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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래청 Aug 07. 2020

동생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리아의 에세이 - 피는 물보다 진하다


6명의 형제도 부족한 우리 가족


어머니의 임신

아주 오래된 얘기다. 아마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나 보다.

동생이 겨울이 다가오는 11월의 길목에서 태어나고 있었다. 이미 5명의 형제가 있었으나 또 다른 막내가 태어나고 있었다. 어머니의 배는 10개월을 채웠고 만삭이 되어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배가 그렇게 많이 불러 다니시던 모습을 자주 보았다.


당시 다섯 명의 아들을 낳으셨던 어머니가 또 동생을 임신하였으니 동네 사람들이 자주 배속에 있는 동생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 살림살이도 빡빡한 시절이라 먹을 것도 변변치 못하면서 무슨 딸이 필요하냐고 수군거렸다.

그래도 어머니는 이번만은 분명히 딸일 것이라는 기대감에 차서 10개월을 기다렸다.


"아냐, 꿈에 달을 보았다니 분명 딸일 거야." 옆 집 아주머니가 자신 있게 얘기했다.

"아이고 아니라고... 걸음걸이를 보면 또 아들이라니까" 하면서 다른 아주머니가 말했다. 동네 사람 몇몇이 모이면 늘 그런 얘기를 했다. 어떤 아주머니는 "애기 아빠가 힘도 좋아" 하면서 얼굴이 빨개지는 어머니의 어깨를 치면서 깔깔 거리며 웃곤 했다. 나는 어머니를 놀리는 동네 아줌마들이 싫었다.



딸을 낳으면 부자 된다더라


그것이 동생이 태어 날 이유였다.

어머니가 다시 동생을 낳으려고 하는 이유를 나는 벌써부터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점치는 점쟁이에게 자주 갔다. 인간들은 누구나 다 자신의 미래를 궁금해한다. 어머니가 다섯 명의 아들에 만족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우리 집에 꼭 딸 하나 태어나야 부자가 되고 아버지의  외도도 막을 수 있다는 점쟁이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딸을 놓기 위해 동생을 만든 것이다.


친구들과 놀고 있는 데 어머니가 나를 부르셨다.

"래청아! 빨리 말대가리 아줌마 집에 가서 오시라고 해라, 어미가 곧 아이를 낳을 것 같다고 전하고..."

나는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말대가리 아줌마 집에 쏜살같이 달려가 얘기하고 돌아왔다. 어머니는 나에게 물을 솥에 담아 연탄불이 올려놓으라고 지시하셨다. 나는 자연히 출산하는 어머니의 도우미가 되어 버렸다. 


지금이야 임산부들은 모두가 병원에 가서 아이를 놓지만 당시는 대부분 사람들이 집에서 놓았다. 그래서 산파들이 동내마다 있었다. 말대가리 아주머니도 산파였다. 그런데 얼굴이 정말 길어서 동네 사람들이 붙인 별명이었다.



 나는 동생이 태어난 것을 본 증인이었다.
동생이 세상이 나왔지만...

어머니는 혼자서 신음하면서 아이를 놓고 있었다. 아직 산파가 도착하지 않았다. 빨리 왔으면 좋을 것인데 어머니가 많이 아프신 것 같았다. 어머니는 나에게 나가 있을라고 해서 밖에서 산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동생이 나오는 것이 너무 궁금해서 손가락에 침을 묻혀 창호지로 된 문에 손가락으로 살짝 작은 구명을 내고 방안을 들려다 보았다. 동생이 세상에 나오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고 있었다. 그때 후다닥 산파 아줌마가 집에 도착해서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계속 문구멍으로 어머니가 동생 놓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었다.


드디어 동생의 울음소리가 났다. 동생이 무사히 태어난 것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어머니가 방금 태어난 동생을 안아주는 것이 아니고 밀가루 부대 종이 위에 눕히고 방 한구석으로 밀쳐 놓았다. 산파는 출산한 어머니의 뒷정리를 다 마치고 "애기 엄마 수고했어, 꼭 그렇게 해 알겠지?" 한마디 하고 돌아갔다.



형이 소리치며 엉엉 울었다

형이 엄마가 밉다고 소리치며 반항하다.

형이 친구들과 어디선가 놀다가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어머니랑 얘기를 하더니 형이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엄마 안돼!, 동생 내가 키울 거란 말이야, 엄마 미워, 절대 주지 마 우리 동생..." 하면서 동생을 안고 울었다.


어머니가 지금도 다섯 명의 아들이 있는데 또 아들이 나오면 자식이 없는 남에게 주기로 산파와 약속을 해 둔 상태였다. 그래서 어머니가 막 태어난 동생과 정을 떼려고 밀가루 부대위에 두었던 것이다. 약 3시간 후 말대가리 아줌마가 다시 집으로 왔다. 형이 소리치며 울며 아주머니를 못 들어오게 헸다

"우리 동생 절대 데려가지 못했요" 하면서 두 손과 발을 벌리고 필사적으로 막았다. 그러다가 동생에게 달려가 안고서 "우리 동생 절대 가져가지 마세요" 하면서 필사적으로 반항을 했다. 결국 산파는 오늘은 그냥 돌아가고 내일 다시 오겠다고 하면서 돌아갔다.

"엄마, 절대 우리 동생 버리지 마, 엄마 미워" 하면서 엉엉 울었다.

어머니는 "그래 알겠다. 그만 좀 울어라" 하시며 형을 달랬다.



정이라는 게 뭔지
피는 물보다 진했다.

산파가 다음날 다시 왔지만 이제 어머니가 "미안해요, 제가 그냥 하나 더 키울게요" 하신다

산파는 "그래, 피는 물보다 진한 거야" 하면서 돌아갔다. 동생을 하룻밤 안고 지내며 젖도 주고 하면서 그사이 정이 들어버린 것 같았다. 하마터면 막내 동생이 다른 집으로 입양 아닌 입양이 되어 영영 헤어질 뻔 한 그날의 어머니 출산 소동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막내 동생도 이제 나이 50대 중반이니 세월이 새삼 빠르다는 것을 느낀다.


형제들이 모이면 그때 막내가 부잣집으로 입양되었으면 더 좋았을 걸 하면서 껄껄 웃곤 한다. 막내 동생을 다른 곳을 보내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울며 막아섰던 형은 몇 년 전 이별의 말도 없이 하늘나라로 가셨다.

'형, 정말 피는 물보다 진한가 봐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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