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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숙 Jul 31. 2023

4억 그지, 26

병원에서

    

복순 씨는 아들이 언젠가는 자신의 면회를 받아줄 것을 기대하며 아들과 가까운 대전에 거처를 마련했다. 식당 막일을 하며 견디던 복순 씨는 어느 날 심한 통증에 시달리다 병원을 찾았다. 스트레스성 류머티즘이라고 했다. 통증은 쉽게 잡히지 않아 손가락부터 변형이 왔다. 심할 때는 종이 한 장도 집을 수 없을 만큼 아팠다.     

복순 씨는 아들을 생각할 때마다 숨이 차고 손목통증이 심해졌다. 손목이 화끈거리더니 통증이 어깨까지 올라와 몸이 벌벌 떨렸다. 약봉지를 뒤졌다. 이렇게 아픈 몸으로는 죽음마저도 실행하지 못할 것 같았다. 병원 처방약은 한 봉 지도 없고 일반 진통제만 있었다. 진통제 2알을 꺼내 삼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심해지는 통증에 신음하며 핸드폰을 열었다. 저장된 번호를 찾아 누르고 진료 예약을 했다. 대학병원의 만만치 않은 병원비와 약값이 부담되어 몇 번째 예약일자를 넘겨버린 후였다.    

  

죽지도 못할 운명이라면 일을 해야 했다. 통증이 멈춰야 일을 할 수가 있고 얼마라도 벌어야 이런 생활이라도 유지하고 또 그래야 아들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병원에 갔다. 접수를 하고 진료실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무심히 휠체어를 밀고 가는 한 남자를 보았다. 뒷모습이 너무 익숙했다. 그때 순번이 되었는지 -홍복순 씨- 하며 간호사가 불렀다. 휠체어를 밀고 저만치 가던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순간 복순 씨는 얼어버리고 말았다. 남자의 표정도 굳었다. 다시 간호사의 호출이 들렸다. 복순 씨는 도망치듯 남자의 눈길을 피해 진료실로 들어갔다.

-약을 그렇게 성의 없이 먹으면 절대로 낫지 않아요. 이병은 자신의 존재를 무시한다 싶으면 급속도로 진행하는 병이에요. 벌써 손가락이 많이 휘었네요.-

의사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처방전을 받아 가라는 말끝에 일어났다.  

    

문을 열고 나오기가 무서웠다. 그 남자, 10년 동안 잊으려 애를 썼던 그 남자를 이런 모습으로 부딪힐 것이 두려 웠다. 다음 환자가 들어오고 간호사는 복순 씨를 불렀다. 쭈뼛쭈뼛 간호사 앞으로 걸음을 옮기는 복순 씨를 부축하며 어디 불편하냐고 물었다. 괜찮다고 말하며 다음 예약일을 정하고 수납창구로 걸음을 옮겼다.

-나를 알아보지는 못했을 거야, 간호사가 날 부르는 소리도 똑똑히 듣지 못했을 수도 있어, 그동안 다른 사람이 생겼을지도 모르지,-       

괜한 노파심이었다는 생각을 하며 번호표를 뽑으려 할 때 불쑥 번호표를 든 손이 복순 씨 앞으로 보였다. 그 손의 주인을 보려고 고개를 돌리다 기겁을 하고 말았다.


"대기자가 많아서 미리 뽑아가지고 있었어, 다음 순번이니까 이걸로 기다리지 말고 수납해"

"당신이 여길 어떻게, 그리고... "

휠체어는 뭐고 환자복은 뭐냐고 물으려고 했다가 그만두었다. 대답이 두려웠다.

10년 전 응급실에서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나 정기적으로 투석을 받아야 된다는 말을 들었었다. 휠체어까지 타야 하는 정도는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 많은 병원 중에 자기가 다니고 있는 이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거라는 것도 뜻밖이었다.

"응, 입원한 지 며칠 됐어, 여기서 한 달에 한 번씩 투석을 받아 왔거든"

"... "

복순 씨는 눈물을 훔쳤다. 미안하다고 말을 해야 하는데 말이 나오지를 않았다. 그리고 그때 받았던, 집에 어느 함 속에 들어 있을 귀걸이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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