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평짜리 방에 울려 퍼지는 웃음
나는 거대한 고통 앞에서 무력감을 느꼈지만,
그 폐허 속에서 눈에 띄지 않게 끈질기게 피어나는 작은 야생화들을 발견했다. 누가 물을 주었을까? 누가 돌보았을까? 이름도 없이 바람과 비를 맞으면서도 고개 숙이지 않고 꿋꿋하게 서 있는 그 생명력은 이 땅의 아이들과 닮아있다. 그들의 눈빛은 아픔과 고통을 담고 있었지만, 동시에 꺾이지 않는 순수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나는 깨달았다. 캄보디아 사역의 본질은 무너진 역사의 상처를 거대한 힘으로 덮으려는 작업이 아니라는 것을. 진정한 사역은 작은 야생화가 스스로 힘으로 흙을 뚫고 피어날 수 있도록 물과 빛을 제공하는 일이라는 것을. 킬링필드라는 고통의 끝자락에서, 이 땅의 야생화들은 다시 피어날 꿈을 꿋꿋하게 꾸고 있었다.
나는 이제 그 꿈을 발견하고 함께 키워나가는 조력자가 되기로 결단하고, 디모데교회 암노스 리더들을 키우며 어린이들과 함께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있다.
한 평짜리 방에 울려퍼지는 웃음
우리가 씨엠립에 도착한 지 약 3개월이 지날 무릎이었다. 새해가 되고 밤브 마사지를 운영하는 집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씨엠립에는 많은 한국식당과 마사지 가게가 있다. 나의 공연을 한 번 본 황 집사는 어느 날 나에게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목사님, 혹시 괜찮으시다면 토요일 오후에 잠시 저희 가게에 오셔서 아이들과 찬양도 하고 성경도 가르쳐주시고 예배를 드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나는 기도를 해 보자고 하고 아내와 의논을 했다. 아내는 주저 없이 말했다.
"집사님이 목사에게 부탁하신 일인데, 감사한 마음으로 토요일에 가서 아이들과 함께합시다. 좋은 기회 같아요."
나는 그다음 주 3박 4일 일정으로 태국 방콕으로 날아갔다. 방콕에서 나의 외사촌이 어린이 사역을 든든히 하고 있다.
순수한 미소
방콕의 사촌 동생은 나에게 간곡하게 말했다. "오빠! 빨리 오세요. 한국에서 유치원 원장을 하셨으니, 오시면 어린이 사역에 많은 도움을 주실 수 있습니다."
나는 사촌 동생 선교사의 도움을 받으며 2박 3일 동안 많은 것을 배웠다. 백화점 문구점에 가서 여러 가지 필요한 물품(500달러)을 구매하여 씨엠립으로 돌아왔다.
토요일마다 나와 아내는 마사지사 자녀들 약 15명을 만나 그리기, 종이접기 찬양, 성경 말씀 등을 최선을 다해 가르쳤다. 한 평도 되지 않는 좁은 방에서 울려 퍼지는 찬양은 서툴렀지만, 이때가 우리 부부에게는 캄보디아의 어린이들에 대하여 깊이 있게 많은 것을 알게 된 시기였다.
약 2시간의 사역을 마치고 나면, 집사는 어린이들에게 간단한 밥을 준비해 주었다. 많이 배고팠을 것이다. 보기가 민망스럽고 불쌍했다. 흙바닥에 맨발로 다니는 것이 습관이 되어있는 어린이들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그러나 어린 얼굴에서 피어나는 미소는 순수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매력이 아름다웠다. 상처가 깊게 남아있는 이 땅에서, 나는 천진한 어린이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놀라움을 느꼈다. 고단한 삶과 아픔 속에서도, 그들은 웃음을 잃지 않고 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마사지 근무 시간이 끝나면 아이들은 하나둘 엄마의 오토바이 뒤에 올라타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주름진 얼굴마다 삶의 흔적을 새겼지만, 그 속에는 절망만이 아니라 묵묵히 이어지는 생명과 희망이 깃들어 있었다.
밤브 마사지 가게는 이미 씨엠립에 소문이 나 있는 한국식당 겸 마사지 업소다. 교회 집사인 여자 대표는 캄보디아의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기 위한 마사지사들에게 부모의 역할을 한다. 마사지사들이 가게 근무하러 올 때 어린 자녀들이 집에 홀로 있기가 힘들다. 그래서 근무하는 시간에 자녀들은 집사가 마련한 작은 방에서 엄마의 근무 시간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매일 이렇게 삶의 피곤한 무게를 달고 다니면서 큰돈을 버는 것은 없다. 다만 손님이 있든지 없든지 기본 월급을 지급하니 마사지 가게에 와서 약속한 근무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집에 가자고 어린아이들을 부르는 엄마의 부드러운 목소리, 아이들은 행복한 미소를 던지며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지만 미소 속에서, 이 땅이 여전히 살아있고, 사랑과 희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사지사들은 그 아픈 상처와 그의 부모에게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직접 겪은 일이 아니고 들은 역사적 사실이었지만, 그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는 힘이 존재했다. 나는 그 미소 속에서, 눈물과 희망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진리를 보았다. 이 작은 미소들이 모여, 공동체의 단단한 힘이 되고, 앞으로 나아갈 희망의 길을 비추었다. 상처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 땅의 내일을 밝히는 살아있는 증거였다.
이 작은 사역은 아쉽게도 4개월이 지날 무렵 코로나로 인하여 아이들과 모일 수 없는 상태가 되어 갑자기 중단되었다. 이 글을 쓰는데 그 아이들이 참 보고 싶어진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캄보디아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많은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