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말 2 아웃, 니체를 만났다

야구장에서 만난 니체의 '차라투수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by Golden Tree

야구와 인생은 묘하게 닮았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처럼 야구 역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큰 점수차라 당연히 이길 것 같다고도 한순간의 작은 실책이 대량 실점으로 이어져 경기 결과를 알 수 없게 만든다. 실수를 자책하며 경기를 포기할 수도 없다. 야구에는 만회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도 비슷하다. 보란 듯이 승승장구하며 잘 나가던 인생도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으며 밑바닥을 찍었다 생각할 때 찾아온 우연한 기회가 인생 역전의 발판이 되기도 한다.


야구 경기에는 손에 땀을 쥐게 하고 심장박동을 빠르게 하는 순간이 종종 등장한다. 그중 가장 흥미로운 건 아마도 9회 말 2 아웃 상황이 아닐까 싶다. 승리를 염원하는 팀이 득점과 실점의 기로에 서 있는 이 순간, 선수들과 야구 경기를 보는 모든 관중들의 심장은 요둥친다. 심장박동이 빨라지며 떨리는 순간이다. 두 손을 마주 잡고 경기에 집중한다.


9회 말 2 아웃.

이 짜릿한 상황에서 나는 투수와 타자의 표정을 눈여겨본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대강 짐작해 본다. 홈런을 쳐야 하는 타자의 마음과 타자를 속여 어떻게든 가장 최적의 공을 던져야 하는 투수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경기 결과를 지켜보는 덕아웃의 선수들과 관중의 모습도 관찰한다. 간절함이 하늘에 닿으면 누군가는 승리의 포효를 외친다. 하지만 승리가 있다면 패배도 있는 법. 어느 때보다도 묵직한 패배의 슬픔을 견뎌내고 또 다른 기회의 시간을 잡아야 하는 쪽도 있다.

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 승자의 자리를 얻고자 경기에 임하는 선수나 이들을 지켜보는 이들 모두 간절하지만 불안한 마음으로 승리를 염원한다.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을 갖게하는 9회 말 2 아웃 상황은 강한 멘탈이 아니면 견뎌내기 힘들다.


짜릿하고 두근거리며 쫄깃한 순간.

이 순간이 되면 강인함을 외쳤던 철학자 니체가 생각난다.





니체는 누구인가.



니체의 생애를 잠시 들여다보자.

철학자가 전하는 사상을 알려면 때론 그의 생애를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때가 있다.



탄생의 기쁨 못지않게 죽음의 아쉬움도 함께 나눌 누군가가 필요하다. 인간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생로병사 중 마지막 과정인 죽음 앞에서 함께 하는 가족과 지인의 유무, 그들이 미치는 소소한 영향력은 인간의 삶을 행복과 불행으로 나뉘게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니체의 삶은 행복보다는 불행에 좀 더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니체의 아버지는 니체가 네 살 때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몇 달 후, 남동생마저 사망했다. 니체는 어머니, 여동생, 그리고 외할머니, 이모와 함께 지냈다. 집안의 남성은 니체뿐이었다. 어린 나이에 가족의 죽음을 두 차례 경험한 니체는 나이답지 않게 조숙한 편이었다. 그리고 니체 집안의 여자들은 집안의 유일한 남성인 니체를 지극 정성으로 아꼈다. 그 아낌이 그 돌봄이 대략 어떤 것이었을지 짐작 간다.

니체의 어머니는 집안의 유일한 남성인 니체가 병에 걸리지 않길. 그리고 강인한 남성성을 가진 존재로 성장하길 바람했을 것이다. 니체는 어린 시절부터 집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애썼을 것이고 가끔은 집안의 기대를 감당하기 버거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니체는 건강이 좋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눈도 좋지 않아 밝은 빛을 보기 어려웠으며 구토와 설사를 반복했다고 한다. 몸과 마음이 쇠약해진 니체는 정신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어머니의 돌봄을 받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여동생의 돌봄을 받으며 지내다 50여 년의 삶을 마감했다.


니체는 초인(위버멘시)이 될 것을 강조한다.

그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극복하여 초인이 되어보라고 말한다. 그리고 담담한 어조로 인생의 어두운 면을 비교적 자세히 소개한다. 어차피 삶이 가시밭길이라면 불평하지 말고 견뎌내고 담대하게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니체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강한 의지를 가진 인간이 될 것을 강조하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차라투스트라의 영혼 위로 다시 세월이 흘렀건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그의 머리는 하얗게 세어 있었다. 어느 날, 짐승들이 깊은 생각에 잠겨 그의 주위를 맴돌다가 마침내 그의 앞에 앉아 물었다. "차라투스트라여, 그대는 자신의 행복을 기다리는가?"

