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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구일 Nov 23. 2021

하늘 운전

날개를 부리는 대리기사

"으... 씨*"


속이 뒤집어진다. 뒤집히니, 위가 울렁이고 가슴께가 답답하다. 금방이라도 쏟아낼  같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 매번 이런다.


인지의 퇴화, 저녁의 역행을 만끽하며 경계석에 털썩 주저 앉는다.


허리는 있는대로 구부러져, 폭삭 구부정하지만. 고개만은 빳빳이 든다. 그러고 싶다.


"차암- 잘난 것도 죄인가"


잘나긴 했다. 외모며, 집안이며. 제법  굴러가는 머리까지.. 

특히 집안에서  났지. 물려받은 것만해도 아파트  채는 되니까.


"으... 쌀쌀하네, 이놈의 대리 기사는 왜이렇게 안와."


흐드드. 찬 숨을 뱉어내며 애꿎은 대리기사를 욕한다.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길이라 그가 늦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잠깐의 불편함이 심상에 흠집을 더한다.


 멀리서 흰색 모자를  눌러쓰고,  걸음으로, 두리번거리는 남자가 보이기에 손을 들어 본다.

 손을  남자는 느낌표처럼 꼿꼿- 서는가 싶더니 이쪽으로 달려온다.


"아이구! 날이 춥죠!"


 넉살 좋은 말투로 다가온 그는 자연스레  문을 가리킨다. 괜히 우쭐한  모습이 멍청해 보이긴 한다. 

대리기사는 능숙하게 시동을 건다. 


Power, Speed, Technique 글자들이 계기판 위 차례로 점등한다.


나는 이미 뒤로 눕혀질대로 눕힌 조수석 등받이를 젖혔다.


"아이고 머리야"라는 신음과 온갖 잡술 내를 머금은 한숨이 후- 하고 절로 나온다.


"많이 드셨나봐요. 허허"


넉살 좋은,  40대를 넘긴 듯한, 기사가 묻길래. "예 뭐."하며 짧게 대꾸했다.


 인상은 아마도, 잔뜩 찌푸린 불평이 드리워져 있을텐데,  어때.


"어디로 모실까요?"


"학익동.. 아니 송도요. 센트럴 파크.."


목적지를 확인한 대리기사는 휴대폰을   찍으며 한 차례 더 물어보았다.


"날아가도 될까요?"


"풉- 조심히만 가주세요."


시덥지않은 농담이 울렁이는 귓가로, 어디론가 자꾸 떨어지려하는 의식을 건드리길래. 웃음이 새어나왔다.


밝은 에너지, 으레 돈돈 거리는 주변 놈들이나, 새로운 욕망만을 탐하는 것에 매진하려드는 지기들과는 색다른 사람이다.


그래봐야 대리기사. 그래봐야 대리기사.  맴도는 편견에 스스로 질려  때였다.


펄럭-


조수석에 비스듬히 비치는 가로등  빛. 세모로 보이는 창문.  너머 펼쳐지는 하얀 날개.


"어어-"


하얀 날개가 주황빛으로 펼쳐지더니 힘차게 날개짓 했다.


700kg일까, 1톤 쯤은 될까. 덜컹이는 소리와 함께 가로등 불빛이 다가왔다가 새까만 풍광으로 바뀌었다. 눈과 귓가를 파고드는 오감은 중력의 출렁임이나 넘실거리는 밤하늘의 장막을 미처 담지 못하는  하다.


"뭐... 뭐야!"


벌떡 일어난  등줄기로 지이이이잉.. 하며 등받이가 느릿하게 받쳐선다.


콰앙-하는 느낌으로.  날개가    펄럭이자 몸이 움츠러든다. 그리고 낙하, 그리고 비행-


나의 애마는 파주의 밤하늘을 날고 있다.


"뭐... 뭐야! 예?"


"귀하신 분 일찍 집에 모셔드리는게 제 일이지요."


대리 기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기어봉을 팔걸이 삼아 기댄채로 말했다.


"아니..."


머리속 핏기가 가신 듯, 정신이 퍼뜩 들었다. 내가 그새 잠들었는가라는 의심을 필두로,  상황을 이해하려는  동공의 현란함만이 사이드 미러에 스친다.


'어떻게 이런일이'라는 물음은 의미가 없다.

"와...우..."

