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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y Do May 12. 2021

14. 카네이션과 작약이 건넨 위로

카네이션과 작약이 건넨 위로

참 다사다난한 요즘이었다.

시작하고 있는 일들도, 기다리고 있는 일들도, 나를 흔들리게 하는 일들도 참 많은 나날들이었다.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관계에서 작아지고 움츠러드는 저를 확인하고 나의 쓸모에 대해서 고민하기도 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단단해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그런 시간들 사이사이에도 물론 소소하게나마 미소를 짓게 하는 고마운 순간들이 있었다. 어버이날 전날 눈을 뜨자마자 꽃시장을 찾았다. 어떤 꽃을 데려올까 오래 고민하지 않고 코랄 작약 두 단과 코랄 카네이션 화분을 골라왔다. 엄마 아빠가 외출하신 빈 집에 들어와 꽃들을 화병에 꽂아 두었다.


집에 돌아온 엄마는 꽃들을 보고 큰 리액션을 보이진 않으셨지만, 꽃을 요리조리 다시 매만지며 한참을 예뻐해 주셨다. 그리고 한참을 들여다보시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커지는 작약의 얼굴을 발견하시곤 ‘이거 타임랩스로 찍어보면 너무 예쁘겠다.’라고 이야기하셨다. 방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나는 쪼르르 달려가 타임랩스를 찍는 방법을 알려드렸고, 엄마는 그렇게 고정해둔 핸드폰을 몇 시간씩 지켜가며 꽃이 피어나는 영상을 찍어주셨다. 꽃 몇 송이가 팡팡 피어나는 참 마음에 드는 영상이다. 영상을 찍은 지 며칠이 지난 지금도 계속 돌려보고 있다.


작약은 몽실몽실하게 여러 겹의 꽃 잎을 품고 있다가, 자신이 피어오를 타이밍이 되면 열렬히 그 꽃잎들을 펼쳐낸다. 그래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자, 사람들이 나를 기억할 때 작약 같은 사람으로 기억해주었으면 한다는 생각도 한다.


폭풍같이 몰아쳤던 나의 감정과 자신감을 흔들었던 지난 모든 일들도 아마 꽃 봉오라 안에 몽글몽글 차오르는 수많은 꽃잎 중에 하나를 형성하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다 좋은 일들로만 그 속을 다 채울 수 있겠냐.’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당일치기 속초 여행


어버이날 당일 이른 아침 아빠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전날 늦게까지 리서치를 하느라 피곤하다며 잠시 투정을 부렸지만, 어렸을 적이 생각나 피식 웃으며 기분 좋게 침대를 박차고 나왔다. 아주 어릴 때부터 매주 주말, 여행을 좋아하시는 아빠는 온 가족을 새벽부터 깨워 차에 태우곤 고속도로를 달려 전국을 누비시곤 했다. 요즘은 아빠도 피곤하신지 장거리 여행을 하는 횟수가 조금 줄었는데, 오래간만에 아빠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보는 듯해 빨리 일어나라는 아빠의 잔소리가 반갑게 들려왔다.


차에 타자 엄마는 차에서라도 푹 자라며 잠이 부족한 나를 배려하여 미리 챙겨 온 목베개를 손에 쥐어주셨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게, 그렇게 목베개를 받아 들고 나니 잠이 안 오고 바다로 향하는 여정에 신이 났다. (물론 한 시간 반쯤 달린 후에 나는 기절하듯 잠에 들었다.) 가족들과 한차에서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웃기도 하고 노래도 따라 부르고 지금 이 글을 쓰며 돌아본 그 당시는 봄의 색을 가득 머금은 싱그럽고 포근한 장면들로 기억된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바닷가에 도착해 목적지로 찍었던 물회 집에서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목적지 없이 해안을 따라 달리다 울산바위 근처를 지나 강원도를 한 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왔다.


크게 특별한 거 없는 어버이 날이었지만, 그런 순간들일수록 훗날 회상하면 코끝을 찡 울리는 날들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잠들기 전 짧게나마 기록해본다. 엄마 아빠 그리고 어버이날 당일에 함께하진 못했지만 할머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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