그것도 오명란의 편먹은 모양으로 한 마디씩 했다.


"최금희랑 친하더니 물들었냐? 혼자만 고상한 척, 혼자만 정직한 척, 뒤로 호박씨는 다 까면서"

"야, 최금희 다음 달에 그만둔다며? 언제 그렇게 감쪽같이 연애질은 했다냐?"

"오병운 기사도 오래 못 있을걸, 뭐 노동환경개선을 해? 저나 잘리지 말고 잘 먹고 궁리나 하라고 해"

"송충이가 솔잎을 먹어야지, 대학물까지 먹고 무슨 버스기사야? 제대로 취직 못하니까 기사 하면서 가오 좀 잡아보겠다고 노동운동하려고 왔다지? 지보다 가방끈 짧다고  맘대로 될 줄 아나 보지, 기가 막혀!"


양희는 일어나고 싶어도 둘러선 그녀들 때문에 일어서지도 못하고 좌불안석했다. 오명란이 다시 말했다.

"금희언니 믿지 마, 금희언니가 사감실 하고 괜히 친하겠냐? 네가 너무 순진해, 뒤로 호박씨 까는 사람이 그 언니야, 벌써 소문 다 나서 7년 공든 탑이 한 달 남기고 무너지게 생겼어, 어떻게 너만 모르냐?게다가 기사와 연애라니? 그 언니 옷 입고 다니는 거 봐라 우리 월급으로 그런 옷 사 입을 수 있니? 동생 학비까지 대면서? 그언니 프로중에 프로야, 이제와서 오병운씨 조합장 만들어주고 사모님 소리좀 듣고 싶은 모양인데 맘대로 안될걸, 너도 괜히 노동운동이니 데모니 그런데 휩쓸리지 말고 네 실속 챙겨, 송충이가 솔잎을 먹어야 사는 것처럼 안내양은 안내양의 룰 대로 살면 돼, 분위기 따라서 남들 하는 대로 살아, 깨끗한척 하다가 잘리지 말고, 바보같이"

거기까지 말하고 오명란은 양희가 일어설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었다.


양희는 화장실로 뛰어갔다. 정직하게 성실하게 살았는데 오히려 기사도 안 주고 혼자서 삥땅을 해먹은 안내양으로 낙인찍혀버렸다. 센타 당할 때 윤사감이 적당히 무마시켜 준 것에 대한 감사표시를 바로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은 것이 배차제외라는 명분을 만들어준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안내양의 삥땅은 기사와 안내양 차원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감이 왔다. 회사도 알면서 모른 체하며 입금액 적은 안내양들에게만 감독한다는 제스처를 취했고, 사감들도 콩고물이라도 챙겨주는 안내양을 눈감아주었다. 그러고 보니 그들도 회사에 고용된 월급쟁이들이었다. 금희언니를 감싸는 사감들과 언니 사이에는 이면에 모종의 거래가 있다는 뉘앙스가 오명란 말속에 담겨 있었다. 정직하게, 성실하게 살면 복을 받는 동화 속의 이야기는 하나도 맞지 않는다. 그동안 혼자만 정직한 척했다고 안내양들 사이에서도 왕따가 되었다. 


양희는 부조리가 만연하는 이곳에 더 있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아버지의 빚이 발목을 잡았다. 이제 한 달만 갚으면 아버지는 빚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그 한 달은커녕 당장 하루도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공장으로 가자니 월급이 터무니없이 적다. 철야를 해도 안내양의 월급 절반밖에 안 된다. 그만둘 수도 없고 계속 있을 수도 없는 답답한 상황에 울컥 눈물을 쏟았다.


믿었던 금희언니가 자신에게 보여준 모습들이 진실이아니면 어찌해야 하나 고민도 되었다. 자신처럼 주변의 오해를 받고 있는 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런데 금희언니에게 사감들 태도가 지나치게 친절했던 좀 전의 모습이, 오명란이 금희언니를 매도하던 말들, 자꾸만 어른거린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 혼란스럽다. 힘들때는 의논하라던 오병운 기사도 어쩌면 잘릴지도 모른다고 한다. 좀전에 솟아오르던 희망이 순식간에 먹구름이 되어 양희를 덮어버리는 것만 같다.


-너무 힘들어, 차라리 죽고 싶어- 열일곱 살 양희는 화장실 문고리를 붙잡고 멈추지 않는 눈물을 삼키면서 여기서 잘리지 않고 살아나갈 방법을 궁리했다. 문득 오기가 생겼다. -그래 까마귀 무리에서 백로가 살아가려면 까마귀가 되어야 해- 양희는 세수를 하고 퉁퉁부은 눈을 오래오래 토닥였다.


-다음은 목요일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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