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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숙 Jul 31. 2023

4억 그지, 27

봉수의 진심

복순 씨는 봉수가 준 번호표로 수납을 하고 그대로 오려고 했다. 봉수를 바라보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니 바라보지 않아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때 봉수가 복순의 손을 잡았다. 복순은 돌아보지도 않고 그만 울컥 눈물을 쏟고 말았다.

봉수는 복순을 대기석 뒷자리에 앉히고 마주 앉았다.

"어떻게 지냈어?"

이렇게 얼굴을 본 것이 10 년만이다. 복순은 눈물만 닦았다.

"병원은 왜 온 거야? 어디가 아파? 어디에서 살아?"

".,,."

복순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울기만 했다.    

 

봉수는 그때 신장을 다쳐 수술을 했는데 정상 회복은 힘들어 평생 정기적으로 투석을 받아야 한다고 했었다. 환자복을 입은 봉수를 바로 보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그런 복순에게 봉수 씨는 다음날 한번 와 달라고 했다. 복순은 이제 와서 얼굴 보는 것이 무슨 소용 있냐며 그냥 이제까지 처럼 잊고 살자고 했다. 봉수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내일 퇴원이야, 허리에 힘이 없어서 무거운 걸 들 수가 없는데, 범영이 범기가 지방 출장을 가서 내일은 못 온다네, 또 어머니는 작년에 돌아가셔서 뭐라고 할 사람도 없어, 그러니 하루만 와서 퇴원수속하고 짐정리만 도와줘- 그렇게 꼭 와달라고 부탁조로 말했다. 복순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바로 일할 형편도 못되니 시간도 남아돈다. - 저 사람이 저지경이 된 건 결국 나 때문인데-  그렇게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봉수는 복순이 병원을 나가는 것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전화기를 꺼냈다.

"범영이냐? 너 아빠집 안방 서랍에 열쇠 달린 상자 좀 갔고 와라"

범영이 알겠다고 했는지 봉수는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고 휠체어를 밀고 병실로 향했다.    

 

밤새 뒤척이던 복순 씨는 봉수 씨를 퇴원시키기 위해 집을 나섰다. 전철을 타고 가며 휠체어를 타고 전철에 오르는 젊은 총각을 보았다. 뒤에는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휠체어를 밀고 있었다. 엄마와 아들이 분명했다. -저 아들은 어쩌다 저리 되었을까?- 안쓰럽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리려니 봉수의 모습과 주호의 모습이 떠올랐다. 차라리 평생 휠체어를 밀어주고 시중을 들어주더라도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더 행복할 것 같았다. 제발 누구라도 곁에 있기만 하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삶에서 너무 멀리 있다. 차라리 저 엄마가 부럽다는 생각을 하는 사이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병실에 들어서니 봉수는 환자복 차림 그대로였다. 옷도 혼자 갈아입지 못하나 싶어 도와주려 했다. 그런데 봉수 씨는 테라스로 나가자고 했다. 앞서가는 봉수의 휠체어를 따라갔다. 벤치에 복순을 앉으라 하고 봉수가 마주 앉았다. 퇴원하려면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묻는 복순의 말에 며칠 더 있어야 한다고, 그러지 않으면 오지 않을 것 같아 퇴원한다고 말한 거라고 하면서 봉수 씨는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어제 범영에게 전화해서 가져오라고 했던 물건이다. 열쇠는 풀려있었다. 복순 씨는 상자를 열었다. 2개의 통장과 도장이 있었다. 궁금해하며 바라보는 복순에게 봉수는 말했다.


"그건 당신 몫이야, 당신이 내게로 오고 2년 동안 번 돈에서 절반을 나누었어, 3억이야,  당신이 부모님 챙기고 아이들 돌봐줘서 그만큼 벌었던 거야, 당신을 만나기 이전에도 당신이 집을 나간 다음에도 그때만큼 일이 잘 풀린 적은 없었어. 그리고 변호사 선배가 경비 쓰고 남은 거라며 7천만 원을 돌려줬어, 거기에 내가 광철이 비밀 지켜주기로 하고 받아 쓴돈 갚는 의미로 3천만 원 더 넣었어, 적다면 적은 돈일 수도 있지만 그 돈으로 먹고사는 곤란함은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야."

복순은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치료비라도 주어야 할 사람은 복순이라고 생각했었다. 돈이 있었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주호에게 신경 쓰느라고 사고직후 집을 나온 이후로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었다. 봉수는 계속 말을 이었다.


"당신은 호적에 아직도 내 아내야, 어머니가 처음엔 그렇게 화를 내셨지만 돌아가시기 전에는 후회를 하셨어. 당신만 한 여자도 또 없을 거라고, 누가 봐도 참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 주호가 나쁜 아이는 아니었다는 것을 어머니도 이해하셨어, 주호는 내 아들이야, 아비는 자식에게 어떤 책임도 묻지 않고 비난도 하지 않아. 주호가 형기 잘 마치고 나오면 살아갈 수 있도로 내가 도울테니 주호가 나올 때까지 건강 지키며 기다리자"     

봉수는 10년 전 사고 후에 왼쪽 신장이 손상되어 여러 차례 수술을 받으며 건강을 뒤 찾는 듯했었다. 작년에 어머니 상을 치르고 몸이 붓고 혈뇨가 나와 병원에 왔더니 오른쪽 신장에도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앞으로는 좀 더 자주 투석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은 상태였다.


복순의 얼굴도 많이 상해있었다. 복순이 집으로 와서 서로 의지 하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건강은 안 좋지만 부모에게 상속받은 재산과 포클레인 사업이 커져서 적지 않은 수입이 들어온다. 범영이는 교대를 나와 교사로 근무하고 있고 범기는 세무회계사로 잘 나가고 있다. 자신의 후계는 주호가 적임자라는 생각을 진작부터 하고 있었다. 그런 마음을 복순이 받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말했다.     

"당신이 이제 라도 집에 오면 좋겠어, 하지만 강요하지는 않을게, 다만 난 언제까지라도 당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 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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