감탄사 아래 저공으로 일산과 아라뱃길의 은은한 조명,  하늘 아래 수놓인 또다른 은하수만이 존재한다.


비행기. 세계를 뒤덮은 혼란의 역병 이전 수도 없이 타봤지만,


새처럼 날개를 펄럭이며, 고층 건물과 맞닿을 듯, 도심을 비행해  것은 아니다.


 아래로 요동치며, 마치 놀이기구와 같은 탑승감을 느껴본지도 오래.

살고싶다는 생존 본능에서 비롯된 것인지, 인지의 부조화로 황망한 사고를 하고 있는건지, 비루한 몸뚱이가 불러온 멀미인지. 

붕- 뜬 기분.


상식과 경험이 나의 날개달린  안에서 이리저리 뒤섞이고, 갈려나간다.


"금방 도착해요.  20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엄청난 풍절음에 대리 기사의 음성과 라디오 소리가 가리어진다.


당장에 떠오르는 것은 꿈인지 생시인지, 당신 마법사인지 진부한 질문 뿐. 침묵의 일관, 그리고 풍경의 감상.  두가지가 내가  일인  보였다.


소음 가득한 정적을 깨고 대리기사가 먼저 말을 건넸다.


"신기하죠?"


"그쵸."


짧게 대답했다. 경외감, 존재에 대한 두려움. 나의 자만과 자존심이 섞인 대답이었을 것이다.

 양반은 으레 운수 종사자들이 그렇듯 어색한 기류를 싫어할지도 모르겠다.


"살다 살다  일을  겪어보네요,  참."


서린  윗 공기가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오늘은 무슨 일을 겪으셨나요?"


대리기사는  쪽을 돌아보았다. 여전히 미소를 품은 얼굴이다. 너그러움보다는, 여유를 담은 그 얼굴에서 일탈 아닌 속세의 탈피를 엿보았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는데 아무도 인정을 해주지 않습니다."


분위기에 취하고, 차창 아래 보이는 토목 건축의 신기에 취해 내뱉은 말.


"어디까지 가야하는지도 모르겠고. 재미가 없고, 감각은 점점 무뎌지고."


"우리집이   살아요, 저도 많이 벌고 있고. 근데 참.."


"배가 부르셨군요."


무례하고 기분 나쁠 소리를 잘도 건넨다. 그럼에도 마치 여행길인듯 신비한  귀가.


"맞아요, 참. 하하, 배가 불렀죠."


"배는 부른데 만족은 못하고, 포만감 없고 더부룩한 기분.."


  표현이 참 좋다.


"맞아요, 맞아요.  그런거."


"혹시 취미 있으세요?"


"뭐.. 음주, 가무, 골프... 요즘은 캠핑 같은걸 가도 시간만 떼우다 오는 기분이고. 게임도 재미 없고, 영화는  시간이 없고.."


"꿈은요?"


"꿈.. 안꾼지도 오래됐고. 흐허"


"다들 그렇죠 뭐"


자욱한 구름, 안개같이 흩뿌려진 수증기 속을 날며 찬바람을 만끽했다. 취기에 붉어진 얼굴도, 알콜이 들끓던 머릿속도 찬공기 앞에 차분히 식어가는 느낌이다.


요동치는건, 엉덩이 밑에 깔린 고저의 변화 뿐. 황홀감에 붕 뜬 기분은 잠시간의 정적을 주체 못하고 속내를 털어냈다.


"기사님은 꿈이 있으세요?"


꿈을 되물어주길 바랬던 것일까, 어딘가 잠들어버린 꿈을 되찾는 길을 인도해주기 바랬음일까.


"있죠, 하하 부끄럽지만. 최근에 생겼어요."


"아-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기사님 꿈은 무엇인지 여쭤봐도 됩니까?"


지이이- 나는 창문을 올리며 물었다.


"인터넷 방송이나 할까 합니다- 통기타."


"아..."


음악 좋아하시나부다. 라는 짧은 감상과 함께,


요새 인터넷 방송도 레드오션이라던데, 통기타 잘 치시는지, 찍어둔 영상은 있는지. 대화의 연장선을 분주히 찾는 머릿속. 차분한 밤공기, 묵묵히 떨림을 멎은 나의 목줄기.


