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한 평짜리 방에 울려퍼지는 웃음

모닝글로리 꽃 향기

by 임래청
190만 명의 침묵을 넘어, 야생화가 피어나다

우리가 씨엠립에 도착한 지 약 3개월이 지날 무릎이었다. 새해가 되고 밤브 마사지를 운영하는 집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씨엠립에는 많은 한국식당과 마사지 가게가 있다. 나의 공연을 한 번 본 황 집사는 어느 날 나에게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목사님, 혹시 괜찮으시다면 토요일 오후에 잠시 저희 가게에 오셔서 아이들과 찬양도 하고 성경도 가르쳐주시고 예배를 드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나는 기도를 해 보자고 하고 아내와 의논을 했다. 아내는 주저 없이 말했다.

"집사님이 목사에게 부탁하신 일인데, 감사한 마음으로 토요일에 가서 아이들과 함께합시다. 좋은 기회 같아요."


나는 그다음 주 3박 4일 일정으로 태국 방콕으로 날아갔다. 방콕에서 나의 외사촌이 어린이 사역을 든든히 하고 있다. 방콕의 사촌 동생은 나에게 간곡하게 말했다. "오빠! 빨리 오세요. 한국에서 유치원 원장을 하셨으니, 오시면 어린이 사역에 많은 도움을 주실 수 있습니다."

나는 사촌 동생 선교사의 도움을 받으며 2박 3일 동안 많은 것을 배웠다. 백화점 문구점에 가서 여러 가지 필요한 물품(500달러)을 구매하여 씨엠립으로 돌아왔다.

20191215_122948.jpg 아이들이 밥먹는 모습을 볼때면 자주 눈물이 났다

토요일마다 나와 아내는 마사지사 자녀들 약 15명을 만나 그리기, 종이접기 찬양, 성경 말씀 등을 최선을 다해 가르쳤다. 한 평도 되지 않는 좁은 방에서 울려 퍼지는 찬양은 서툴렀지만, 이때가 우리 부부에게는 캄보디아의 어린이들에 대하여 깊이 있게 많은 것을 알게 된 시기였다.

약 2시간의 사역을 마치고 나면, 집사는 어린이들에게 간단한 밥을 준비해 주었다. 많이 배고팠을 것이다. 보기가 민망스럽고 불쌍했다. 흙바닥에 맨발로 다니는 것이 습관이 되어있는 어린이들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그러나 어린 얼굴에서 피어나는 미소는 순수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매력이 아름다웠다. 상처가 깊게 남아있는 이 땅에서, 나는 천진한 어린이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놀라움을 느꼈다. 고단한 삶과 아픔 속에서도, 그들은 웃음을 잃지 않고 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마사지 근무 시간이 끝나면 아이들은 하나둘 엄마의 오토바이 뒤에 올라타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주름진 얼굴마다 삶의 흔적을 새겼지만, 그 속에는 절망만이 아니라 묵묵히 이어지는 생명과 희망이 깃들어 있었다.


밤브 마사지 가게는 이미 씨엠립에 소문이 나 있는 한국식당 겸 마사지 업소다. 교회 집사인 여자 대표는 캄보디아의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기 위한 마사지사들에게 부모의 역할을 한다. 마사지사들이 가게 근무하러 올 때 어린 자녀들이 집에 홀로 있기가 힘들다. 그래서 근무하는 시간에 자녀들은 집사가 마련한 작은 방에서 엄마의 근무 시간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매일 이렇게 삶의 피곤한 무게를 달고 다니면서 큰돈을 버는 것은 없다. 다만 손님이 있든지 없든지 기본 월급을 지급하니 마사지 가게에 와서 약속한 근무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집에 가자고 어린아이들을 부르는 엄마의 부드러운 목소리, 아이들은 행복한 미소를 던지며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지만 미소 속에서, 이 땅이 여전히 살아있고, 사랑과 희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사지사들은 그 아픈 상처와 그의 부모에게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직접 겪은 일이 아니고 들은 역사적 사실이었지만, 그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는 힘이 존재했다. 나는 그 미소 속에서, 눈물과 희망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진리를 보았다. 이 작은 미소들이 모여, 공동체의 단단한 힘이 되고, 앞으로 나아갈 희망의 길을 비추었다. 상처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 땅의 내일을 밝히는 살아있는 증거였다.

이 작은 사역은 아쉽게도 4개월이 지날 무렵 코로나로 인하여 아이들과 모일 수 없는 상태가 되어 갑자기 중단되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캄보디아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많은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스크린샷 2026-01-01 235227.png 캄보디아에서 흔한 모닝글로리 꽃

모닝 글로리 꽃 향기

우리 부부가 탄 뚝뚝이가 마사지 가게 앞에 먼지를 일으키며 섰다. 토요일 오후 3시만 되면 어김없이 꼬맹이부터 초등학교 1~3학년까지의 아이들이 문밖에 나와 맨발로 우리를 기다린다.

초등학교 2학년 리따를 포함한 여자아이들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한 아이가 아내에게 달려와 등 뒤로 감추었던 것을 내밀며 애정 어린 표현을 건넸다. 들꽃을 꺾어 만든 꽃다발 두 송이를 선물한 것이다. 또 다른 아이가 나에게도 꽃다발을 주었다. 아이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2개월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어머, 이 예쁜 꽃 누구에게 받은 거예요?” 마사지 가게 주인 황 집사가 물었다.

“무슨 꽃인지 모르지만, 아이들이 들꽃을 꺾어서 만들었나 봐요.” 아내가 대답했다.

“아이들이 목사님 부부를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저 꽃은 우리가 먹는 모닝글로리인데, 아이들이 어디서 이렇게 많이 꺾어왔죠?” 황 집사는 오히려 더 기뻐하는 듯했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모닝글로리를 즐겨 먹지만, 꽃은 흔히 보이지 않는다. 꽃은 아주 작은 나팔꽃처럼 생겼다.

20200118_191124.jpg 마사지 가게에 도착하니 아이들이 반겨준다
20200119_222439.jpg 어디서 채집했는지 모닝글로리 꽃다발을 건내주었다.

아이들도 이처럼 우리 부부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와 함께 찬양하고, 그림을 그리고, 색종이 접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초등학교 5~6학년이 되어도 가위질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학교에 미술 수업이 없었고, 색종이 접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가 다 접어주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많은 색종이와 가위 등 도구를 준비했지만, 정작 처음 접하는 아이들 앞에서 교육 방식에 대한 우리의 꿈은 조금씩 변해갔다.


가장 좋은 방법은 밑그림이 있는 종이에 색칠하는 것이었다. 아이들도 좋아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을 보며 애처로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학교 교육에서 미술 시간이 전혀 없었으니,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새로운 도전이었다. 코로나 19 상황만 아니었으면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은 그 아이들이 모두 중고등학생이 되었을 것이다. 이제 에덴교회 센터를 열면, 함께했던 아이들이 다 자라 “선생님(로쿠루)” 하며 모닝글로리 꽃을 한 아름 들고 반갑게 달려오는 꿈을 꾸고 있다.



P.S. 여러분의 마음속 '한 평 방'에도 오늘 모닝글로리 같은 희망의 향기가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