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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숙 Jul 31. 2023

4억 그지, 28(마지막회)

검정고무신

봉수 씨가 준 통장을 챙겨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복순 씨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당장 곤란한 삶을 견디기 힘들어 수많은 자살의 방법을 생각했었다. 자신의 삶도 힘들었지만 주호가 출소할 때 빈손으로, 병든 몸으로 맞이해야 할 일이 더 삶을 못 견디게 했다. 찾아보면 죽어야 할 이유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데 재취부인의 아들이 휘두른 몹쓸 것에 맞아 힘든 투석과 치료를 받으면서도 조금도 그 상황을 원망하지 않는 봉수 씨를 보니 자신의 험한 생각들이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 느껴졌다. 또 혈기왕성한 나이에 영어의 몸이 되어 모든 것을 절제하며 살아야 하는  주호는 얼마나 힘들지를 생각하며 눈물지었다. 복순 씨는 그 두 사람의 죗값과 고통을 대신 받을 수 있다면 이제라도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모두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이게 악몽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잠이 깨면 툴툴 털어버리면 그만인 악몽이기를 바랐다.    

  

앞으로의 처신에 대해 고민했다. 다시는 후회하지 않을 결정이 있기나 할까? 아직도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봉수 씨, 이제라도 아들만 바라보리라는 자신, 죄인이라며 엄마를 거부하고 조용히 죗값을 치르고 있는 아들, 어쩌다 가장 소중한 세사람이 엇갈린 상황으로 세상에 남겨진 것일까?    

 

복순 씨는 집에 도착해 통장을 열어보았다. 자신의 이름으로 된 3억짜리와 1억짜리다. 공교롭게도 남편의 사고 보상금으로 받은 금액과 딱 떨어지는 숫자 앞에 복순 씨는 남편을 생각했다. 자신을 복덩어리라며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던 남편이었다. 나무를 팔아 몇 푼이 생겨도 포클레인 작업비로 큰돈이 들어와도 모두 복순 씨에게 맡겼었다. 복순 씨는 알뜰하게 살림하며 단 한 푼도 헛되이 쓰지 않았다. 그런 부부를 주변에선 천생연분이라고 했다. 아이도 주호를 낳고 더 이상 낳지 말자고 한건 남편이었다. 주호하나 잘 키워서 번듯하게 살게 해 주자는 것이 남편의 뜻이었다. 남편이 떠나면서 보상금으로 남긴 돈은 아마도 자기 대신 아들하나 잘 키워달라는 뜻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아들을 남편이 떠나고 5년도 안되어 시동생에게 맡기고 재혼을 했다. 지금의 이런 엄청난 일들은 남편이 복순에게 내린 형벌 같았다. 그런데 힘들다고, 차라리 죽자고 사치를 부리고 있었다니... 죽음은 남편에게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는 마음이 이제야 들었다. 다시 통장을 바라보던 복순은 무슨 결심을 했는지 단호한 표정이 되었다.    

      

다음날 복순은 방을 정리했다. 오전에 주인에게 사정을 말하고 남은 보증금으로 밀린 월세와 전기요금, 가스요금등 계산할 것들을 다 계산한 후였다. 라면이나 끓여 먹던 살림이라서 대형쓰레기봉투 석장다들어갔다.종류별로 나누어 담아 지정된 장소에 갔다 놓고 들어왔다. 방바닥에 봉수 씨의 집에서 나올 때 들고 온 검정고무신이 들어있는 가방과 옷 한 벌, 작은 반짇고리가 올려진 보자기 한 장, 그리고 봉수씨가 처음 사준 귀걸이 한쌍이 덩그러니 있었다. 복순은 보자기를 펼쳐 통장과 도장과 신분증이 든 비닐봉지를 사각 모서리에 놓고 반짝이는 귀걸이를 바라보았다. 봉수씨의 고마운 마음이 느껴졌다. -고마움은 간직해야지- 귀걸이도 봉투속에 넣었다. 그리고 돌돌 말았다. 끝까지 다 말아진 보자기를 통장 라인을 따라 바늘로 꿰맸다. 그리고 그것을 맨 허리에 매고 겉옷을 입었다. -이통장은 내 것이 아니야, 남편이 주호 살리라고 마지막 기회를 준거야-          


주호는 모범수로 5년을 감형받았다. 앞으로 4년 6개월 후면 출소를 할 것이다. 그때 주호가 기반으로 삼을 수 있도록 이 돈을 지키기로 했다. 그러나 변형까지 시작된 손가락과 한번 찾아오면 까딱 조차 할 수 없는 통증 때문에 일을 하면서 살기는 힘들 것이다. 그때마다 추한 목숨은  이 돈으로 살자고 유혹할 것이다. 돈 앞에서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해지는지를 아는 복순 씨는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할 여지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봉수 씨의 마음이 고맙고 병시중이라도 해주어야 마땅하지만 그 이유를 핑계로 주호보다 편안한 삶을 보장받고 싶지 않았다.    

 

"난 엄마니까, 앞으로 4년 6개월, 한 아이의 엄마로 돌아가기 위한 속죄가 필요해"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진 복순 씨는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그리고 가방 속의 빛바랜 검정고무신을 꺼내어 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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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 후, 서울역의 한 곳에 검정고무신을 신은 여자가 서성이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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