"사장님은요? 사장님은 꿈길을 걷고 있으십니까-"


"... 다 걸은건가, 아니면 시작도 안했나... 잘 모르겠어요 요즘엔, 에유-"


차창에 비친 대리운전 기사는, 여전히 비스듬히 자세한 채로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다. 깊이 있는 눈가에, 팔자가 선명한 입가가 더없이 여유로와 빠져들 듯하다.

그 뒤로 겹치어, 은은하게 빛나는 하얀 날개는, 이젠 즐기기로 했다.


"통기타 영상 100개."


"예?"


"뭐, 정확한 제 꿈은 죽기 전 까지 영상 100개 올리는거에요 하하. 좀 초라한가."


"아뇨, 뭐..."


"영상만 올리다 굶어 죽을 수도 있으니까, 할 줄 아는거 하는 중입니다. 낮엔 보통 기타 연습을 해요."


"아 녜..."


영상 100개라.


그런 것도 꿈인가, 행복하게 사는 것.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 누구에게나 인정 받는 것. 부를 쌓는 것, 그렇다면 얼마나? 효도하는 것. 한강이 보이는 집을 한 채 구매하는 것. 아, 이건 이미 이뤘지. 따위의 생각들이 비엔나 소세지 마냥 이어진다.


그나저나, 연습 중이라니. 대책이 없는가 싶다가도, 왜 할까 싶다가도, 재밌나 싶다가도.


"주제넘지만, 사장님도 사장님을 잘 표현하는 일을 한 번 해보세요. 뭐, 꿈이 없다면 이미 밟고 지나갔을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허허."


밟고 지나간 꿈? 어째 어려서부터 꿈이 그리 많진 않았다. 남들은 대통령, 과학자, 선생님 등을 장래희망란에 용케 적더만. 풍족함일까 좀 더 거슬러 올라가 유복함이었을까. 내 꿈은 늘 사업가였다.

무얼 사업하겠다고. 여태 뭘 하며 살았다고.

아직 밟아보지 못한 꿈이라면, 만나보지 못한 것일까.


"아이고 글쎄요..."


뺨 표면까지 은은한 열기가 느껴지는 것이. 두 눈이 붉어지다 못해 데워져 튀어나올 듯한 감각이 느껴지는게. 대화는 이만 하고 잠시 눈이나 붙일까. 골치 아프다.


...


몸이 붕 뜨는 김에, 잠에서 꿈으로, 꿈에서 현실로 발작한다.


허둥대는 두 팔다리는 뻘쭘함으로 제자리를 찾고 대리기사가 도착을 알린다.


차는 아직 흔들 흔들, 허공에서 제자리 유영 중이다.


"사장님 주차는 이쪽에 하면 될까요"


"아 네, 네. 이쪽에... 내려주세요."


"네에-"


짐짓 하체가 긁히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생각보다 부드럽게. 차는 엉덩이를 내렸다.


그리고는 퉁- 퉁- 하는 소리와 함께 뒷바퀴와, 앞바퀴들을 안착시켰다.


드르륵 탁. 푸르릉 하고 시동이 꺼진다. 굿바이 라이트가 아직 내가 가야할 집 앞 밤길을 비춘다.


"사만원 되겠습니다."


"여기..."


나는 지갑에서 오만원짜리 한 장과, 명함 하나를 내밀었다.


"이렇게 차 나는거, 날개. 나도 배울 수 있는거요?"


"마법이요. 글세요, 저도 언제부턴가 생기게 된거라 하하. 재미는 있으셨나요?"


"재미... 있었어요. 내 참 이런 경험을 하게 될 줄은, 끅!"


돌발적으로 튀어나오는 딸국질. 왜일까. 멀미일까, 그르륵- 하는 트림을 동반한다. '어우' 라는 신음이 저절로 나온다.


"조심히 들어가시구요 사장님!"


"네, 기사님두. 수고하세요-"


하얀 캡 모자 꼭다리가 보일 정도로, 숙여 인사하는 기사를 뒤로. 황홀감과, 신비를 주었던 내 애마를 돌아 보았다.


사라짐.


엠블럼에 새겨진 두 날개 뿐, 두 짝의 문 뒤로 솟아 났던 영롱한 날개는 기억 속에 남아 있을 뿐이라 여기까지 어떻게 온 건지. 상상하기도 힘들 지경이다. 기억 속에 잊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휘적휘적 집을 향해 걸어가건만.


왠지 사라질 기분이다.


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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