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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래청 Aug 20. 2020

하얀 순수건... 받은 이후

이별의 상징인 하얀 손수건


나이 16세 첫 사랑이었던가


청춘이라 불리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였다. 이제 막 이성에 눈을 뜨는 시기였다. 중학교 2학년 시절 부산의 한 도서관에서 공부한다고 폼을 잡고 다닐 때였다. 친구와 1개월 도서관 이용권을 발부받고 매일 도서관을 오고 갔다.

하루는 앞자리에서 칸막이 사이로 흰 종아가 조금 밀려왔다. 나는 앞자리 여학생이 공부하다가 종이가 칸막이 사이로 조금 밀려왔다고 생각하고 밀어주었다. 조금 후 다시 흰 종이가 칸막이 빈 사이로 밀려왔다.

갑자기 짜증이 나서 종이를 당겨버렸다. 내 앞의 여학생에게 정신 차리고 공부하라는 심보로...


감히 내 구역으로 넘어온 종이를 확 당겨버린 것이다. 그리고 종이를 구겨서 내 자리 한 공간이 버렸다. 10분쯤 지났는가 보다. 궁금했다. 앞자리 여학생이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는지...


처음 받아보는 러브 레이터


"오늘 오후 4시 도서관 정문 옆 찐빵 분식점에서 만나요."

'헉...!'

공부가 될 리가 없었다. 얼굴이 빨개진 내 모습이 보일까 봐 머리를 숙이고 움직이지도 못했다.

 

우리의 만남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여학생은 큰 부자였다. 부산 광복동에서 유명한 삼계탕집과 통닭구이 가게를 하고 있었는데  지금으로 치면 대단한 맛집이었다.


사랑이 뭔지도 모르면서 편지를 주고받았고 자주 만났다. 돈이 많은 학생이니 만날 때 나의 동생들 학용품도 사주곤 했다. 그런데 너무 큰 부잣집 여학생과 가난한 공무원 학생과의 만남은 얼마 가지 못했다.

첫 만남을 가진 지 2년 정도 지날 무렵인 것으로 기억된다. 도서관 근처 중국집에서 점심때 만나자고 하였다. 당시에는 중국집이 최고였다. 우리는 짜장면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그가 선물이라고 예쁘게 포장된 작은 선물을 주었다. 


집에 돌아와 포장을 열어보니 하얀 손수건이었다. 너무 예뻤다. 나는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밖에 나가신 어머니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어서 어머니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저녁 무렵 어머니가 돌아오셨다.

"어머니 선물 받았음 더"나는 자랑하고 싶어서 어머니께 손수건을 보여주었다.

"야, 니 여학생이랑 무슨 일 있었나"

'아입니더, 오늘 경애 만나서 짜장면 묵으십니다'나는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그 손수건 그 학생이 준거가? 문둥이야, 그런 거 받는 것 아이다.'

'와요?'

'하얀 손수건은 이별을 뜻하는 기다, 그 여학생과 무슨 일 있었나?'

'......' 나는 대답을 못했다.

설마 그렇게 예쁘게 웃으면서 맛있는 짜장면도 사주었는데....


나는 바로 편지를 썼다. 만나자고...

답장이 없었다. 그 후 나는 광복동 시내로 나가 통닭집과 삼계탕집을 기웃거리며 혹시 그 경애가 와 있는지 살피곤 했다. 경애의 어머니만 카운터에 가끔 밖을 내다보곤 하였다.

1개월쯤 지난 무렵 용기를 내어 통닭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서 오이소'


이미 끝난 만남이었을 뿐이다.


'저 어무이 ....경애 만날 수 있습니까?'

'야가 누고? 아 니가 우리 경애랑 만나는 남학생이 가?'

'예'

'이제 만나지 마라, 학생이 공부나 열심히 해야지'

 

그 후로 한 번도 만난 적 없었다. 편지도 보내지 않았다. 첫 사랑인지는 모르나 자기가 먼저 다가와 만나자고 하더니 자기 맘대로 헤어지자고 했던 그 학생도 이제 괘나 나이가 들었을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첫 만남의 이성에게 멋지게 차인 것이다. 왜 차였는지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다. 지나온 일이지만 웃음이 나온다. 나에게 하얀 손수건을 주었던 그 미소가 이젠 기억나지 않는다. 하얀 손수건의 의미를 가르쳐 준 그 여학생과 헤이진 후에 나는 전국의 많은 여학생들과 펜팔을 하면서 이성을 알아갔다.

내가 전국에서 받은 편지만 1,200여 통이다. 얼마 전 수 십 년간 보관해 오던 편지들을 다 정리하고 버렸다. 통닭집 그 여학생의 편지도 많이 있었다.  아내가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웃는다.

'버려도 괜찮아요?'

'당연히 버려야지, 하하하' 내가 대답했다.

아내가 한 마디 던진다.

'일찍이도 버리시는군요.'

'......' 할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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