그가 답했다.
"행복이라니! 행복에 뜻을 두지 않은 지 이미 오래다. 다만 나의 일을 생각할 뿐이다."

짐승들은 머리가 하얗게 세어 있는 차라투스트라에게 말했다
"그대의 머리는 하얗게 세어 아마(亞麻)*처럼 보이건만 그대 자신은 더욱 노래지고 더욱 어두워지지 않았는가? 보라, 그대는 역경 속에 앉아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웃으며 말했다.
"무슨 말을 하는가? 내게 일어난 일과 같은 것은 익어 가는 모든 과일에서도 일어난다네. 나의 피를 더욱 짙게 하고 나의 영혼을 더욱 고요하게 만드는 것은 내 혈관 속을 흐르는 꿀이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민음사, p.415-416 참고]

* 아마(亞麻): 중앙아시아 원산의 한해살이풀로서 줄기의 높이는 1m 안팎이다. 잎은 피침 모양을 하고 있으며 어긋난다


니체는 행복에 뜻을 두지 않고 주어진 상황을 견뎌낼 것을 강조한다. 마치 삶을 버티라고 말하는 것 같다. 하루하루 과일이 익어가는 과정이려니 생각하며 주어진 역경도 견뎌내라고 말한다. 삶의 고난과 역경은 자연스런 과정이니 버티라는 니체의 말을 들으면 '그래, 원래 삶이란 게 이런거지. 좋은 일만 있겠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힘들어도 버티자며 스스로 다독인다. 하지만 니체 자신의 삶은 그의 외침과 대조적이었다. 그 원인은 아마도 니체의 성장과정에 있지 않을까 싶다. 어린 시절 경험한 아버지와 동생의 죽음. 그리고 그로 인해 자신에게 거는 어머니의 지나친 기대가 무겁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짐작컨대 니체의 타고난 기질은 유순하고 섬세하며 내향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의 책에 등장하는 문학적 표현을 보면 가끔 강인함을 외치는 성향과 대조적이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요즘 유행하는 MBTI로 따지면 I성향인데 E로 살아가야 한다고 강요받는 느낌이랄까. 어떤 상황에서도 강한 사람이 될 것을 강요받으니 섬세한 니체가 신경 쇠약에 걸린 것은 아닐까 싶다.(어디까지나 나 혼자만의 생각이다.) 그래서 자신이 동경하고 꿈꾸는 이상적 삶의 모습을 차라투스트라를 통해 대신 전달한 것이라 생각한다.




9회말 2아웃과 우리 인생의 교집합


9회 말 2 아웃을 마주하는 투수와 타자를 볼 때마다 저런 강인함과 담대함은 어디서 나올까 궁금하다. 분명 모든 야구선수의 멘탈이 하루도 빠짐없이 매번 강하다거나 그들이 태어날 때부터의 성향이 쎈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경기장에서 그들은 무조건 강해보여야 한다. 특히 상대편 선수들에게 얕잡아 보여서는 절대 안된다. 그렇기에 선수들은 매일 고도의 포커페이스를 사용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유순함을 들키지 않고자 엄청난 노력을 한다. 프로의 세계는 냉정한 법이니 말이다. 약하거나 흔들리는 모습이 보이며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게 프로의 세계다. 어떤 상황에서도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 강한 멘탈을 갖고자 부단히 노력하며 자신의 본캐를 숨기고 강하게 보이고자 노력할 것이다. 문득 위기 상황에 처한 선수들의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 한 켠이 짠해진다.


야구는 차곡차곡 점수를 쌓아 올린다고 이길 수 있는 경기가 아니다. 가끔은 운도 따라줘야 하며 어렵게 잡은 기회를 전략적으로 잘 노리고 경기의 흐름을 읽어야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 어쩌면 야구는 고도의 두뇌게임이기도 하다. 야구가 재밌는 이유는 이런 고도의 전략 덕분에 경기 결과를 끝까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락으로 떨어지다가도 환희의 홈런 한 방이 승리를 가져오고. 이제 끝나겠지 싶다가도 상대의 출루가 갑자기 대량 득점으로 이어지고 동료의 작은 실책이 큰 위기를 가져오기에 쉽게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끝나는 순간까지 끝난게 아니다. 한 경기를 위해 매순간 절차탁마(切磋琢磨)한다. 그래야 위기 상황에서 침착히고 대담하게 자신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이렇듯 야구에 담긴 여러 장면들이 우리 인생과 많이 닮았기에 야구는 매력적이다. 세 번의 계절이 바뀌는 긴 시간동안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야구와 함께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9회 말 2 아웃.

그 떨림의 순간, 손에 땀을 쥐며 앞날의 행복보다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라고 외친 니체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