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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팝콘 말고 나초 말고 Nov 01. 2021

<위 아 후 위 아>(2020), 너로 인해 온전해져

*스포일러 주의

*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관계 속에 얽히고설킨 우리


    청소년기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탐색하고 시험해 보는 시기다. 경계 안에 갇힌 어른들과 달리 청소년들은 자유롭게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그로 인해 영향을 받고 변화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HBO 시리즈인 ‘위 아 후 위 아’(2020)는 이탈리아 내 미군 기지에 사는 청소년들과 어른들의 이야기를 통해 관계와 정체성의 면면을 탐색한다. 새로 발령된 대령 사라(클로에 세비니)의 아들인 프레이저(잭 딜런 그래이저)는 특유의 패션 감각과 예민한 감수성, 두 레즈비언 엄마 탓에 어딜 가나 튄다. 연고 하나 없는 이탈리아로 자신을 끌고 온 엄마를 원망하며 적응하지 못하던 프레이저는 성별 정체성으로 갈등하는 케이틀린(조던 크리스틴 시몬)을 만난다. 맞닿은 집 창문 너머 주고받는 시선으로 둘은 서로가 자신을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임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개인의 정체성과 소속이 가장 중요한 군 기지 안에서 갈 곳을 잃어 혼란스러운 두 청소년은 서로를 안식처 삼아 스스로에 대해 알아간다.


    이 8부작의 드라마에서 2016년이라는 시대 배경과 이탈리아 안의 미군 기지라는 공간적 배경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미 대선을 앞둔 변동의 시기에 정체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탐험하는 사람들은 위협을 받는다. 비이성애와 트랜스 정체성은 달갑게 여겨지지 않고 군 기지 안과 밖은 미국과 비(非) 미국의 세계로 양분된다. 기지 안의 어른들은 미국의 정세만큼이나 이념과 권력으로 대립하지만 군 기지 안팎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아이들은 순수하게 그들의 관계에만 집중한다. 틀 안에 갇히지 않은 관계성과 정체성은 비전형적이면서 유동적이고 아이들은 이 혼란 속에서 서로를 보듬고 나아간다.


    이처럼 ‘위 아 후 위 아’(2020)는 프레이저와 케이틀린의 관계에만 집중하지 않고 격동하는 시기를 보내는 다양한 인물들을 보여준다. 프레이저의 두 엄마 사라와 매기(앨리스 브라가)를 통해 모성과 양육의 복잡한 문제를 다루고, 케이틀린의 아빠 리처드(키드 쿠디)와 엄마 제니(페이스 알라비)를 통해 실패한 가부장제 속 사랑에 대해 다룬다. 그뿐만 아니라 의지할 대상이 서로뿐인, 그래서 더욱 혼란스럽고 무모한 미군 기지의 아이들을 통해 청춘의 미숙함과 성장을 보여준다. 인물들은 모두 서로와 얽혀 있지만 그 관계의 방향은 궁극적으로 모두 인물 각자에 대한 탐구를 향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모습 그 자체다’라는 제목의 의미와 같이 ‘위 아 후 위 아’(2020)는 혼란한 상황에 처한 개인들이 타인을 삶에 들임으로써 어떻게 스스로의 ‘모습 그 자체’를 재발견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함께 'Time Will Tell'을 듣는 케이틀린과 프레이저

   

    전작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에서와 마찬가지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감정과 관계를 보여주기 위해 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리저리 튀는 피아노 소리는 이탈리아 내 미군 기지라는 생소한 공간에 생동감을 부여하고 인물들의 감정을 대변한다. 그리고 프레이저와 케이틀린의 정적인 시선 교환 속에 숨겨진 들끓는 감정을 암시하기도 한다. 블러드 오렌지의 ‘Time Will Tell’을 시리즈를 관통하는 테마곡으로 사용한 것도 인상적이다. ‘Time Will Tell’ 원곡의 뮤직비디오를 오마주한 프레이저와 케이틀린의 댄스 시퀀스를 통해 감독은 이 곡이 둘의 관계를 상징하며 둘을 잇는 매개임을 보여준다. 프레이저와 케이틀린이 서로에게 젖어들 듯 이 곡이 나올 때마다 시청자도 이들의 감정선에 함께하게 된다.


    ‘Time Will Tell’은 ‘이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는 시간만이 알기 때문에 조급해하지 마라, 삶이란 그런 거다’라는 내용을 담은 노래다. 이 노래가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이유는 프레이저와 케이틀린, 미군 기지 내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에게 삶이 벅차기 때문이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이들의 삶을 담담하고 관조적인 방식으로 보여줌으로써 이들이 서로를 포기하지 않고 충분한 시간을 가지는 한 삶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것임을 암시한다. ‘위 아 후 위 아’(2020)는 이렇게 관계에 상처받고 치유되는 개인들이 스스로를 마주하고 나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삶에 지친 이들에게 위로를 전달한다. 혼자인 것 같은 세상에 나를 온전히 바라봐 주고 나를 찾을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복잡하게 얽힌 관계 속에서 우리는 모두 서로를 향해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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